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오마이뉴스 2006-06-17 14:21]
벽돌은 그저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 벽돌 위에 하나를 얹고 또 하나를 옆에 세워 다시
그 위로 하나를 얹으면 어느덧 벽돌은 부분을 떠나 전체를 지향한다. 음악당 전체를 거대한 악기로 만들어버리는 수십 명의 관현악도 실은 하나의
바이얼린과 하나의 첼로와 또 그렇게 수많은 부분들이 순간적으로 오선지의 음표 위를 스케이팅함으로써 압도적인 스케일의 전체성을 완성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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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분이 전체로 확산되어 가는 쾰른의 어느 현대건축 ⓒ2006 정윤수 |
ⓒ2006 정윤수 |
그 위치가 어디인지 묻지 않아도 된다. 당신은 그저 쾰른에 도착하기만 하면 그 대성당이 어디에 있는지를 단번에 알아볼 수 있다. '아, 저것이구나!' 하는 탄성과 함께 반듯한 길들 중에 아무 거나 잡아서 달리면 하늘 위에 닿아 있는 중세의 마천루를 만나게 된다.
나는 지난 14일 밤(독일 시각) 도르트문트에서 벌어진 독일과 폴란드 청년들의 흥미로운 액션 게임을 본 후 다음 날 대표팀 공개 훈련과 아드보카트 감독 공식 인터뷰를 취재하기 위해 쾰른으로 이동했는데 도저히 그 압도적인 질량과 높이의 대성당을 외면할 수가 없었다.
누구라도 쾰른을 방문한다면, 설령 그쪽에 가서 미사 드릴 일도 없고 달리 일감이 바빠서 시간을 쪼개기가 어렵다 해도, 어김없이 차륜이 그쪽을 지향하여 달려가는 것을 가로막을 방법을 찾지 못할 것이다.
마침 서 너 시간의 빈 틈이 있어 나는 쾰른 대성당으로 갔다. 21세기의 메트로폴리스를 형성하고 있는 주위의 현대건축물이 고개를 들지 못할 정도로 압도적인 위용을 드러낸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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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쾰른 대성당의 웅장한 위용 ⓒ2006 정윤수 |
ⓒ2006 정윤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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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쾰른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2006 정윤수 | |
ⓒ2006 정윤수 |
아, 저 대성당 역시 처음은 벽돌 하나였을 것이다. 아니 대리석이던가. 아무튼 모든 차량이 아우토반의 소실점을 향하여 질주하듯이 작은 부분은 낱낱의 미세한 세계에서 출발하여 장차 거대한 전체성으로 총합되어 나간 바가 되었으니 나처럼 '믿지 않는 자'의 심연에 침전된 약간의 강박증과 우울증을 더욱 옥죄어 눌러버리는 쾰른 대성당은 실로 엄청난 스케일의 전체성으로 인하여 지난 수세기 동안 북독일 검은 숲을 장악하고 있었을 터였다.
그런데 관광지였다. 우리로 치면 불국사의 유서와 웅자를 시끌벅적하게 둘러보는 광경이랄까. 아무튼 인솔자의 깃발을 따라다니는 단체여행객에서 배낭을 둘러맨 젊은이들, 근처의 쇼핑몰을 둘러본 끝에 잠시 산책삼아 나온 사람들에 나처럼 실없는 치들까지 더하여 쾰른 대성당은 아주 웅장한 관광 코스의 리얼리티로 꽤나 소란스러웠다.
그래서 나는 빨리 나왔다. 유럽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랜드마크가 도처의 성당이니 쾰른에도 모든 신앙심과 권력이 응집된 대성당이라는 전체성 근처에 '소성당'들이 적절한 부분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나는 쾰른 대성당과 맞물려 있는 번잡한 쇼핑몰 거리를 빠져나와 대로변에서 잠시 둘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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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마리엔 성당을 산책하는 주민 ⓒ2006 정윤수 |
ⓒ2006 정윤수 |
나는 성당 앞마당에서 한참 동안 앉아 있었다. 과연 부분은 아주 정갈한 리듬을 타고 전체를 지향하고 있었다. 최초의 돌(점)이 풍만한 기둥(선)을 지향하고 그것이 다양한 갈래의 벽(면)을 형성하여 마침내 소박하면서도 리드미컬한 성 마리엔 성당이라는 전체를 형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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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마리엔 성당 계단에서 '디테일'을 찾고 있는 다니엘 ⓒ2006 정윤수 |
ⓒ2006 정윤수 |
다니엘. 26세. 그래픽 디자이너라고 했다. 나는 짐짓 농담부터 건넸다.
