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NAYARN™♡ 【TODAY 스크랩】

【TODAY 스크랩】인요한·이다도시씨가 느낀 한국·거리응원·붉은 문화

피나얀 2006. 6. 26. 19:08

출처-[경향신문 2006-06-26 15:27]

 


미쳤다. 아니, 멋있다. 저녁부터 새벽까지 광장이란 광장을 빨갛게 채운 붉은 악마들의 응원은 사람들을 또한번 놀라게 했다. 이번 월드컵 예선전은 너무 늦거나 일러 2002년처럼 사람이 많이 모이기 힘들 것이란 예상은 빗나갔다. 악마들은 다시 광장으로 모여들었다.

 

밤새 축구를 본 뒤 교복을 갈아입고 등교하는 학생들, 축구 대신 잠을 포기하고 잠쫓는 법을 검색하는 직장인들, 심지어는 버스에 올라가 단체로 뛰는 ‘오버액션’까지 있었다. 이 폭발적인 에너지. 누군가는 “미쳤다”고 하고 누군가는 “멋있다”고 했다.

 

지난 24일 새벽 한국이 스위스에 패하면서 그 뜨거운 바람은 급속히 잦아들었지만, ‘대국민 엔터테인먼트’로 자리잡은 군중 응원의 흥분은 아직도 우리 주변을 맴돌고 있다. 4대째 한국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파란 눈의 한국인’ 인요한 박사와 14년의 한국생활로 ‘한국아줌마’ 다됐다고 말하는 방송인 이다도시. 그들은 월드컵에 살고 월드컵에 죽는 우리의 붉은 문화를 어떻게 봤을까.

 

▶인요한…열정의 발산, 징해요

 

한국말을 ‘징하게’ 잘하는 ‘전라도 순천표’ 한국인이다. 가슴 졸이며 축구경기를 보고, 진료 때문에 토고전 역전의 순간을 놓치고는 “아이고~그걸 봤어야 하는데” 하며 아쉬워 하는 모습이 딱 ‘한국아저씨’. 4대째 한국땅을 지켜온 선교사 집안의 아들로서 그의 한국사랑은 남다르다.

 

최근 펴낸 책 ‘내 고향은 전라도 내 영혼은 한국인’에 순천에서 보낸 어린 시절과 80년 5월의 광주, 북한 등 그가 살냄새 풍기며 살아온 한국이야기를 담았다. 현재 세브란스 국제진료센터 소장.

 

-거리응원, 어땠나요?

 

“토고전 때 프라자호텔 2층에서 지켜봤어요. 함께 보던 노르웨이 친구가 그러더군요. ‘이건 집단적 정신병이야!’ 그러던 그 친구, 사실은 자기도 얼마나 즐거워했는지 몰라요. 2002년 때도 봤지만 정말 놀랍고 굉장하죠. 다같이 한마음이 되어서 열광적인 응원을 펼칠 수 있다니. 전 이미 연고전때 한국의 응원문화를 경험했어요.

 

(인요한 박사는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했다.) 정말 신나고 재밌고 건전한 문화예요. 상대를 감정적으로 미워하거나 싫어하는 게 아니라 서로 명예를 걸고 신나게 한판 승부를 벌이는 거예요. 한국의 응원문화는 그런 점에서 아주 멋있어요.”

 

-거리응원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도 있는데

 

“난 긍정적으로 봐요. 축제는 누가 시켜서 되는 게 아니잖아요. 자발적으로 즐기는 것이니까. 다소 불법적이거나 평소 같았으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도 눈감아줘요. 서양사람들은 늘 ‘내가 너무 오버하지 않나’ 하고 신경을 쓰죠. 그럼 제대로 즐기기 힘들어요.

 

한국 사람들은 순간적으로 타오르는 흥이나 이벤트를 잘 즐깁니다. 물론 양면성은 있어요. 남에게 피해를 주면 안되니까요. 경기에서 이겼다고 남의 차를 부수거나 하는 건 분명 잘못이죠.”

 

-국민의 관심이 지나치게 월드컵에 쏠렸다고 보나요?

 

“토고전 전반이 끝나고 갑자기 일본에서 전세기로 환자가 와서 후반전을 못봤어요. 막 도착한 환자에게 제가 웃으면서 그랬죠. ‘여기 축구 때문에 정신없다. 당신에게 아무도 신경 안쓴다. 나니까 치료하러 와준 거다.’ 제 농담에 환자가 답했어요. ‘내가 왔으니 한국이 이길 거다.’

