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동아일보 2006-06-09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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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분다.”
누군가 전해 준 그 한마디만으로 미국 하와이에서 온 11세 소년 코너 백스터의 심장은 쿵쾅거렸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 인사하느라 정신없던 그에겐 이제 단 한 가지 생각만 떠오른다. ‘파도를 가르고 싶다.’
처음 와 본 한국. 어젯밤 울산에 도착해 도시를 봤을 때 코너는 실망이 앞섰다. 수많은 공장 굴뚝의 불빛은 ‘성탄절 트리’처럼 근사했으나 멋진 바다를 상상하긴 어려웠다. 근심 어린 표정의 코너에게 한국인 가이드는 미소를 지었다.
“내일 아침이면 생각이 바뀔 거야.”
가이드의 말이 맞았다. 아침이 되자마자 뛰어나간 진하해수욕장(울산 울주군)은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푸른 하늘과 또렷이 구분되는 초록빛 바다. 발 아래 밟히는 부드러운 모래. 그리고 서남풍이 코끝을 간질이며 불어 왔다.
“바로 이거야.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어(It can′t be better).”
오후 2시. 좋은 바람이 불어 온다는 얘기가 돌자마자 코너는 서퍼용 슈트로 갈아입었다. “준비됐지?” 함께 온 동갑내기 친구 제인 슈바이처가 어깨를 툭 쳤다. 끄덕. 어느새 몰려든 서퍼들과 함께 우르르 바다로 나섰다. 물이 차가웠지만 환호성을 내지르는 주위의 열기에 몸은 더 뜨거워졌다.
보드에 몸을 올리고 붐(boom·바람의 방향을 조정하는 손잡이)을 잡았다. 바람을 맞은 돛이 부르르 떨자 보드는 파도를 넘는다. 옆에서 속도를 내던 한국인 서퍼가 그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코너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피어난다. 언어도 나이도 상관없다. 바다 위에서 바람에 몸을 맡기면 모두가 친구다. 윈드서핑! 이제 시작이다.》
○ 윈드서핑의 메카 진하해수욕장
울산 시내에서 남쪽으로 20여 km 떨어진 진하해수욕장은 고운 모래와 소나무 숲이 어우러져 피서지로 인기가 높다. 부산에서도 자동차로 40분 거리여서 사계절 내내 낚시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진하해수욕장은 한국 ‘윈드서핑의 메카’로 불린다. 주말만 되면 전국에서 윈드서핑을 즐기러 오는 이들이 많다. 서울에서 비행기를 이용해 오는 단체팀도 있어 바다 위에 떠 있는 윈드서핑의 돛이 200개가 넘을 때도 있다.
기자가 도착한 것은 지난달 31일 오후. 수영하기에는 물이 차가운데도, 윈드서핑을 즐기는 이들은 40여 명에 이른다. 하얗게 물보라를 일으키며 시원하게 바다를 갈랐다. 속도도 빨라 지평선 위에 한 점으로 보이던 보드가 차 한 잔 마실 동안에 백사장까지 도착한다.
울산 학성여고 교사인 정경천(42) 씨. 검도 스킨스쿠버다이빙 등 안 해본 운동이 없는 그는 2001년 윈드서핑을 접한 뒤 다른 운동은 깨끗이 잊었다.
“제주도를 빼면 육지에선 진하해수욕장이 최곱니다. 수질이 깨끗하고 만으로 둘러싸여 포근하죠. 무엇보다 바람이 좋아요. 윈드서핑은 바다로 나갈 때 바람이 돛과 90도를 이뤄야 하거든요. 동해인 진하에서 서남풍이 부니 말 다한 거죠. 오죽하면 ‘진하 때문에 울산을 못 뜬다’고 하겠습니까.”
윈드서핑 인프라가 잘 구축된 것도 강점. 서울을 뺀 전국에서 윈드서핑 인구가 가장 많다. 전직 윈드서핑 국가대표 윤해광 씨가 운영하는 마우이 스포츠(www.mauisports.co.kr)를 포함해 해변 곳곳에 윈드서핑 업체들이 있어 초보자도 쉽게 배울 수 있다.
1∼5일 열린 ‘2006 울산컵 국제윈드서핑대회’는 진하해수욕장이 윈드서핑의 메카임을 입증해 주는 사례다. 올해 2회이지만 세계 윈드서핑 톱 랭커들을 포함해 25개국 400여 명의 선수들이 참여했다.
국제프로서핑선수협의회(PWA) 회장인 지미 디아즈(세계랭킹 7위) 씨는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왔다”며 “진하는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서핑 장소여서 외국 서퍼들에게도 꼭 한번 가 보고 싶은 곳으로 입소문이 나 있다”고 말했다.
○ “윈드서핑의 속도감은 마약입니다.”
“속도감이죠. 오토바이 승마 모두 해 봤지만 윈드서핑의 속도감은 못 따라옵니다. 빠를 땐 시속 50∼60km 이상 나옵니다. 별거 아니라고요? 한번 타 보세요. 바다 위에서 바람 맞으면 시속 300km 정도로 느껴져요. 그 짜릿함은 설명이 안 되죠. 마약도 이런 마약이 없습니다.”
대학 신입생 때 선배의 꼬임에 빠져 윈드서핑 동아리에 들었다는 이재민(35) 씨. 지금은 그 선배가 고맙다. 윈드서핑만 타면 모든 스트레스를 날려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씨의 가장 큰 스트레스는 주말에 불가피한 사정 때문에 윈드서핑을 못하는 것이라고 한다.