"그 사이로 동전이라도 떨어졌는가?"
"….어, 나는 지금 뭔가를 찾고 있다."
"당신이 찾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지금 디테일을 찾고 있다."
"그 계단 아래에 어떤 디테일이 있는가?"
"약간의 리듬이 있고…또, 하여간 찾고 있다."
"작은 패턴들이 당신이 찾는 디테일인가?"
"…그런 셈이다."
"그러한 디테일을 오랫동안 찾아 다녔는가?"
"몇 개월 쯤 되었다."
"디자이너?"
"그래픽 전공이다."
그가 좀더 자신의 작업에 몰두하기를 원하는 듯하여 나는 뒤로 물러섰고 그가 반대편 계단으로 넘어가서 새로운 디테일을 찾는 동안 나는 성 마리엔 성당의 선들이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한 채, 다만 맞대어 있다는 이유로 자연스럽게 만들어내고 있는 리듬을 바라보다가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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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마리엔 성당의 소박하면서도 리드미컬한 선들 ⓒ2006 정윤수 |
ⓒ2006 정윤수 |
주차장으로 가기 위하여 중앙역의 플랫폼을 관통해야 했는데, 나는 또다시 지체할 수밖에 없었다. 쾰른 중앙역으로 들어서자 적지 않은 사람들이 고개를 치켜들고 있었다. 그들의 시선을 따라 천정을 바라보았는데 그곳에 거대한 천정화가 그려져 있었다.
저 고딕 시대의 궁륭과 벽들 그리고 신실한 기도의 합창이 하늘에 닿을 수 있도록 높이 쌓은 성당의 천정 위에는 언제나 거대한 규모의 천정화가 그려져 있었으니 지금 이 순간 쾰른 중앙역의 천정에도, 롤랑 바르트의 제목 그대로 '현대의 신화'가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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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구 스타를 소재로 한 쾰른 중앙역의 천정화 ⓒ2006 정윤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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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패트롱이 자신의 악사와 기사와 시인들을 앞세워 그 자신의 광휘를 드높였듯이 이 천정화는 '아디다스'라는 패트롱이 기획한 것으로 그들의 기획에 의해 끝없이 욕망의 신화를 재생산하는 전설들이 천정화의 주인공이 되어 중앙역 천정을 진공 상태의 그라운드로 만들어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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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역 천정화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 ⓒ2006 정윤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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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버쿠젠 바이아레나 구장 내 패스트푸트점에서 축구 중계를 보고 있는 독일인 부자 ⓒ2006 정윤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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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레버쿠젠 바이아레나 구장으로 갔다. 선수들은 가볍게 몸을 풀고 족구를 하러 떠났고 아드보카트 감독은 다소 신경질적인 인터뷰를 끝냈으며, 이영무 기술위원장은 대단히 의전적인 말로 기자회견을 마쳤다.
나는 바이아레나 구장의 패스트푸드점에 앉아 잉글랜드가 후반전 끝 무렵에 두 골을 넣는 것을 지켜보았다. 꼬마 아이를 데리고 나온 중년 남자도 텔레비전의 바로 밑에 앉아서 골이 들어갈 때마다 실망하는 소리를 냈다. 독일인임이 틀림없었다. 꼬마는 '어린이 세트'에 딸려 나온 플라스틱 장난감에 더 정신이 팔려 있었다. 아직 현대의 전설을 만끽할 나이는 아니었다.
심판의 휘슬로 경기가 종료되었다. 이변이 없는 첫 월드컵이라고 할 만큼 독일, 스웨덴, 잉글랜드 등 유럽의 강호들이 막판의 집중력으로 16강을 선점하게 되었다. 그 바람에 과거의 나이지리아, 카메룬, 세네갈처럼 세상 사람들의 모든 편견과 상식을 뒤집어 버리는 파격의 전설을 찾아보기 어려운 '밋밋한' 조별 리그가 어느덧 중반을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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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범근 수원삼성 감독의 현역 시절 얼굴이 그려진 레버쿠젠 바이아레나 구장의 벽화 ⓒ2006 정윤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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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xn--910bm01bhpl.com/gnu/pinayarn/pinayarn-pinayarn.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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