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육아】

놀이는 아이와 의사소통 지름길

피나얀 2006. 5. 13. 21:18

 

지난해 필자는 초등학교 3학년에 다니던 아들과 함께 한 방송에 출였했다. 사회자가 질문했다. “놀이중에서 무엇이 가장 재미있 죠” 그 말에 대뜸 “칡캐기요”라고 한다. 사회자는 순간 당황 했고 방청석은 썰렁했다.

 

아이가 6세 때, 누나와 함께 뒷산에 칡을 캐러갔다. 호미와 괭이 를 들고 한 뿌리를 캐왔는데 그 과정이 너무 힘들었다.

 

처음 발견할 때는 지름이 1㎝ 정도로 가늘었는데 무릎 정도 파고 들어 가니 어른 팔뚝 굵기가 되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돌과 나 무 뿌리가 방해를 해서 더 이상 캘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뽑 기로 했다. ‘하나, 둘, 셋’을 하며 동시에 힘을 주었지만 실패했다.

 

함께 파이팅을 하며 혼신의 힘을 다한 끝에, 중간에서 칡이 찢어지며 셋이 동시에 뒤로 넘어졌다.

 

아이는 산삼을 캔 듯 칡을 어깨에 메고 콧노래를 부르며 집으로 돌아왔다.

 

지난 한식에 성묘를 갔다. 아이는 염불보다 잿밥이라고 칡을 캐 자고 성화다. 필자는 꾀를 내어 가느다란 칡을 선택하여 금방 캐 주려고 했다.

 

그런데 땅을 조금 파니 굵은 칡이 보이는 것이 아 닌가. 옆의 칡뿌리가 통과하다 발견한 것이다.

 

아이는 마치 로또에 당첨된 양 무척 기뻐했다. 의기양양, 희희낙 락한 얼굴은 표정관리가 불가능할 정도였다. 선뜻 사촌동생에게 도 나누어 주었다.

 

요즘, 놀이가 창의력을 길러주고, 좋은 아빠가 된다는 사실에 대 해 공감대의 폭이 넓어지고 있다. 그런데 놀이를 보는 아빠와 아 이의 시각차가 의외로 많은데 한 번 점검해보자.

 

아빠는 놀이가 시작되기 전에 끝나는 시간을 예상하지만 아이의 마음에는 시간은 없고 기대감만 있다.

 

아빠는 아이와 과격하게 놀면 피곤하지 않을까, 다치지 않을까, 공부에 방해가 되지 않을 까 라며 복합적이며 입체적으로 생각하지만 아이는 단순하고 평 면적이다.

 

아빠는 자주 한 놀이에 대해 아이가 식상해 할 것을 두려워 하지 만 아이는 재미만 있다면 어떠한 리바이벌도 상관없다.

 

아빠는 검증되지 않는 놀이를 두려워하지만 아이는 아빠와 함께라면 어 떠한 도전도 두렵지 않다.

 

아빠는 공간의 한계성을 핑계로 삼지 만 아이는 아빠와 이불위에서 씨름을 할지라도 즐거워한다.

 

아빠 는 비가 온다면 마음을 닫고 핑계를 삼지만 아이는 바닥에 고인 빗물을 힘차게 밟는 놀이도 한량없이 기뻐한다.

 

많은 아빠들이 아이의 마음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 간극은 점점 벌어지고 있다.

 

더구나 사춘기가 되어서야 놀이의 중요성을 알고 후회를 해봐야 공염불이다. 놀이의 중요성을 아는 사람은 실천하지만 실천하지 않는다면 모르는 것과 다름없다.

 

왜 놀이가 왜 중요할까. 그 자체가 의사소통의 지름길이기 때문 이다. 아이와 소원해졌다고 갑자기 “얘, 아빠와 애기좀 할까” 라고 묻지마라.

 

오히려 뜬금없는 제안이 더욱 서먹하게 만들 수 있다. 모션은 이모션을 리드한다. 한시간의 설교보다 1분놀이가 더욱 효과적이다.

 

아빠들이여! 계절을 느껴보자. 그리고 자신이 어릴 때 놀던 놀이 를 회상해보자. 그 생각을 따라가면 쉽게 놀 수 있는 접점을 찾 을 수 있다. 그 안에 무궁무진한 놀이의 창고가 숨어있다.

 

멋 진 아빠되기란 그 방법이 너무 가까이 있고, 너무 쉬워서 오히 려 보지 못하고, 실천하지 못할 뿐이다.

 

 

 

 

 

 

 

 

 

권오진 ‘아빠의 놀이혁명’저자(www.swdad.com)

출처-[문화일보 2006-05-12 1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