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육아】

'불효 작전'으로 효도한다

피나얀 2006. 5. 8. 18:53

 


 어버이날입니다. '효'앞에 당당한 자식이 하나라도 있을까요. 부모님을 생각하면 '불효자'란 자책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진 않으신가요. 하지만 전통적인 효를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반신불수 부모님의 손발이 돼 드렸다'는 효자.효부가 되라고 강요하기도 어려워졌습니다. 바뀐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효의 패러다임은 없을까.

 

이런 고민에서 최근 '아름다운문화를만드는사람들'이 코윈솔루션㈜.한국방송코미디언협회(회장 엄용수)와 공동으로 '아름다운 불효자'사연을 공모했습니다. 무겁고 칙칙한 효가 아닌 밝고 톡톡 튀는 효, 모두 즐겁게 실천할 수 있는 효, 부모와 자녀를 한데 묶어 화목한 가정을 이끄는 효를 찾기 위한 행사였지요. 수상작으로 뽑힌 '불효자'들의 사연을 들어봅니다.

 

'아름다운 불효자' 사연 공모

 

# 모시는 것만 효는 아니다

 

어머니는 40대에 홀로 되신 뒤 노점상으로 1남2녀를 건사하신 분이다. 결혼한 지 2년 만에 어머니를 모시기로 하고 아내에게 통보하듯 전했다. 총각 때부터 마음먹은 일이었다. 주말부부로 어머니와 함께 살던 여동생도 함께였다. 어머니와 나, 여동생 사이에서 아내는 적응하지 못했다. 셋이 거실에서 웃고 떠들다 보면 어느새 아내는 혼자 방에 가 있기 일쑤였다.

 

나는 분위기를 깨는 아내에게 원망의 말을 던지곤 했다. 점차 고부간, 시누이-올케 간 감정대립도 늘었고, 아내와 나의 갈등도 커져갔다. 결국은 서로의 입에서 '이혼'이란 말까지 나왔다. 어머니는 "아비야, 이제 나 독립하려니 그만 나를 놔주거라"하며 우셨다.

 

고민 끝에 찾아간 대학 은사님은 "부모를 모시는 것만 효가 아니고 부모님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드리는 것이 효"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어머니께 집 근처의 작은 아파트를 얻어 드렸다. '형식(부모님 모시기)'에 대한 욕심을 버리니, 아내에 대한 원망도 조금씩 스러지기 시작했다.

 

마음의 짐을 던 것도 잠시. 분가한 지 6개월 만에 어머니가 덜컥 뇌경색에 걸려 몸이 불편해지셨다.'자식된 도리'를 다하지 못한다는 자괴감이 너무나 컸다. 방법을 찾아야 했다. 마음 다치는 사람 없이 모두가 주어진 자신의 역할을 다할 수 있는 방법을.

 

아내와 의논 끝에 어머니가 우리 집에서 아침식사를 하시도록 했다. 어머니는 아침마다 걷기운동(왕복 2㎞)을 하시니 좋고, 나는 매일 어머니를 잠시나마 모시고 건강을 살필 수 있다는 사실에 흐뭇했다. 아내 역시 새벽에 출근하는 형편이라 아침나절 유치원에 가는 아이들을 돌볼 사람이 필요한 상황이어서 기꺼이 받아들였다. 이젠 어머니도, 아내도, 나도 자유롭다. 서로를 조금씩 인정하고 배려하는 여유를 찾아서인 것 같다.

 

송종석(40.회사원.대전시 만년동)

 

# 노모에게 밭일을 맡기다

 

올해 92세인 어머니. 1m45㎝ 키에 체중은 60㎏가 넘는 비만이시다. 상체는 비대한데 다리 힘은 점점 빠지니 늘 자주 넘어지셨다. 1996년엔 아파트 계단에서 넘어지셔서 유언까지 받는 상태에 이르렀다. 그해 겨울 우리 집은 경기도 어느 산골에 새집을 짓고 이사를 했다. 맑은 공기 덕분인지 어머니의 건강도 호전되기 시작했다. 매일 밭에 나가 풀을 뽑고 돌멩이를 모아 나르시더니 조금씩 살이 빠지시는 게 아닌가. 나는 '기회다'싶어 아내를 시켜 어머니께 계속 밭일을 부탁드렸다.

 

"어머니, 일꾼을 사서 밭을 매면 아비가 돈을 많이 써야 해요. 그러니까 애비 직장 다녀올 동안 밭 매시고 마당 풀도 뽑아 주세요."


아들 돈 덜 쓰게 해야 된다는 생각에 어머니는 날마다 풀 뽑고 밭 매고 주먹돌을 주워 나르며 일을 하셨다. 여든이 넘으신 노모에게 조금은 무리였지만 편히 누워 계시게 하는 게 잘하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기를 7년여. 가끔 우리 집에 놀러오는 친척들은 건강해지신 어머니를 보고 깜짝 놀라곤 했다.

 

그러나 2001년 초겨울 어머니는 화장실에서 넘어져 뼈를 다치신 뒤 이제 더 이상 걷지 못하신다. 하지만 쩌렁쩌렁한 목소리는 여전하다. 어머니, 오래오래 사세요.

 

이계진(59.국회의원.한나라당 대변인.서울 흑석동)

 

# 거짓말쟁이 며느리가 되다

 

언제부터인가 전북 고창에 있는 시댁에 갈 때 미리 연락을 드리지 않는다. 우리가 가겠다고 연락하면 어머니는 그때부터 혹시 차 사고라도 날까 조마조마해하시면서 툇마루에 나와 하염없이 기다리신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007 작전으로 사전 연락 없이 불쑥 찾아가기. 이렇게 경우 없는 며느리가 되는 게 낫겠다 싶었다.

 

'불효 작전'은 또 있다. 용돈을 드리면 "나는 돈 없어도 땅에 나는 것들로 먹고산다만 너희는 돈 없으면 아이들 데리고 어떻게 사느냐"며 한사코 마다하시는 어머니. 억지로 드려도 결국은 다시 손자.손녀 손에 쥐여주시는 통에 용돈 공수 작전을 펼쳐야 했다. 바로 큰 시누의 손을 빌리는 것이다. 어머니가 큰 시누의 돈은 그나마 받으셨다. 한약이나 과일을 보낼 때도 항상 큰 시누를 통했다.

 

오해를 산 적도 있다. 소리 없이 내려갔다 올라오다 보니 자주 안 오는 무심한 며느리로 취급받기도 했고, 생전 용돈 한번 드리는 걸 못 봤다며 '짠순이'라는 오명도 뒤집어썼다. 하지만 어머니만 편하실 수 있다면 무슨 작전인들 못할까. 나는 요즘 또 하나의 작전을 구상 중이다. "아파트는 어지럽다"며 최근 4년 동안 한 번도 우리 집에 안 오신 어머니를 올해 안에 꼭 한번 모셔오고 싶다. 이만큼 넓은 집을 갖추고 살고 있는 우리 모습을 단 며칠이라도 보여드리고 싶어서다. '보쌈 작전'이라도 써야 하려나.

 

시은정(33·주부·경기도 화성시 병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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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중앙일보 2006-05-08 10: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