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연합르페르 2006-07-13 10:43]
보라빛 라벤더의 향이 코를 즐겁게 하는 후라노의 팜 도미타. |
가랑비는 뿌리지 않았으나 구름이 주위의 영봉을 집어삼킬 듯 낮게 포복하고 있었다. 나쁘다고 할 순 없었지만 그다지 좋은 날씨도 아니었다. .
융단처럼 깔린 보랏빛 라벤더는 '후라노'라는 지명을 떠올리면 자동적으로 연상되는 그림이다. 7월 하순 정점에 올라 시내 곳곳을 허브 향기로 채운다는 라벤더 꽃은 홋카이도로 놀라오라며 유혹하는 포스터의 일순위 모델이기도 하다.
후라노에는 라벤더가 피는 곳이 많지만 유독 '팜 도미타(ファ―ム富田)'로만 방문객이 몰린다. 라벤더를 지켜낸 '원조'이기 때문이다. 1955년경 프랑스 남부 지방과 비슷한 기후를 가진 이곳에서 향료를 채취하기 위해 라벤더를 재배하는 농가가 생겨났지만 별다른 수익이 나지 않아 철수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최후의 도전자였던 팜 도미타가 엉뚱한 곳에서 뜻밖의 열매를 얻게 됐다. 한 사진작가가 농장의 라벤더 사진을 잡지에 게재한 뒤 찾아오는 사람의 숫자가 급증한 것. 간발의 차이가 벽촌 후라노의 관광자원을 살려냈다.
바람에 하늘하늘 흔들리는 라벤더의 물결은 마음을 현혹시키기에 충분했다. 검푸른 보라색이 완숙하고 고요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라벤더 옆으로는 빨강, 주황, 노랑의 원색 백합과 이름을 하나하나 챙기지도 못할 만큼 다양한 종류의 꽃들이 행진하듯 긴 띠를 이뤘다. 눈이 시리고 어지러웠다.
'예쁘고 환상적이다'는 가치판단만이 어슴푸레 남을 때쯤 동화 속 나라처럼 꾸며진 상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팜 도미타의 입장료가 없는 것은 라벤더로 제작된 각종 상품을 많이들 구입하라고 유도하기 위한 묘수였던 모양이다.
아이스크림부터 비누, 방향제, 샴푸까지 진열대에 나열된 것은 모두 보라색으로 치장했다. 은은한 라벤더 향이 풍기는 향기카드를 손에 든 손님들은 꿈같은 화원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예술가의 혼을 앗아가는 곳
평평한 분지 지형은 후라노의 북쪽에 위치한 비에이까지 이어진다. 넉넉히 시간을 두고 자전거 하이킹을 즐기기 좋은 비에이는 인공적으로 조성된 아름다움보다는 자연스럽고 목가적인 풍경이 인상적이다.
늘씬하게 빠진 옥수수, 누렇게 익어가는 보리, 해를 쫓아 고개를 돌린 해바라기 등이 네모꼴로 구획된 땅에 순서를 바꿔가며 얼굴을 내밀었다. 하늘의 무지개를 직선으로 곧게 편 뒤 양옆으로 늘린 것처럼 다채로운 경관이 계속됐고, 드넓게 펼쳐진 초록빛 구릉지대가 흡사 유럽의 면모를 풍겼다.
비에이의 비바우시 초등학교. |
평야가 모자라기는 우리와 매한가지인 일본에서 쉽사리 볼 수 없는 풍광이기에, 몇몇
예술가들은 이곳을 제재로 삼아 창작열을 불태우기도 한다.
거대한 화폭에 일본 전통기법으로 그림을 그린다는 고토 스미오(後藤純男)의 미술관으로 진로를 틀었다. 그 역시 홋카이도의 자연에 반해 아틀리에를 설치하고, 후라노 동쪽의 산악지대인 도카치다케(十勝岳)와 소운쿄(層雲峽) 등을 작품으로 남겼다.
여백의 미를 살려 담박하고 산뜻한 한국화와는 다르게 일본화는 정교하고 세밀해서 서양화에 가깝다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일본화에서는 물감이나 캔버스를 사용하지 않고, 색색의 천연재료를 곱게 빻아 만든 가루와 아교로 쓰는 동물의 연골, 전통종이만을 이용한다.
산호나 크리스털, 호박 같은 보석이 분말의 원료가 되므로 작품의 가격은 천정부지로 뛰어오르기 마련이다. 심지어는 순금을 바르기도 하는데 호사스럽기는 하나 이쯤 되면 그림이 아니라 보물이라고 불러야 하겠다.
그는 주로 한 곳에 머물며 계절마다 변화하는 자연의 멋스러움을 관찰한 듯했다. 벚꽃, 녹음, 단풍, 설경으로 끊임없이 순환하는 일본의 사계가 대가의 영감을 자극한 것이리라.
멀찌감치 떨어져야 한눈에 들어오는 그림들은 웅장하고 영묘했다. 특히 작가가 봄날의 화무(花舞)에서 받은 감동을 표현하기 위해, 만개한 벚꽃과 벚나무를 제외한 모든 공간을 금니(金泥)로 덮은 '앵화정원쌍도'는 화려함의 극치였다.
조명을 받아 찬란하게 빛나는 양태가 충격 그 자체였다. 보물은 보물이되, 이심전심으로 가슴에 파동을 일으키는 명작임에 틀림없다. 그의 화풍은 광활한 홋카이도가 내려준 축복이자 은혜일 것이다.
후라노의 고토 스미오 미술관. |
▲ 여행정보 = 후라노와 비에이는 하루에 묶어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여름이면 삿포로에서 오전 9시 15분에 출발해 오전 11시에 후라노에 도착하는 관광열차가 운행된다. 후라노와 비에이에서는 볼거리들이 멀찍이 떨어져 있으므로 자전거나 자동차를 대여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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