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태극전사 반겨줘 더 살가운 글래스고

피나얀 2006. 6. 10. 19:50

 

출처-[헤럴드 생생뉴스 2006-06-10 11:41]

 

 


[여행] 브라이언에반스의 수채화`조지스퀘어`가 바로 이곳

 

그는 자신을 `박만식`이라고 소개했다. 이외로 중국인이다. 할아버지가 한국인이다. 누나들은 한국말이 유창하다. 그는 달랐다. 전혀 못한다. 너무 어렸을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셔 한국말을 배울 틈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름만은 한국어로 지었다.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의 센트럴 스테이션(중앙역) 부근에서 박만식씨와 우연히 만났다. 중앙역 앞에서 신문 노점상에게 `조지 스퀘어`로 가는 길을 물었는데, 지나가던 그가 들었나 보다. 그는 조심스레 다가와 물었다. "한국인 인가요." 고개를 끄덕였더니, 얼굴에 화색이 돈다. 그곳까지 데려다 주겠단다.

 

조부에게서 물려받은 피 때문인가. 한국인은 그에게 살가운 존재인가 보다. 두개의 블럭, 다시 왼쪽으로 세 블럭을 지나더니 멀리 보이는 조지 스퀘어를 손으로 가리킨다. 그리고 휑하니 돌아선다. 이별에도 익숙한 듯하다. 그의 이름은, 그의 존재는 다섯개의 블록 안에만 숨쉰다. 나에게는 그렇다. 하기사 존재란 현재진행형 아닌가. 그의 이력도, 미래도 궁금해 하지 말자.

 

`조지 스퀘어`(George Sqare)에 발을 들여놓으니 황량한 들판이다. 플라타너스 몇 그루만 눈에 띤다. 쓸쓸함이 폐부를 찌른다. 벤치 곳곳에서는 노인들이 햇볕을 쬐고, 한 무리의 청춘은 뭐가 그리 바쁜 지 광장을 가로질러 훽 지나친다.

 

이토록 을씨년스러운 조지 스퀘어를 누가 `열정의 광장`이라고 했든가. 브라이언 에반스였다. 화가인 그는 조지 스퀘어를 너무도 사랑했다. 웨일스에서 태어났는데도 1988년 이후 글래스고로 둥지를 옮겼을 정도다. 그에게 광장은 영감의 보고(寶庫)다. 그래서일까. 그의 수채화에 담긴 조지 스퀘어는 포근하다. 흔들리는 영혼을 위한 아름다운 들녘이다.

 

세월의 더께가 혹시 광장의 진면목을 바꿨나. 왠지 허전하다. 광장을 둘러싼 빅토리아 양식의 건물이 몇개 헐려나갔기 때문인가. 당혹스러움을 간신히 추스리고 나니 조지 스퀘어의 옛정취를 느낄 수 있는 조각이 눈에 들어온다. 조지왕 동상이다. 동상 앞에는 `In commentation of Her Majesty visit to glasgow 14th august 1849`란 글귀가 새겨져 있다.

 

조지왕 동상은 나그네 시선을 잡지만 이곳 사람들에게는 잊고 싶은, 그러나 절대 잊혀지지 않는 슬픈 기억이다. 스코틀랜드 치부이기도 하다. 스코틀랜드인의 피눈물이 스며있다. 잉글랜드에게 1707년 병합된 스코틀랜드 비운의 역사를 상징해서다. 말 위에 탄 조지왕은 영락없이 대영제국 통치자 다운 위세로 변방족을 호령하는 자세다.

 

그러나 조지 스퀘어는 지난날 수치를 티내지 않는다. 광장은 현재를 품고 있다. 광장을 배경으로 글래스고 시청이 떡 버티고 서있다. 르네상스 양식의 대리석 건물에 첨탑이 어우러져 공주가 사는 성 같다. 시청사 어디서도 서글픈 역사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글래스고가 번성의 절정이던 시기에 세워졌기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다. 항구도시인 글래스고는 런던, 버밍엄에 이어 영국에서 세번째 도시로 급성장했다. 산업혁명 시절 `대영제국의 공장`으로 통했다. 망치소리만 요란한 건 아니다. 글래스고대학에서 경제학과 윤리학을 가르쳤던 애덤 스미스는 세계적 유산이다.

 

광장은 결코 목청을 돋우지 않는다. 무역항으로써 한 시대를 풍미했다고 우쭐대는 법도 없다. 영락을 몸소 체험해서다. 조지 스퀘어는 겸손하다. 그래서 슬프다. 건드리면 톡 터질 듯한 억눌린 사연이 흐른다.

 

정적과 쓸쓸함과 폭풍 같은 객기가 서려있고, 권태와 활기가 공존하고, 서러움과 화려함이 동시에 숨쉬는 모습, 바로 그것이 조지 스퀘어의 자화상이다. 블루에 한없이 가까운 수채화다. 마음 속에만 그릴 수 있는. 조지 스퀘어는 서러운 이들의 벗일 수밖에 없다.

 


[여행메모]

 

▶조지 스퀘어=16C경부터 자연스럽게 생긴 광장. 글래스고 관광의 중심지이며 빅토리아 양식의 고전풍 건물로 둘러싸여 있다. 시청 건물을 품에 안은 풍광도 인상적이다. 1880년대에 지어진 르네상스 양식의 대리석 건물인 시청은 문화적 가치가 높다. 조지왕 동상은 조지왕이 1849년 글래스고에 온 것을 기념하기 위해 생겼다.

 

▶글래스고에 가려면=인천공항~글래스고공항 직항은 없다. 런던 히드로공항이나 독일 프랑크푸르트 등 유럽의 대형 공항을 경유해야 한다. 글래스고공항은 시내에서 13km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으며, 연간 600만명이 오가는 스코틀랜드 제1의 공항이다. 뉴욕과 시카고, 토론토 등 북미 대륙과도 직항이 뚫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