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연합르페르 2006-07-05 11:30]
언젠가 꼭 한 번은 가보고 싶었다. 외도해상농원의 유명세에 많은 사람들이 들락거렸을 테지만 지독히도 그 곳과는 인연이 닿지 않았다. 거제는 마음 한 편에 항상 자리 잡고 있다가 불쑥불쑥 고개를 내밀곤 하는 마음속의 노스탤지어 같은 곳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 곳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거제를 빙 둘러 난 굽이진 해안도로를 달리고 또 달리면서 노스탤지어는 추억으로 변모되어 책갈피 하나를 장식했다.
거제를 향해 가던 날, 장마로 인해 연일 흐릿하던 날씨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비를 뿌리더니 3일 내내 우중충한 풍경을 만들어냈다. 일말의 마음속 기대는 빗방울에 튕겨 산산이 부서지고, 비와 구름이 만들어낸 뿌연 장막 속 풍경에서 손바닥 만한 빛이라도 찾아 다녀야 했다.
통영을 지나 거제대교와 나란히 바다 위에 가로놓인 신거제대교를 건넜다.
주변 풍경이 그렇게 산뜻해 보이지는 않는다. 도로와 물을 대 놓은 논다랑이가 해안가를 지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을 뿐이었다. 거제시 요트장의 푯말을 따라 눈길을 해안 쪽으로 돌리자 세찬 바람이 부는 을씨년스런 날씨 속에서 오직 한 사람만이 윈드서핑을 즐기고 있었다. 오색빛깔 요트가 바다에 떠서 만들어주어야 할 평화롭고 여유있는 풍경은 볼 수 없고 외롭다는 느낌마저 든다.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의 거대한 풍경이 가로막는가 싶더니 자동차로 가득한 시내 도로로 접어들었다. 어디에서 이렇게 많은 차들이 나온 것일까? 거제에서 가장 번화하다는 고현리의 퇴근 시간 무렵은 서울의 출퇴근 정체를 떠올리게 할 정도였다.
흐리거나 비가 내리는 날에는 역시 박물관이나 시내관광이 제격이다.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을 흥미롭게 관찰하고, 고현중앙시장으로 향했다. 진한 빨간 색의 고무 대야가 진입로 양옆으로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대야 안에서는 갓 잡아온 듯한 바닷고기들이 힘차게 꿈틀거린다. 어떤 녀석은 대야가 좁은 듯 뛰쳐나와 시멘트 바닥을 나뒹굴기도 한다.
손님이 고른 광어 한 마리가 도마 위에 오르고 어물전 상인의 날렵한 칼질이 가해지자 이내 광어는 한 접시의 맛깔스런 회가 되었다.
거제의 주도로인 14번 국도를 따라 동쪽으로 달린다. 시내를 벗어나자 풍경은 낮은 산을 논과 밭이 휘두른 시골 풍경으로 변하는가 싶더니 다시 옥포에 이르러 도시의 풍경으로 뒤바뀐다. 왼쪽으로는 100m 높이의 거대한 골리앗(Goliath) 크레인이 풍채도 당당하게 위세를 뽐내고 있다.
다시 장승포와 지세포를 지나 구조라 해수욕장에 도착했다. 날씨 때문인지 여름을 향해가는 계절임에도 사람의 흔적은 찾을 수가 없다. 손가락만하고, 주먹만한 자갈들이 해변을 장식하고 있는 학동몽돌해수욕장도 마찬가지다. 머리카락 희끗희끗한 낚시꾼 한 명만이 한가롭게 바다에 미끼를 던졌다가 건져 올렸다 할 뿐이다. 겨울 바다를 찾은 느낌이다.
마침내 해금강 마을에 도착했다. 바다에 점점이 흩어져 비경을 뽐낸다는 거제 해금강은 바다를 가로막은 뿌연 구름 사이로 고개를 내밀었다 감추었다 하며 제대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비와 인연이 많은 스스로를 탓할 뿐이다.
이틀 뒤 14번 국도를 따라 다시 한 번 거제도를 돌아보기로 했다. 오랜만의 밝은 아침 햇살이 자꾸만 등을 떼밀었기 때문이다. 구조라 해수욕장에서는 일군의 외국인들이 따가운 햇살 아래서 일광욕을 즐기고 있고, 모래사장에서는 젊은 청춘 남녀들이 모래사장과 바닷물 속을 넘나들며 공놀이를 하고 있다. 아이와 함께 모래성을 쌓는 일가족, 다정히 손을 잡고 해변을 거니는 연인 등 해변은 한여름의 풍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다시 남쪽으로 차를 몰아 해금강 마을로 향했다. 도로변 전망대에 차를 멈추고 바다 쪽을 내려다보자 파란 파도가 붉은색과 노란색, 흰색 등 빛깔 화려한 바위에 부딪쳐 하얗게 부서지고 있다. 멀리 뒤로는 해금강의 작은 섬들이 점점이 떠다닌다. 인근 도장포 마을의 ‘바람의 언덕’에 도착했다. 바다를 배경으로 온통 연두색 풀로 치장된 낭만적인 공간이다.
털이 까만 염소 가족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연인들은 드라마 속의 주인공이라도 된 듯 멋진 포즈로 사진을 찍거나 여기저기 놓인 벤치에 앉아 밀어를 속삭인다. 텔레비전 드라마 '이브의 화원'(2003년 SBS 아침드라마)과 '회전목마'(2004년 MBC 수목드라마)가 이곳에서 촬영된 후 거제를 대표하는 유명 관광지가 됐다고 한다. 이름만큼이나 거센 바람이 쉴 새 없이 불어온다.
거제의 남쪽 끝인 홍포로 가기 위해 홍포-여차전망도로를 따라 내리달았다. 비포장길을 달려
홍포 전망대에 도착하자 푸른 바다 위로는 대ㆍ소병대도 등 섬들이 점점이 떠서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섬들 사이로 하얀색 유람선들이 하얀
물결을 일으키며 지나자 호주나 지중해의 해변을 찾은 듯한 느낌마저 든다.
커다란 먹장구름들이 여기저기 하늘을 가렸지만 비는 더 이상 내리지 않았다. 구름 사이로 고개를 내민 햇살이 바다 풍경을 내리비칠 때면 언뜻언뜻 거제의 진면목이 시야에 들어오곤 했다. 이런 아름다움에 대한 감동을 극대화하기 위해 그렇게도 비가 내렸는지도 모르겠다. 악연인지 인연인지 모를 비와의 만남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겠지만 비는 여행을 낭만적으로 만들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더욱 깊이 느끼게 해주는 고마운 존재인 것 같다.
해질 무렵 장승포에 도착했다. 약간의 빗방울이 차창을 때려왔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먹구름 하나가 빠른 속도로 지나고 있다. 화사한 유람선 모양의 은빛 거제문화예술회관에 불이 하나씩 밝혀진다.
계단을 따라 위로 오르자 바다 전망을 배경으로 가로등 수십 개가 곡선을 그리며 늘어서 있다. 뒤쪽으로는 육지에서 길게 뻗어 나온 방파제들이 바다를 껴안고 있다. 모텔과 식당들의 울긋불긋한 네온사인이 호수 같은 바다 수면에 반사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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