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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 스크랩】'옥상 반상회' 들어 보셨나요?

피나얀 2006. 5. 6. 23:11

 

지난 달 30일, 반상회가 30돌을 맞았습니다. 군사 정권 시절 정부정책을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등 홍보수단이었던 반상회, 이젠 그 의미가 없어졌으니 폐지하자 혹은 주민단결 수단으로 존속시키자는 등 반상회을 둘러싼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지난해에는 주민들이 반상회, 부녀회에서 담합해 집값을 2억씩 올렸다는 내용이 보도되는 등 반상회의 부적절한 이용 및 역기능에 대해 문제점이 지적되기도 했습니다. 정부에서도 이를 단속한 근거가 없어 애를 먹기도 했습니다.

재경부의 중간 관료 A씨. 강남 모 아파트에 살고 있는 그는 최근 부인의 모습에 당혹스러웠다. 그는 "하루는 집 사람이 반상회에 갔다오더니 격앙돼 있더라구요. 다른 집 아줌마들이 집 값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있다는 거예요"라며 웃음을 지었다. 직간접적으로 부동산 정책에 관여하고 있지만, 아줌마들의 담합 행위에 대해서는 자신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최근 은평구의 한 아파트단지 반상회. 이 곳에서는 일정 가격 이하로는 아파트 매물을 내놓지 말자는 의견이 쏟아졌다. 한 참석자는 "강남ㆍ분당ㆍ일산처럼 아파트 가격을 관리하자는 격앙된 의견들이 나왔다"고 말했다. <서울경제 2005년 6월 26일자>


이웃집에 누가 사는지 거의 몰랐다, 그런데...

아파트, 특히 부유층이 많이 거주하는 아파트에서는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나 봅니다. 저는 아파트에 살지 않아서 그곳 사정은 잘 모릅니다. 보도된 내용 보고 나서 아는 정도지요. 그렇다면 일반주택이나 빌라 등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반상회는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을까요? 제 경험담을 말씀드릴까 합니다.

저는 성남에서 5년째 살고 있으며 빌라를 두 번 옮겨 세 번째 빌라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 집은 이사한지 불과 20일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첫번째, 두 번째 빌라에 살 때 반상회 같은 건 따로 열리지 않았습니다.

때 되면 정화조 청소하고 현관 전등 전기요금 받는다며 1층 아주머니께 잠깐 다녀가는 정도였습니다. 두 빌라에 각각 2년 살면서 누가 우리 빌라 사람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습니다. 당연히 교류가 없으니 알 수가 없지요. 기껏해야 같은 층 맞은편 집 사람들만 얼굴 알 정도였지요. 그것도 아니면 위층 혹은 아래층 사람 없을 때 택배나 중요 우편물 등을 대신 받아 주는 정도로 이웃과 안면을 트고 살았답니다.

특히 아내가 아기 낳고 집에 혼자 있을 때 육아에 대한 힘겨움과 함께 외로움, 우울증도 큰 문제였는데 빌라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했습니다. 물론 빌라 대부분 세대가 어르신들이라 어울리기가 좀 그랬지만 무엇보다 각자의 생활에 충실해 이웃간에 관심이 거의 없었습니다.

▲ 저희 빌라 옥상에서 열린 '옥상 반상회' 풍경. 안건은 따로 없습니다. 맛있게 삽겹살 구워 먹으며 정답게 이야기 나누는게 안건이라면 안건 입니다.
ⓒ2006 윤태
그런데 이번에 새로 이사 온 빌라는 크게 달랐습니다. 모두 열세대가 사는데 30대 부부 세대가 절반이고 8세 미만 어린이도 8명이나 됐습니다. 이제 10개월 된 저희 집 아기 새롬이를 비롯해 같은 층 맞은편 집은 7살, 2살, 100일, 위층은 저희 아기보다 2주 늦은 아기와, 네 살 된 아이도 있었습니다.

이사 올 때부터 이러한 분위기를 파악한 아내는 좀더 친하게 지내려고 적잖은 비용(?)을 들여 떡도 해 돌렸습니다. 맞은 편 아주머니 댁에 놀러가기도 하고, 옆집 아이가 혼자 저희 집에 놀러오기도 하고, 이사온 지 며칠 안 되는 시간에 이웃과 친하게 지내게 되었습니다. 같은 또래 엄마를 만나 시골 인정 못지않게 잘 지내고 있는 것이지요.

