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차 붐'은 어디서나 전설이었다

피나얀 2006. 6. 17. 21:03

출처-[오마이뉴스 2006-06-17 14:21]

 

벽돌은 그저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 벽돌 위에 하나를 얹고 또 하나를 옆에 세워 다시 그 위로 하나를 얹으면 어느덧 벽돌은 부분을 떠나 전체를 지향한다. 음악당 전체를 거대한 악기로 만들어버리는 수십 명의 관현악도 실은 하나의 바이얼린과 하나의 첼로와 또 그렇게 수많은 부분들이 순간적으로 오선지의 음표 위를 스케이팅함으로써 압도적인 스케일의 전체성을 완성하는 것이다.

▲ 부분이 전체로 확산되어 가는 쾰른의 어느 현대건축 ⓒ2006 정윤수
ⓒ2006 정윤수
쾰른 대성당!

그 위치가 어디인지 묻지 않아도 된다. 당신은 그저 쾰른에 도착하기만 하면 그 대성당이 어디에 있는지를 단번에 알아볼 수 있다. '아, 저것이구나!' 하는 탄성과 함께 반듯한 길들 중에 아무 거나 잡아서 달리면 하늘 위에 닿아 있는 중세의 마천루를 만나게 된다.

나는 지난 14일 밤(독일 시각) 도르트문트에서 벌어진 독일과 폴란드 청년들의 흥미로운 액션 게임을 본 후 다음 날 대표팀 공개 훈련과 아드보카트 감독 공식 인터뷰를 취재하기 위해 쾰른으로 이동했는데 도저히 그 압도적인 질량과 높이의 대성당을 외면할 수가 없었다.

누구라도 쾰른을 방문한다면, 설령 그쪽에 가서 미사 드릴 일도 없고 달리 일감이 바빠서 시간을 쪼개기가 어렵다 해도, 어김없이 차륜이 그쪽을 지향하여 달려가는 것을 가로막을 방법을 찾지 못할 것이다.

마침 서 너 시간의 빈 틈이 있어 나는 쾰른 대성당으로 갔다. 21세기의 메트로폴리스를 형성하고 있는 주위의 현대건축물이 고개를 들지 못할 정도로 압도적인 위용을 드러낸 대성당.

▲ 쾰른 대성당의 웅장한 위용 ⓒ2006 정윤수
ⓒ2006 정윤수
나는 잠시 상상을 해보았다. 지금은 쾰른 중앙역과 온갖 번다한 쇼핑몰 그리고 상당한 부피를 지닌 건물들이 있지만 한두 세기 전만 해도 이 대평원에 오로지 저 대성당만이 거대한 웅자로 위풍이 당당하였을 터이니 하늘의 권세가 수렴되고 땅 끝까지 그 영광이 확산되는 깊은 신앙과 절대 권력의 발화점에 다름없을 터.

 
▲ 쾰른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2006 정윤수
ⓒ2006 정윤수
지난 수 세기 전의 경우에 있어 누구라도 저 대성당을 보게 된다면 짓지 않은 죄마저 서둘러 속죄하러 바쁜 걸음으로 달려가 무릎을 꿇었을 것이다.

아, 저 대성당 역시 처음은 벽돌 하나였을 것이다. 아니 대리석이던가. 아무튼 모든 차량이 아우토반의 소실점을 향하여 질주하듯이 작은 부분은 낱낱의 미세한 세계에서 출발하여 장차 거대한 전체성으로 총합되어 나간 바가 되었으니 나처럼 '믿지 않는 자'의 심연에 침전된 약간의 강박증과 우울증을 더욱 옥죄어 눌러버리는 쾰른 대성당은 실로 엄청난 스케일의 전체성으로 인하여 지난 수세기 동안 북독일 검은 숲을 장악하고 있었을 터였다.

그런데 관광지였다. 우리로 치면 불국사의 유서와 웅자를 시끌벅적하게 둘러보는 광경이랄까. 아무튼 인솔자의 깃발을 따라다니는 단체여행객에서 배낭을 둘러맨 젊은이들, 근처의 쇼핑몰을 둘러본 끝에 잠시 산책삼아 나온 사람들에 나처럼 실없는 치들까지 더하여 쾰른 대성당은 아주 웅장한 관광 코스의 리얼리티로 꽤나 소란스러웠다.

