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대관령 터널 빠져나오는 순간 우리는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피나얀 2006. 5. 13. 21:01

 

 

▲ 대관령 고개에서 만난 아름다운 한 폭의 산수화 ⓒ2006 방상철
ⓒ2006 방상철
지난 4일 목요일 오후, 누님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이번 주말에 어머니 모시고 함께 여행을 가자는 것인데, 나는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며 잠시 망설였다. 그러다 계획을 한번 짜보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갑자기 마련된 누님의 시간. 누님에게 있어서 시간은 내가 갖고 있는 시간과 다르다.

누님은 송추에서 편의점을 하고 계신다. 벌써 7년째에 접어들고 있는데, 매형과 직원 한명, 그리고 누님. 이렇게 셋이서 24시간 동안 번갈아 가며 가게를 보고 있으니 자신의 시간을 도저히 내질 못한다. 그런데 이번에 시댁조카가 아르바이트를 한다며 여행 할 짬을 만들어 준 것이다.

6일 토요일 오후 3시, 송추에서 조카들과 어머니를 모시고 누님이 우리 집(경기도 안양)에 도착했다. 우리는 모두 한 차(9인 승합)에 몰아타고 서둘러 영동고속도로에 진입했다. 목적지를 강릉으로 잡은 까닭은 초등학교5학년인 조카의 바람 때문이었는데, 아직까지 동해바다를 못 봤다는 말을 듣고 시간상으로 제일 가까운 강릉을 택한 것이다.

새벽부터 내리던 비는 집에서부터 우리를 따라오더니 횡성을 지나 횡계에서 조금 수그러들었고, 마침내 대관령고개에 이르러야 그쳤다. 그리고 잠시 후, 창문을 활짝 열고 대관령 1터널을 막 빠져나오는 순간, 우리 모두는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바로 환상적인 운무 때문이었다.

산과 구름이 저렇게 아름다운 산수화를 펼쳐 놓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탄했고, 저 모습을 볼 수 있게 해준 자연에 감사했다.

 

▲ 이런 모습을 언제 또 볼 수 있으랴! ⓒ2006 방상철
ⓒ2006 방상철
오후 6시 30분. 어렵게 잡은 민박집에 짐을 풀고, 오랜만에 가족들과 저녁을 먹으며 이야기를 했다. 대관령고개를 다 내려와서 또 내리기 시작한 가랑비는 언제 그칠지 참 얄밉기만 하다. 아이들 뛰어놀기 좋으라고 마당이 넓은 집을 구했건만, 비 때문에 아이들은 방에서 먼지만 일으켰다. 오늘 밤 사이에 그쳤으면 좋겠는데.

다음날 오전 9시 경포대해수욕장, 아침이면 비가 어느 정도 그칠 것이라고 잔뜩 기대를 했건만 가랑비는 바람을 타고 더 심술을 부리고 있다. 우산을 이리저리 휙휙 거칠게 다루는 바닷바람 때문에 비 피하는 걸 포기했다.

동해바다에 처음 와본 어린 조카들은 말릴 틈도 없이 파도에 다가섰다가 밀려오는 물살에 금방 신발을 적시고 말았다. 바람 때문에 파도가 급하게 휘몰아쳐 미처 피하지 못 한 탓도 있지만, 동해바다의 파도가 어느 정도인지 몰랐기 때문이리라. 아쉽지만 오래 해변에 있지 못하고 젖은 신발을 손에 들고 차로 돌아왔다.

오전 9시 30분 경포대, 관동8경의 하나인 경포대에 올랐다. 이곳에 왔으면 꼭 한번 보고가야 된다는 나의 주장에 모두들 동의했고, 처음엔 달랑 정자하나 보기엔 입장료가 아깝다고 했던 누님에게 이런 저런 설명을 했더니 다른 시선으로 정자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 관동8경의 하나인 경포대 ⓒ2006 방상철
ⓒ2006 방상철
이 정자의 역사를 보면, 무려 1326년(고려 충숙왕 13년)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지금 우리가 눈앞에 보고 있는 건물도 1873년(고종 10년)에 중건한 것이라는 얘기, 3층 구조로 돼있는 정자에서 제일 넓은 1층은 무대로 쓰였고, 2층에선 선비들이 앉아 술잔을 들고 풍류를 즐겼고, 3층에는 술과 안주들을 준비한 장소로 쓰였다는 얘기 등등. 작년에 이곳에서 문화 해설사에게 들었던 얘기를 기억나는 대로 설명해주었다. 큰 조카는 관심을 갖고 얘기를 들었고 작은 조카와 그 동갑내기 내 아들은 서로 솜사탕을 뺏어먹으려 뛰어다녔다.