윈드서핑은 만만한 운동이 아니다. 어설피 배워 탔다가 돛대에 부딪혀 뼈가 부러지는 경우도 있다.
이 씨는 “서퍼들은 스키 보드를 금방 배운다. 물 위에서 익힌 균형 감각 덕분인데 그에 비하면 땅 위의 운동은 장난”이라고 말한다. 그만큼 균형 잡기가 어렵다.
“그렇다고 여성이나 아이가 배우기에 위험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코너나 제인도 잘 타잖아요? 요즘은 초보자용 보드도 나오고 강습도 체계가 잡혀 쉽게 배울 수 있습니다. 성인 남성은 한나절만 연습하면 기초는 떼요. 어린이들은 오히려 더 빨리 배웁니다.”
수영을 할 줄 알면 좋지만 구명조끼를 입기 때문에 상관은 없다. 더욱이 힘으로 하는 운동이 아니어서 최근엔 여성 서퍼도 늘어나는 추세다. 물에서 하는 운동이어서 얼굴이 그을릴 수 있으나, 모자 고글 자외선차단제로 해결할 수 있다.
울산컵에 초대받아 온 코너와 제인은 6∼7세부터 서핑을 탔다. 그들은 “어릴 때부터 윈드서핑을 가르쳐 준 부모가 제일 고맙다”고 말했다.
“친구들은 컴퓨터 게임이 최고인 줄 알아요. 게임은 재미있지만 실제 세상(real world)을 보지 않아요. 윈드서핑은 자신만을 믿고 바다로 나가는 겁니다. 내 힘으로 바다를 헤쳐 나갈 때의 기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어요.”
○ 국내 윈드서핑 인구 7만∼8만 명
윈드서핑은 장비 구입 외에 추가비용이 크게 들지 않는다. 새 장비를 구입하면 슈트를 포함해 200여만 원. 초보자들은 중고 제품을 많이 이용하는데 100만 원이면 충분하다.
윈드서핑은 여름에만 타는 한철 스포츠가 아니다. 추위를 막아 주는 장비 덕분에 마니아들은 영하의 겨울에도 탄다. 국내 서퍼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기는 9, 10월.
“농어민이 들으시면 혼쭐날 소리지만 서퍼들은 태풍온다는 뉴스가 반갑습니다. 태풍이 도착하기 1, 2일 전의 바람이 윈드서핑엔 최고거든요.”(한국윈드서핑협회 김철진 사무국장)
현재 국내 윈드서핑 인구는 7만∼8만 명. 진하해수욕장을 비롯해 전국 각지에 클럽이나 동호회가 있다.
서울에는 뚝섬지구 시민공원에만 60여 개의 클럽이 있고 한남지구 반포지구 성산대교 부근에도 있다. 국민생활체육 전국윈드서핑연합회의 홈페이지(www.kwasa.org)에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강습비는 4, 5일 코스가 20여만 원. 지역마다 차이가 있지만 월회원은 30만∼40만 원, 연회원은 80만∼90만 원 선이다. 대부분의 클럽은 연회원의 가족은 무료로 가르쳐준다.
윈드서핑의 장관을 보고 싶다면 9월 1일 강원 강릉시로 가 볼 만하다. 경포대 앞바다에서 세계윈드서핑협회(IWA)와 강원도가 주최하는 ‘강릉 2006 포뮬라 윈드서핑 월드 챔피온십’이 열린다. 40여 개국에서 300여 명의 서퍼들이 참가한다.
▼올해 2회 맞은 울산컵 국제윈드서핑대회▼
올해 2회를 맞은 ‘울산컵 국제윈드서핑대회’는 국내에서는 주목받지 못했으나 스타TV를 통해 세계 120개국에 방영됐다.
무엇보다 대규모 국제대회가 지역 동호회에서 출발했다는 게 특징이다. “윈드서핑이 좋고 울산이 좋아” 모인 사람들의 열정만으로 시작한 대회가 울산을 다시 보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 모임의 중심에는 ‘울산 윈드서핑 연합회’의 백원진(정형외과 의사) 회장과 한문철(SK 이사) 고문이 있었다.
―선수협회도 아닌 아마추어 동호회가 국제행사를 열어 고생이 많았겠다.
“첫해에 비하면 그래도 나은 편이다. 윈드서핑이 좋아 외국처럼 세계대회를 한번 열어 보자는 열정만으로 일을 벌였다.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회원 모두가 생업도 뒤로하고 열심히 애써 준 덕분에 나아지고 있다.”(백 회장)
―공업 도시로 알려진 울산이 윈드서핑의 메카라는 게 이채롭다.
“울산에 공장이 많지만 생태 환경은 예전과 크게 달라졌다. ‘똥강’이라 불리던 태화강이 깨끗해진 것을 보라. 요즘은 태화강 하류에서도 윈드서핑을 한다.”(한 고문)
―진하해수욕장의 장점은 무엇인가.
“한국에서 자연적으로 윈드서핑에 가장 적합한 장소다. 부산도 가깝고 울산공항이 있어 접근성이 좋다. 숙박시설도 충분하다. 게다가 한국 문화의 정수를 간직하고 있는 경북 경주시도 가까워 관광 코스로 개발해도 무리가 없다.”(한 고문)
―울산컵의 비전과 계획을 말해달라.
“일단 지속적으로 이 대회를 매년 개최하는 것이다. 해외에서는 국제대회가 각국을 돌며 리그
형식으로 열리는데 여기에 울산컵이 포함되도록 노력하겠다. 내년에는 한국과 일본의 윈드서핑 교류를 위해서 윈드서핑 대한해협 횡단도 기획하고
있다.”(백 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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