그래서 나는 빨리 나왔다. 유럽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랜드마크가 도처의 성당이니 쾰른에도 모든 신앙심과 권력이 응집된 대성당이라는 전체성 근처에 '소성당'들이 적절한 부분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나는 쾰른 대성당과 맞물려 있는 번잡한 쇼핑몰 거리를 빠져나와 대로변에서 잠시 둘러보았다.

▲ 성 마리엔 성당을 산책하는 주민 ⓒ2006 정윤수
ⓒ2006 정윤수
전찻길 건너편에 회색의 성당이 눈에 띄었다. 나는 무작정 그리로 걸어갔다. 성 마리엔 성당.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출입문은 찾기가 어려웠고 간신히 찾고 나니 문이 잠겨 있었다. 성 마리엔 성당은 주변의 주택가와 마당을 함께 쓰고 거리를 함께 쓰고 심지어 담장을 나눠썼다.

나는 성당 앞마당에서 한참 동안 앉아 있었다. 과연 부분은 아주 정갈한 리듬을 타고 전체를 지향하고 있었다. 최초의 돌(점)이 풍만한 기둥(선)을 지향하고 그것이 다양한 갈래의 벽(면)을 형성하여 마침내 소박하면서도 리드미컬한 성 마리엔 성당이라는 전체를 형성했다.

▲ 성 마리엔 성당 계단에서 '디테일'을 찾고 있는 다니엘 ⓒ2006 정윤수
ⓒ2006 정윤수
나는 그 점과 선과 면들을 보고 있었는데 앞마당의 계단에서 어떤 젊은이가 뭔가에 몰두하고 있었다. 내가 망원의 시선에서 부분이 전체를 지향하는 것을 완상하는 사이 그 청년은 그 부분조차 과연 무엇에서 기인하였는지를 탐색하듯이 계단 앞에 엎드린 채 뷰파인더를 응시하고 있었다.

다니엘. 26세. 그래픽 디자이너라고 했다. 나는 짐짓 농담부터 건넸다.

"그 사이로 동전이라도 떨어졌는가?"
"….어, 나는 지금 뭔가를 찾고 있다."
"당신이 찾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지금 디테일을 찾고 있다."
"그 계단 아래에 어떤 디테일이 있는가?"
"약간의 리듬이 있고…또, 하여간 찾고 있다."
"작은 패턴들이 당신이 찾는 디테일인가?"
"…그런 셈이다."
"그러한 디테일을 오랫동안 찾아 다녔는가?"
"몇 개월 쯤 되었다."
"디자이너?"
"그래픽 전공이다."


그가 좀더 자신의 작업에 몰두하기를 원하는 듯하여 나는 뒤로 물러섰고 그가 반대편 계단으로 넘어가서 새로운 디테일을 찾는 동안 나는 성 마리엔 성당의 선들이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한 채, 다만 맞대어 있다는 이유로 자연스럽게 만들어내고 있는 리듬을 바라보다가 일어섰다.

▲ 성 마리엔 성당의 소박하면서도 리드미컬한 선들 ⓒ2006 정윤수
ⓒ2006 정윤수
시계는 내가 빨리 레버쿠젠 바이아레나 구장으로 이동하라고 촉구하고 있었고 나는 중앙역 주차장에 세워둔 차를 향해 걸어갔다.

주차장으로 가기 위하여 중앙역의 플랫폼을 관통해야 했는데, 나는 또다시 지체할 수밖에 없었다. 쾰른 중앙역으로 들어서자 적지 않은 사람들이 고개를 치켜들고 있었다. 그들의 시선을 따라 천정을 바라보았는데 그곳에 거대한 천정화가 그려져 있었다.