오전 10시 20분 오죽헌과 시립박물관. 이곳은 아내와 결혼 초에 처음 와보고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이다. 꽤 오랜 시간이 흐른 터라 모든 것이 새롭다. 오죽헌이 이름이 까마귀처럼 까만 대나무 때문이라는 사실과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선생이 태어난 곳이라는 사실을 빼곤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 몽룡실(보물 제165호), 조선 초기에 지어진 별당 건물로 율곡 이이 선생이 태어난 곳이다. ⓒ2006 방상철
ⓒ2006 방상철
입구에서 받아든 팸플릿을 펼쳐보았다. 원래 오죽헌은 1505년 형조참판을 지낸 최응현의 소유였으나 둘째딸을 이사온에게 시집보내면서 사위에게 물려주었고 한다. 여기서 이사온은 신사임당의 외할아버지가 된다.

이사온은 최씨와의 사이에서 딸만 하나를 두었는데 서울에 사는 신명하에게 시집을 보냈다. 그리고 신명화와 이씨 사이에서 딸이 다섯 명 태어났는데 그 중 둘째가 사임당이다. 사임당의 어머니는 서울로 시집을 갔지만, 친정어머니가 병이 나자 그 간호를 위해 강릉에 내려왔다. 그리고 이곳에 머무르다가 오죽헌에서 사임당을 낳았던 것이라고 한다.

 

▲ 몽룡실 내부 ⓒ2006 방상철
ⓒ2006 방상철
사임당 또한 서울 이원수에게 시집을 갔으나, 친정에 홀로 계시는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이곳에서 지내는 날이 많았고, 그 때문에 율곡 선생도 이 집에서 태어나게 된 것이란다.

경내에는 몽룡실, 문성사, 바깥채, 안채, 어제각을 비롯해 율곡기념관과 향토민속관, 역사문화관이있다. 또한 야외에도 선정비군, 고분, 강릉귀부(강원도 문화재자료 제2호), 강릉석불여래입상(강원도 문화재자료 제3호), 강릉옥천동석탑재(강원도 문화재자료 제4호)등 많은 볼거리가 있다.

오후 1시 30분 통일공원. 오죽헌을 나오면서 이제 비는 거의 그쳤다. 초당순두부 마을에서 점심을 먹고 정동진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그렇게 해안도로를 따라가다가 도착한 곳은 통일공원. 1996년 9월 북한잠수정이 파손되면서 안인진 바닷가에서 발견된 사건이 있었는데, 그때 그 잠수정을 전시해 놓은 곳이다. 또한 4천 톤급의 노쇠한 해군함정도 함께 전시돼있다.

 

▲ 북한 잠수정, 내부에 들어가 볼 수 있는데 생각보다 상당히 비좁다. ⓒ2006 방상철
ⓒ2006 방상철
오후 2시 30분 정동진. 정동진 역사는 사람들로 많이 붐볐다. 더러 외국인들의 모습도 보였다. 아니, 어쩌면 내국인보다 외국인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입장권을 끊고 철길에 들어섰다. 마침 들어오는 기차가 있어 조카와 아들이 신나했다. 왜! 아이들은 기차를 저렇게 좋아하는 것일까?

유명한 소나무 뒤로 언제 만들어 졌는지 알 수 없는 조각상이 세워져있다. 계속 변화를 추구하는 정동진의 모습이 그리 달갑지는 않지만, 변함없는 바닷가 풍경은 두말할 것 없이 아름답다. 멀리 해변을 바라보았다. 연인 두 쌍이 바다를 바라보며 사랑을 속삭이고 있다. 그들은 내가 뒤에서 훔쳐보는 줄도 모르고 꽤 오래 그렇게 서있다. 바다만큼이나 그 모습이 아름답다.

 

▲ 정동진 바닷가에 서있는 다정한 연인들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2006 방상철
ⓒ2006 방상철
날씨가 꽤 쌀쌀해 해변에는 내려가지 않았다. 혹시나 아이들이 또 물에 들어가 옷을 적실까봐 걱정도 되어 아예 저곳은 못 내려가는 곳이라고 거짓말을 하고 역사를 빠져나왔다.

오후 3시 15분 동해고속도로. 정동진에서 헌화로를 거쳐 옥계까지 달렸다. 몇 달 전에 봤던 헌화로와 지금의 그곳은 사뭇 달랐다. 아마도 거친 파도가 없어서 그랬을 것이다. 너무 조용한 해안도로는 참 싱거웠다. 그리고 옥계에서 고속도로에 올랐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밤에 다시 가게를 봐야하는 누님에겐 시간적 여유가 얼마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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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오마이뉴스 2006-05-12 1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