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연합르페르 2006-06-08 10:11]
주룩주룩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회백색의 층운은 낮게 똬리를 틀고 앉아 섬의 머리를 뒤덮었다. 하지만 세상을 가라앉히는 음산함에도 불구하고 결코 을씨년스럽지는 않았다. 갈증에 시달리던 식물들은 촉촉한 단비에 기지개를 켜고 약동했다. 비가 내린 뒤 완도 수목원은 풋풋한 생명감으로 충만했다.
식물은 언제나 인간을 기분 좋게 만들어준다. 봄이 왔음을 알리는 상큼한 식감의 나물과 시각을 현혹시키는 형형색색의 꽃, 스트레스로 지친 심신을 달래주는 책상 위의 자그마한 화분까지 소소하지만 의미 있는 행복을 선사한다. 이러한 식물들이 무리지어 있는 수목원은 행복의 보고다.
외국여행을 떠날 때면 대개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공부하고 길을 나서게 마련이다. 그런데 국내여행에서는 그 고장의 상식에 대해 아예 무관심한 채로 가는 사람이 많은 듯하다.
의사소통에 불편함이 없기 때문인지, 아니면 이전에 숱하게 많이 들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는 만큼 보인다'는 원칙은 국경을 벗어나야만 적용되는 모양이다. 하지만 새로운 것과의 대면은 언제 어디서나 배경지식을 갖춰야 더욱 재미있게 다가오는 법이다.
남녘에서 읊는 신록예찬
도시에서 나고 자란, 그래서 자연을 접할 기회가 적었던 '도시인'에게 나무는 참으로 어려운 상대다. 확신을 갖고 구별해낼 수 있는 수종을 모두 합쳐도 열 손가락에 미치지 못할 정도이니 매우 '무지'한 편이다. 학교에서 나무에 대해 자세히 배워본 적도 없을 뿐 아니라 공부해야 할 특별한 이유도 없었던 탓이다.
그래서 수목원으로 향할 때마다 심경이 복잡하다. 나무의 명칭과 특징, 그에 얽힌 사연을 꼼꼼하게 따져보고 확인하기에는 헷갈리는 것이 너무나 많다. 연예인들의 얼굴과 이름은 쉽게 짝지으면서도 나무는 그렇게 되지 않는다.
실타래 없이 칼만 들고 미로 속으로 뛰어든 형국이건만, 그다지 나쁘지 않은 것은 폐부를 정화시키는 맑은 공기와 눈을 시원하게 해주는 녹색이 반겨주기 때문이다.
완도 수목원은 완도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상황봉 기슭에 자리한 지라 산 속에 살포시 안겨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곳은 인위적으로 조성된 다른 수목원들과는 달리 자연 상태의 원시림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폭신폭신한 소재가 융단처럼 깔려 있는 산책로를 따라 삼림욕을 시작했다.
왼편으로 묘목명이 적힌 표지가 나란히 꽂혀 있고 나무들이 정렬해 심겨 있었다. 아왜나무,
협죽도, 돈나무, 꽃댕강나무 등 기상천외한 이름을 가진 녀석이 대부분이다. 필시 어떤 의미가 담겨져 있을 텐데, 이성과 감성을 총동원해도
유추해내기가 쉽지 않다.
'화살나무'를 들여다보니 안쪽에 꽃인지 잎인지 모를 작은 것들이 붙어 있다. 잎겨드랑이에서 갈라져 나와 연둣빛을 띠고 있는데, 청초하고 순수했다. 나중에 식물도감에서 찾아보니, 5월에 피는 꽃이란다.
생물은 태어나서 어른이 되기 전이 가장 아름답다. 겨우내 묵혀 두었던 자양분을 올려내 탄생시킨 싱싱하고 연한 녹색 잎에는 탱글탱글한 물방울까지 맺혀 있어서 더욱 푸르러 보였다.
수목원 중앙에는 아열대식물과 선인장을 재배하고 있는 거대한 온실이 있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선인장이었다. 모든 선인장은 울퉁불퉁한 줄기에 가시가 삐죽삐죽 솟아난 재미없는 모습을 하고 있다는 고정관념을 깨 주기에 충분했다. 동글동글하게 생긴 '성미인', 초록색 장미 같은 '성을녀'처럼 이름도 형태도 독특했다.
식물원을 둘러보는 동안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은 이미 깨끗이 사라졌다. 잎사귀의 모양이나 줄기에서 잎이 돋아나는 형태가 저마다 다르다는 사실에 감탄하고 놀랄 뿐이었다. 나무도 저마다 다른 생명을 지니고 있고, 그러한 개성을 존중하고 배려해줘야 한다는 사실을 막연하게나마 깨닫는 데 만족했다.
▶여행정보 = 개장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며 입장료는
성인 2천 원, 청소년ㆍ군경 1천500원, 어린이 1천 원이다. www.wando-arboretum.go.kr
061-552-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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