옥상에서 고기 구워 먹으며 반상회... 그러나 안건은 없다

어제 저녁 8시 빌라 옥상에서 반상회가 열렸습니다. 아이들까지 포함해 스물다섯 명은 모였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고기와 상추, 반찬을 언제 그리 준비했는지 입만 들고 올라간 아내와 저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삼겹살 파티와 함께 반상회가 시작됐습니다. 안건은 따로 없었습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다 같이 모여 얼굴 보고 친목 다지고, 밖에서 만나더라도 아는 척 하며 이웃사촌 하며 지내자는 4층 아주머니의 대표 인사말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아주머니는 엊그제 경험한 일을 덧붙여 반상회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집 근처 ○○ 시장에서 어떤 남자가 거품 물고 쓰러지면서 피를 토하고 곁에 있던 딸이 울음을 터트리고 하는데 주위 사람들은 보고만 있더랍니다. 약국이 무척 많은 곳이라 아주머니께서 약사에게 얼른 뛰어가 이 사실을 알리고 응급처치를 하는데 역시 행인들의 반응은 냉담했다고 합니다. 같은 빌라 사는 사람, 즉 얼굴 아는 사람이면 그렇게 빤히 쳐다만 보고 있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아주머니는 반상회가 있어야 한다며 이번 반상회의 취지를 설명했습니다. 모두들 공감 했습니다.

남자들은 소주 한 잔에 금세 형님, 아우 하는 사이가 됐습니다.

"아이구, 오늘 처음 뵙네요. 몇 번 뵙긴 했는데, 인사는 제대로 못했네요."

얼마나 오랫동안 이 빌라에 살고 있는지는 잘 모르지만 여하튼 처음 뵙는다는 인사말이 곳곳에서 오갔고 앞으로 종종 반상회 통해 이런 자리를 갖기로 했습니다.

반상회서 아파트값 담합? 우린 그거 몰라요

반상회를 통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각 세대의 직업도 알 수 있었습니다. 건물 방수하는 집, 공사판 나가시는 아저씨, 떡방앗간 집, 바로 옆에 있는 병원 간호사, 사진관 아저씨 등.

사진관 아저씨는 언제든지 오면 공짜로 사진 찍어주겠다고 했습니다. 간호사 아주머니가 근무하는 병원에 가면 더욱더 친절하게 병 간호를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밤중에 빌라에 응급사항이 발생하면 이 간호사 아주머니를 통해 응급처치를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아기 돌 잔치할 때는 우리 빌라에 살고 계신 떡방앗간 아주머니 가게 이용하면 되고 건물에 물 새거나 문제 생기면 방수나 현장 공사일 하시는 아저씨 도움을 받으면 될 것입니다. 저희는 한자리에 모여 이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웃간에 할 수 있는 한 서로서로 도움을 주자고 말이지요.

같은 층 맞은 편 세대의 이야기는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그 가족은 아이 엄마가 서른 살이고 아저씨가 서른 한 살인데 큰 딸이 7살, 둘째 딸 2살, 막내아들 100일 갓 지났습니다. 어린 나이에 결혼해 아이 셋 낳고도 이제 서른 살인 엄마와, 서른 한 살인 아빠. 결국 20대에 모든 출산을 끝내고 육아에 전념하겠다는 부부의 의지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각 가정의 사정과 훈훈한 사연 등을 들음으로써 더욱 더 서로를 이해하고 친해질 수 있었습니다.

이 '옥상 반상회'가 아니었으면 이웃간에 이렇게 친해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몇 년을 살아도 누가 사는지조차 모르는가 하면 같은 빌라에 살면서 주차문제로 서로 얼굴 붉히고 잔뜩 찡그린 얼굴로 차 빼주면서 투덜거리고, 사실 그동안 이런 모습이 많았는데 이곳 빌라에서는 언제나 웃는 얼굴로 이웃을 대할 수 있게 됐습니다.

위에 언급한 아파트 가격 담합 문제는 저희 빌라에서는 다른 나라 이야기 같습니다. 반상회를 없애니 마니 하는 논란도 저희 빌라에서는 해당사항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인심이 흉흉한 도시에서 더불어 사는 이웃사촌 만들기에 우리빌라의 '옥상 반상회'는 더할나위 없이 좋은 의미이고, 다른 빌라는 몰라도 우리는 지속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 저희 빌라 주차장 풍경 입니다. 사진 왼쪽에 보이는 공간으로 차 두대가 들어가야 하는데, 중앙에 있는 차를 빼줘야 가능합니다. 하루에도 몇번씩 이곳으로 차가 드나드는 상황이지만, 저희 빌라 사람들은 늘 웃는 얼굴로 차를 빼주며 인사를 합니다.
ⓒ2006 윤태


▲ 지난 번 이사와서 돌린 시루떡. 알고 보니 저희 빌라에 사시는 분도 떡집을 하고 있었습니다. 새롬이 돌잔치때 조금 싸게 떡을 맞출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006 윤태



덧붙이는 글

기자소개 : 윤태 기자는 살아가는 이야기를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그 소중한 이야기들은 '동화세상' 이라 불리는
(http://cyworld.nate.com/poem7600)

홈피에 싣고 있습니다. 이곳에는 <오마이뉴스>에 올린 글과 일상에서 발견한 작지만 소중한 이야기들 그리고 행복을 나눠줄 수 있는 정다운 사진과 글귀가 함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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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2006년 5월 6일(토) 10:50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