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연합르페르 2006-06-22 11:32]
국경만 선명히 드러난 우리 지도에 동해안의 허리 부근인 원산에서 말미의 부산 다대포까지 일필휘지로 굵고 진한 선을 그었다. 태백산맥이다. 허전해 보이기에 호처럼 멋스럽게 휘어진 곡선을 중간쯤에 그려 넣으니 소백산맥이 완성됐다. 이 산맥의 주인공인 소백산은 명칭과는 달리 우람하고 화려하다.
단양군과 영주시의 경계를 따라 오롯이 솟아있는 소백산은 결코 작은 산이 아니다. 멀리 보이는 부드럽고 고고한 산세가 마음 한 구석을 가라앉힌다. 낮은 구름이 내려앉은 흐린 하늘 탓에 정상인 비로봉은 보이지 않았다.
천상에서 제공한 순도 높은 물로 수량이 충만해진 계곡은 굉음을 쏟아내며 아래로 청정수를 흘려보냈고 대자연의 녹색빛은 절정을 이뤘다. 길섶에 고개를 내민 색색의 야생화 무리들도 즐거움을 더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산에게 시비를 걸며 훼방하는 등산객이 전무한 것이 마음에 들었다. 한나절 동안 세상과 떨어져 있으려면, 다양한 생물과 대화를 나누려면 근심을 조장하는 연(緣)을 끊어둬야 하는 법이다. 고독은 모든 감각기관이 산에만 집중하도록 도와주었다.
공원 사무소를 지나쳐 오르는 산길은 호젓하고 단아했다. 계곡과 나란히 나 있는 돌길을 천천히 밟아나갔다. 모난 돌 틈을 비집고 나와 거침없이 하강하는 계곡물의 냉기가 몸에서 배어나는 온기를 식힌다. 오랫동안 개점휴업 상태였는지 햇빛을 보지 못해서인지, 골짜기의 돌들은 이끼로 곱게 화장을 했다.
초반 산행은 그다지 험하지 않아서 뒷짐을 지고 터벅터벅 산책하는 여유가 있었다. 발 아래로는 좁은 공간에서 성장한 이름 모를 작은 식물들이 태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견딜 수 있을 만큼의 맥박과 적당히 흐르는 땀이 신체를 정화했고 무념무상의 상태가 정신을 순화했다. 팔을 휘저어 얼굴 앞에 아른거리는 날벌레들만 내쫓을 뿐이었다.
어느 순간 계곡의 물소리가 아득하게 멀어지더니 가파른 계단이 눈앞에 나타났다. 진짜 산행의 시작이었다.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나무 계단은 한낮의 한가로움을 앗아갔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지만 어디쯤 왔는지, 얼마를 더 가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반가운 이정표마저 없었다면 정상에 도달하기 위한 노력을 포기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루터기를 넘고 흐늘거리는 가지를 통과하는 여정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유일한 낙은 고산지대에서만 핀다는 하얀 에델바이스였다.
여러 차례 숨을 고르며 비로봉을 향해 힘겹게 걸음을 옮겼다. 해발고도가 적힌 하얀 막대가 모퉁이마다 세워져 있다. 숫자가 조금씩 올라가는 것으로 미루어 순행하고 있음을 확신했다.
나무들의 키가 작아지고 잠자리가 눈에 띌 즈음 환경이 일순간에 변화했다. 잿빛 하늘은
푸른 빛깔로 탈바꿈했고, 수림은 싱싱한 풀과 관목으로 대체됐다. 능선을 따라 초원으로 뻗은 '천국의 계단'은 낭만적이고 이국적인 풍광을
선사했다.
정상을 바라보며 나아가는 산행은 어렵지 않았다. 중첩된 봉우리들이 연출하는 장관과 야생화, 나비가 그려내는 미관이 행복을 보장했기 때문이다. 돌무더기가 쌓인 비로봉(毘盧峯)은 산꼭대기치곤 초라해 보였다. 그늘도 없고 너른 휴식처도 없어서 녹초가 된 육체를 충분히 안위하지 못했다.
그러나 자연의 수작(秀作)을 인간의 거친 손으로 굳이 덧칠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하산하기 전, 무릉도원을 밟은 것만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편안함을 갈구했던 그릇된 욕심을 버렸다.
▲ 여행정보 = 단양에서 소백산 정상인 비로봉에 오르는 길은 세 가지다. 새밭계곡에서 출발해 어의곡 삼거리를 지나는 코스(5.1㎞, 2시간 30분)와 다리안관광지를 기점으로 하는 코스(7㎞, 3시간 20분), 죽령 휴게소를 떠나 연화봉을 거치는 코스(11.5㎞, 5시간 30분)가 있다. 요금은 어른 1천600원, 청소년 600원, 어린이 300원이며 별도의 주차비를 내야 하는 곳도 있다. www.npa.or.kr/soba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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