♡피나얀™♡【육아】

스쿨존 규정 아는 사람 드물어

피나얀 2006. 5. 2. 18:12

 

 


주차 막아야 할 구청이 주차선 긋기도… 초등학교 절반은 시설 못갖춰
미국선 최고 500달러 벌금… 속도위반 플래시 경고장치로 큰 효과

 

길을 가다 보면 ‘학교 앞 천천히’ 바닥 표시와 ‘어린이 보호구역’이라고 새겨진 간판을 흔히 볼 수 있다. 어린이들의 등하교 길을 안전하게 만들겠다는 ‘스쿨존(School Zone)’을 알리는 표시들. 지난해 말까지 전국 3458개 초등학교 앞이 스쿨존으로 지정되어 있다. 전체 초등학교 앞 61%, 도로로 치면 1000㎞ 정도가 스쿨존으로 지정되어 있는 셈이다.

 

스쿨존 관련 법안이 만들어진 게 1995년. 벌써 10년이 넘었다. 스쿨존에서는 시속을 30㎞ 이하로 줄여야 하고, 주·정차를 하면 안 된다. 하지만 거의 지켜지지 않는다. 단속도 거의 없다.


지난 4월 17일 오후 2시 하교 시간, 서울 강북 S초등학교 담벼락을 따라 한 바퀴 돌아봤다. 학교 동편 70~80m 구간은 일방통행로로 지정돼 있었다. 차도(車道) 폭 3m, 인도(人道) 폭 1m 정도의 좁은 도로였다. 차도와 인도의 구분은 노란 선 하나로 되어 있었다.

 

인도에는 군데군데 ‘통학로’라는 글씨가 쓰여 있었다. 하지만 인도를 따라 걷는 어린이는 없었다. 이미 차들이 통학로를 점령하고 있기 때문이다.

 

20여대의 차량이 빼곡히 불법 주차(駐車)되어 있었다. 차들은 인도표시선을 주차표시선으로 활용한 듯 가지런했다. 어린이들이 가끔 통학로로 들어오는 경우도 있었다.

 

차들이 경음기를 빵빵거리면 몸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아이들은 주차된 차와 차 사이 좁은 공간에서 자동차를 피한 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걸어갔다.

 

학교 북쪽 담벼락 구간도 일방통행이었다. 물론 여기도 ‘어린이보호구역, 주차금지, 견인지역’이라고 적힌 대형 표지판이 서 있었다. 하지만 이곳 도로 한쪽은 ‘거주자 우선 주차지역’으로 지정되어 있었다. 낮인데도 20여대가 주차되어 있었다.

 

주·정차가 금지된 지역인데도 관청은 주차지역을 만들어 놓았다. ‘보호구역 내에 주차장을 설치할 수 없다’는 법규정을 어긴 것이다. 아이들은 이곳에서도 차도로 걸어다녔다. 관할 구청 측은 “거주자 우선 주차지역과 스쿨존이 겹친다고 해서 민원(民願)이 발생한 것도 아니지 않느냐”고 말했다.

 

후문이 뚫려 있는 학교 담장 서쪽에는 폭 1m 가량의 그럴싸한 인도가 있었다. 붉은 벽돌로 인도 표시가 되어 있고, 가드레일로 차도와 분리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아이들은 차도로 걸어다녔다. 이모(10)양은 “선생님이 다닐 때 차조심 하라고 했어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차를 조심하는 아이들도, 아이들을 조심하는 차도, 아이들의 하교길을 살피는 어른들도 눈에 띄지 않았다.

 

정문과 연결된 학교 남쪽 담장도 빨간색 벽돌로 인도가 표시되어 있었다. 이곳에도 어김없이 5대의 차가 인도에 불법 주차되어 있었다. 주차된 차들 사이사이 인근주민들이 버려 놓은 쓰레기봉투가 잔뜩 쌓여 있었다.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고 가는 아이들보다 지나가는 자동차의 속도가 더 빨랐다.