저 고딕 시대의 궁륭과 벽들 그리고 신실한 기도의 합창이 하늘에 닿을 수 있도록 높이 쌓은 성당의 천정 위에는 언제나 거대한 규모의 천정화가 그려져 있었으니 지금 이 순간 쾰른 중앙역의 천정에도, 롤랑 바르트의 제목 그대로 '현대의 신화'가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 축구 스타를 소재로 한 쾰른 중앙역의 천정화 ⓒ2006 정윤수
ⓒ2006 정윤수
중앙역의 천정화. 그 소재는 이 작은 행성의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는 인류의 어떤 행위였으며 그 행위의 전령사들이 푸른 초장에서 거둔 성취에 대한 찬미로 가득 차 있었다. 저 희랍의 신화들, 그 신화에 의한 변주들로 채워진 유럽 미술의 패턴들, 그 패턴들의 디테일한 기호들이 중앙역 천정화에서 새로운 전체를 향하여 드라마틱한 변주를 풀어내고 있었다.

중세의 패트롱이 자신의 악사와 기사와 시인들을 앞세워 그 자신의 광휘를 드높였듯이 이 천정화는 '아디다스'라는 패트롱이 기획한 것으로 그들의 기획에 의해 끝없이 욕망의 신화를 재생산하는 전설들이 천정화의 주인공이 되어 중앙역 천정을 진공 상태의 그라운드로 만들어놓고 있었다.

▲ 중앙역 천정화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 ⓒ2006 정윤수
ⓒ2006 정윤수
수많은 사람들이 그 천정화를 올려다보았다. 어쩌면 저 사람들은 방금 전만 해도 쾰른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를 향하여 셔터를 눌렀을지도 모른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들 역시 쾰른 대성당은 오랜 관습의 순례지로서 화집이나 관광엽서에서 보았던 것을 자신의 카메라로 재확인하는데 만족했을 뿐이라면 지금 이 순간 중앙역 천정화 속에서 어쩌면 현대의 신화, 현대의 종교, 현대의 아이콘을 발견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 레버쿠젠 바이아레나 구장 내 패스트푸트점에서 축구 중계를 보고 있는 독일인 부자 ⓒ2006 정윤수
ⓒ2006 정윤수
700년 전의 어느 고결한 성직자가 남긴 유품에 대하여 박물학적인 흥미 정도로 잠시 스쳐 지나쳤던 사람들은 어쩌면 중앙역 천정화를 올려다보면서 저 대성당의 역사적 무게가 제공하지 못하는 격렬한 믿음과 감각의 쾌락을 확인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레버쿠젠 바이아레나 구장으로 갔다. 선수들은 가볍게 몸을 풀고 족구를 하러 떠났고 아드보카트 감독은 다소 신경질적인 인터뷰를 끝냈으며, 이영무 기술위원장은 대단히 의전적인 말로 기자회견을 마쳤다.

나는 바이아레나 구장의 패스트푸드점에 앉아 잉글랜드가 후반전 끝 무렵에 두 골을 넣는 것을 지켜보았다. 꼬마 아이를 데리고 나온 중년 남자도 텔레비전의 바로 밑에 앉아서 골이 들어갈 때마다 실망하는 소리를 냈다. 독일인임이 틀림없었다. 꼬마는 '어린이 세트'에 딸려 나온 플라스틱 장난감에 더 정신이 팔려 있었다. 아직 현대의 전설을 만끽할 나이는 아니었다.

심판의 휘슬로 경기가 종료되었다. 이변이 없는 첫 월드컵이라고 할 만큼 독일, 스웨덴, 잉글랜드 등 유럽의 강호들이 막판의 집중력으로 16강을 선점하게 되었다. 그 바람에 과거의 나이지리아, 카메룬, 세네갈처럼 세상 사람들의 모든 편견과 상식을 뒤집어 버리는 파격의 전설을 찾아보기 어려운 '밋밋한' 조별 리그가 어느덧 중반을 넘어섰다.

▲ 차범근 수원삼성 감독의 현역 시절 얼굴이 그려진 레버쿠젠 바이아레나 구장의 벽화 ⓒ2006 정윤수
ⓒ2006 정윤수
나는 주차장으로 걸어갔다. 바이아레나 구장 건너편에는 레버쿠젠 팀을 거쳐 간 뛰어난 스타들이 벽화로 그려져 있었다. '차 붐!'. 그는 프랑크푸르트는 물론이고 이곳 레버쿠젠에서도 찬란한 전설로 통한다. 나는 그 전설들의 벽화를 따라 주차장으로 걸어갔다. 곧 베를린으로 떠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