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저렇게 유채꽃에 파묻혀 봤으면..."

피나얀 2006. 5. 6. 22:55

 

어린이날을 하루 앞둔 날, 나는 학창시절 단짝 친구와 함께 충북 청원군 오창면에서 열리는 '유채꽃 축제'로 드라이브를 떠났다. 아직 5월의 초입인데 날씨는 벌써 여름을 닮아 있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떠나는 오랜 벗과의 동행이 그런 강렬한 태양마저 웃음으로 넘길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마음에선 흥얼흥얼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차창을 스치는 자연의 빛깔은 계절의 여왕, 5월이 왔음을 실감하게 해준다. 한껏 물이 오른 나무의 연둣빛 나뭇잎들이 이제 막 초록으로 옮아가려 힘을 다해 발버둥치고 있는 듯 보였다.

 

▲ 2006년 5월 4일. 오창 유채꽃 축제 전경.
ⓒ2006 국은정
오창IC를 벗어나자마자 행사장으로 향하는 안내 표지들이 우리를 마중 나온 듯 여기저기 친절하게 걸려 있었다. 친절한 안내 표시들 덕분에 행사장 앞까지 도착하는데 그리 어렵지 않았다.

행사장 주변은 그야말로 노란 유채꽃 천지! 인공적으로 조성한 화훼단지 같은 조금은 인위적인 인상도 없지 않았지만 그래도 노란 유채꽃들이 그대로 한 폭의 풍경화를 연상시켰다. 노란 꽃물결이 넘실넘실 우리의 마음도 더불어 넘실대고 있었다.

 

▲ 러시아 무용수들의 전통춤 공연 장면
ⓒ2006 국은정
야외 상설무대에서는 러시아 무용수들의 공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러시아 무용수들은 전통의상을 입고 흥겹고 빠른 음악에 맞추어 열심히 춤을 추었다. 어린이날을 하루 앞두고 있었기 때문인지 단체 관람을 나온 꼬마 친구들의 모습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다소 뻔해 보일 수 있는 공연인데도 이 꼬마 친구들의 눈에는 그렇지 않은가 보다. 공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꼬맹이들의 눈 속에선 공연 열기가 느껴졌다.

공연이 끝나고 친구와 나는 유채꽃밭 사이로 난 작은 길을 따라 걸었다. 유채꽃 특유의 향기가 바람에 날려 알싸하게 코끝을 건드리고 지나간다. 유채꽃을 보호하기 위해 유채꽃밭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게 되어 있었지만, 유채꽃 사이로 난 길을 걸어가는 기분이 봄처녀가 된 듯 마냥 설렜다.

유채꽃 사이사이 전시된 조각 작품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그중에서도 소파 위에 낮잠을 자는 듯이 보이는 사내를 표현한 작품이 가장 눈에 띄었다. "이야~ 저기 유채꽃 속에 파묻혀 한숨 늘어지게 자면 좋겠다." 누군가 무심코 던진 그 말이 그 작품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이기도 했다. 사람들의 마음이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일까?

 

▲ 노란 유채꽃밭
ⓒ2006 국은정

 

▲ 유채꽃 속에 전시된 작품
ⓒ2006 국은정
유채꽃 샛길을 다 빠져나오니 여러 자연생태체험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제일 먼저 야생화 전시관을 관람하기로 했다. 평소에 야생화에 관심이 많았던 내가 내심 너무 많은 기대를 품고 있던 탓일까? 생각보다 볼거리가 많지 않아 조금 실망했다. 야생화 종류도 다양하지 않고, 야생화의 관리상태가 그리 만족스럽지 않았다.

 

 
▲ 생태전시관에서 전시된 아름다운 생화.
ⓒ2006 국은정
하지만 야생화관에서 깨진 기대를 '식물종합전시관'에서 다시 찾을 수 있었다. 그곳에는 여러 가지 다양한 생태 관련 볼거리들이 풍성하게 마련되어 있었다. 이번 축제의 야심 프로젝트가 그곳에 다 모여 있는 것처럼!

평소에 보기 어려웠던 아름다운 꽃들이 서로 어울려 피어 있는 모습이며, 살아있는 민물고기들 직접 볼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것이 참 좋았다. 친구도 연방 탄성을 질렀다.