 

수업이 끝난 아이 둘을 데리러 왔다는 주부 박모(37)씨도 인도에 차를 불법으로 세워두고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학교 주변에 오락기도 많고 자동차도 많고 해서 학원에 데려다 주려고 직접 나왔다”고 말했다. 박씨는 스쿨존에 주·정차하면 안 된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지난 3월 6일 밤 경남 거제 백병원에 한 아이의 빈소가 차려졌다. 아이는 그날 아침 등교길에 학교 정문 앞에서 15t 트럭 뒷바퀴에 목숨을 잃었다. 맞벌이를 하던 부모들은 실신했다. 언니의 처참한 사고를 두 눈으로 본 동생은 멍한 표정으로 엄마 품에 안겨 있었다.

 

아이는 담임선생님에게 ‘이제 조금만 있으면 개학일이네요. 그때까지 어떻게 기다려요. 선생님이 빨리 보고 싶은데요(진심이에요^^)’라는 이메일을 보낼 만큼 깜찍했다.

 

사고장소는 1년반 전에 스쿨존으로 지정되었지만 ‘어린이보호구역’이라는 표지판도 하나 없었다. 중장비는 안전요원 없이 30m를 후진(後進)하려 했다. 8살 동생과 손을 잡고 걷던 11살 아이의 등교길을 안내해 주는 어른은 없었다.

 

스쿨존으로 지정되어 있는 전국 3458개 초등학교 앞 중 53%인 1855곳은 아직 스쿨존이라고 부를 만한 시설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 정부 집계다. 아이가 사고를 당한 초등학교 앞도 사고 이틀 뒤에야 부랴부랴 길에 ‘학교 앞 천천히’라는 글씨를 새겼다.

 

경찰은 이 일이 있은 후 지난해 스쿨존 내에서 어린이 7명이 사망하고, 401명이 부상당했다고 발표했다. 일선 관서 서장들은 관내 스쿨존을 걷는 체험 행사를 가지기도 했다. 또 오는 8월부터 시행될 운전면허 학과시험 개편안에 스쿨존 규정 출제를 확대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스쿨존 관련 법안을 강화하자는 움직임도 있었다. 지난해 국회에서 스쿨존 안에서 발생하는 자동차 시속 30㎞ 제한 위반, 주·정차 금지 위반 등 교통위반행위를 50% 가중처벌하는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아직 상임위에 묶여 있는 상태다.

 

하지만 법과 단속만으로 스쿨존 문화가 정착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생각이다. 최영화 서울시립대 도시방재안전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스쿨존에 안전펜스를 설치하려 해도 ‘주차할 공간이 없다’는 주민의 아우성에 좌절되곤 한다”며 “아이들의 안전보다는 생활의 불편을 먼저 생각하는 인식이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내 집 앞 도로를 내 주차공간이라고 생각하는 풍토, 내 아이만 안전하면 된다는 생각이 스쿨존 규정을 유명무실하게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에서의 스쿨존 규정은 각 주(州)마다 다르다. 필라델피아주에서는 스쿨존 내 최고 시속인 17.6㎞를 넘으면 최고 500달러의 벌금을 부과하고, 운전자에게 벌점 3점을 준다. 두 번째 위반한 경우 2개월간 면허가 정지된다.

 

운전자의 주의를 촉구하는 장치도 동원된다. 미국 피닉스시에서는 스쿨존 내 건널목에 속도측정계가 부착된 표지판을 설치했다. 시속 15마일(24㎞)이 넘으면 카메라 플래시가 터져 운전자에게 속도 위반임을 알려주는 것이다. 월터 브라운 애리조나주(州) 통합학군 부교육감은 “카메라 표지판으로 피닉스시에서 가장 위험했던 건널목도 과속과 정차 위반 문제가 해결됐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노란색 스쿨버스는 황제(皇帝) 대접을 받는다. 스쿨버스가 서면 버스 좌·우측으로 빨간색 ‘스톱(STOP)’ 사인판이 나온다. 스쿨버스를 뒤따르던 차량은 물론 반대 차선을 달리던 차도 무조건 서야 한다.

 

영국의 사우스 글루체스터셔에서는 교사가 학교 앞 불법 주정차 차량을 경찰에 통보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일본은 공사를 할 때 폭 1.8m 이상의 보행자 통로를 확보해야 한다. 안전펜스와 안전요원은 기본이다. 이를 어기면 관급공사 수주 때 불이익을 받는다.

 

 

 

 

 


 

/ 김정훈 조선일보 사회부 기자 (runt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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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주간조선 2006-05-02 12: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