 

진료가 끝나고 장파열로 죽을 것 같던 환자는 걸어서 나갔고, 한국은 역전승을 거뒀죠. 그 짜릿함 누가 알겠어요? 열심히 응원하는 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다만, 선수들이 불쌍해요. 얼마나 부담이 되겠어요. 월드컵은 그냥 게임이지 전쟁이 아니잖아요.”

 

-4대째 한국에서 살아왔죠?

 

“한국은 ‘정’의 민족입니다. 제 고향 전라도 순천에서 배운 것도 바로 정이었어요. 외국 사람들은 그 정서를 잘 이해하지 못해요. 제일 질기고 무서운 게 미운정이잖아요? 미운 사람도 보고 또 보면 정이 들어서 안보면 더 허전해요. 참 ‘징하죠’. 그걸 어떻게 이해하겠어요. 요즘은 정을 잃어가는 것 같아서 아쉬워요.

 

전 못쓰게 된 것을 고쳐쓰는 재생의 힘이 한국을 살렸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것도 없어지고 있죠. 택시를 타면 기사분들도 저에게 항상 그래요. ‘우리나라 민주주의는 아직 멀었어.’ 제가 볼 땐 미국보다도 더 민주적인 나라가 한국인데…. 그렇게 계속 자신을 점검하고 노력하는 점 덕분에 한국이 이렇게 발전한 거라고 생각해요.”

 

▶이다도시…뭉친다는 것, 놀랍죠

 

‘유쾌한 수다’로 유명한 프랑스 출신의 한국인. 10살된 태진이와 월드컵 베이비로 4살된 유진이의 엄마다. 올해로 한국생활 15년째에 접어 든 그녀는 온천과 얼큰한 국물맛이 그리울 때, 식당에서 “아줌마 빨리빨리!”를 외칠 때 한국사람이 됐다는 것을 느낀다.

 

프랑스 보르도에서 와인 공부를 하고 돌아와 최근 와인과 파티, 육아에 대한 경험과 지식을 담은 책 ‘이다도시의 행복공감’을 펴냈다. ‘한국의 마샤 스튜어트’를 꿈꾸고 있다.


-거리응원에 참여했나요?

 

“2002년엔 6살이던 아들 태진이 손을 잡고 시청 앞에서 응원했고 이번엔 가족, 친구들과 집에서 파티를 열었어요. 프랑스전 때 남편에겐 파란색 셔츠를 입히고 전 빨간 옷을 입었죠. 남편이 처음엔 ‘내가 왜?’라며 싫어했지만 전 꼭 그렇게 하고 싶었어요.

 

외국인들 눈에는 위험하고 이상해 보일 수 있지만 거리에 나와서 이렇게 안전하게 즐길 수 있는 민족이 또 있을까요? 거리 응원을 함께 했던 제 프랑스 친구들은 자기 인생에서 가장 열정적이고 멋있는 경험이라고 했어요.”

 

-프랑스와 한국의 응원을 비교한다면?

 

“한국은 훨씬 더 격렬하고 하나로 뭉치는 분위기죠. 프랑스는 어떤 색깔의 옷을 입든 크게 신경쓰지 않아요. 이기길 바라지만 한국만큼 꼭 이기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분위기는 아니죠. 이번에 유행한 꼭짓점 댄스 열풍도 정말 신기해요.

 

어떻게 온국민이 한가지 춤을 배울 수 있죠? 프랑스에선 사람들을 한마음으로 모으는 게 굉장히 어려운 일이에요. 그런 점에서 한국은 참 대단하죠. 이렇게 금세 하나가 되니까요.”

 

-월드컵에 너무 집착한다는 의견도 있는데

 

“2001년 한국이 프랑스에 5대 0으로 졌을 때 어떤 방송국 감독님이 저에게 욕설에 가까운 화를 냈어요. 3대 0이면 됐지 꼭 그렇게 잘난 척을 해야 했냐면서요. 다른 많은 한국인들이 비슷한 반응을 보였어요. 축구에 아무 관심도 없던 전 정말 당황했죠.

 

그런데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프랑스가 일차전에서 세네갈에 지자, 다들 또 얼마나 마음을 써주던지. 절대 악의가 있어서 저에게 화를 냈던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한국 사람들은 화도 잘내고 기뻐하고 즐기는 것도 잘하죠. 자신의 열정을 순수하게 분출할 수 있다는 건 멋있는 일 아닌가요. 월드컵도 최선을 다해 즐기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한국인들의 힘은?

 

“한국인들은 참 밝고 긍정적이에요. 프랑스인들은 더 좋은 환경에서도 늘 불평을 하는데. 한국인들은 늘 부족하다고 느끼고 조금 더 노력하자고 하죠. 뭐든지 하면 된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진취력이랄까 추진력, 다같이 한마음으로 뭉쳐서 노력하는 모습들이 정말 대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