무엇보다 도시의 사람들이 잘 모르는 '벼의 생태'에 대해 알 수 있도록 직접 작은 논을 만들어 모내기부터 추수할 때까지의 과정을 꾸며 놓은 것이 인상 깊었다. 1평 남짓 논바닥에는 살아있는 우렁이들의 모습도 볼 수 있어 '작은 농촌'에 와 있는 것처럼 실감났다. 걸리버가 소인국을 찾아갔을 때 느꼈을 바로 그런 기분이랄까?

생태체험관 마지막 코너에는 아이들이 직접 어린 채소를 작은 화분에 옮겨 심는 체험 코너가 마련되어 있었다. 아이들만 체험할 수 있다는 팻말에 다소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흙을 만질 기회가 적은 요즘 아이들에게 이런 기회가 주어진다고 생각하니 양보하는 기분도 가볍고 산뜻했다.

채소를 심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는 선생님의 이야기에 귀를 쫑긋 기울이며 정성껏 채소를 옮겨 심는 아이들의 표정이 자못 진지해 보였다. 부디 그 채소를 잘 가꿔서 생명에 대한 신비와 소중함을 가슴에 새길 수 있게 되기를…….

 

▲ 벼의 생태를 볼 수 있도록 조성해 놓은 작은 논.
ⓒ2006 국은정

 

▲ 어린 채소를 옮겨 심는 체험을 하는 아이들.
ⓒ2006 국은정
생태관을 관람하고 밖으로 나오니 작은 원두막이 하나 서 있었다. 그 원두막 양옆으로 할머니와 할아버지 한 쌍이 직접 농촌 전통 의상을 입고 서 계셨다. 관람객들에게 조금 더 친숙하게 다가가려는 의도가 닿아 지켜보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그 바로 앞에는 연자방아와 소 한 마리가 있었다. 처음에는 조형물인 줄 알았는데 정말 살아있는 소였다. 햇볕이 뜨겁게 쏟아지고 있는데 햇볕 막이 하나 없이 서 있는 소가 불쌍했다. 동행한 친구는 저런 것이 바로 인간들의 탐욕이라며 동물을 학대하는 인간들에 야유를 보냈다. 언뜻언뜻 흥분한 친구의 모습이 나를 다시 학창시절로 데려다 줄 것만 같은 착각이 들기도 했다.

 

▲ 옛날 농촌의 모습을 그대로 재연한 원두막.
ⓒ2006 국은정

 

▲ 연자방아와 소
ⓒ2006 국은정
전시관을 몇 개 더 돌아본 후 3D 입체영화관에 가서 짧은 애니메이션 영상을 보았다. 아무래도 어른들보다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영화라서 기대에는 못 미쳤지만 가족끼리 함께 보기엔 무난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관을 나오는데 저만치 손님을 태운 마차가 다가오고 있었다. 쉽게 볼 수 없는 장면이라 사진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꺼내 찍고 있는데 마부 아저씨의 질타 대신 커다란 호루라기 소리가 귀를 때린다. 하마터면 말에게 깔릴 뻔한 게 아닌지 안도를 하면서도 어설프게나마 사진을 찍을 수 있어서 참 다행이었다.

역시 동행한 친구는 말은 한 마리인데 거기에 올라탄 사람들은 도대체 몇 명이냐며 사람들의 인간중심적인 생각에 대해 거센 불만을 쏟아 놓고 있었다. 작은 것 하나에도 동물을 생각하는 친구의 모습이 싫지 않았다.

 

▲ 손님을 태운 마차
ⓒ2006 국은정

행사의 규모에 비해 먹을거리가 다소 빈약해 보이는 것만 빼놓으면, 화장실 및 기타 편의시설이 비교적 깨끗하고 편리하게 갖추어진 축제라고 생각했다. 이 행사를 준비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고가 있었을지 그 심중에 짧은 경의를 표하고도 싶었다.

행사장을 빠져나오면서 나와 친구는 축제에 와서 놀다간다는 느낌보다, 5월의 봄을 만끽할 수 있었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오랜 벗과의 즐거운 동행이었음에 감사했다. 내 가까이 파랑새의 노랫소리가 들릴 것만 같은, 그렇게 맑고 밝은 봄날이었다.


덧붙이는 글
* 2006 청원생명쌀 유채꽃 축제

행사기간: 2006년 4월 22일 ~ 5월 14일까지.
행사장소: 충북 청원군 오창과학산업단지 (오창 I.C에서 3분정도 소요)
홈페이지:
http://www.yuchae.com/

 

 

 


 

- ⓒ 2006 오마이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출처-[오마이뉴스 2006-05-06 1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