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홋카이도① 여름에 뭘 보겠다고 갈까

피나얀 2006. 7. 14. 00:42

 

출처-[연합르페르 2006-07-13 10:42]

 

생명의 보고인 구시로 습원

일본 북단의 섬인 홋카이도에 간다고 했을 때 대부분은 '여름에도 눈이 내리느냐'는 반응을 보였고 조금 안다는 식자는 '도대체 여름에 뭘 보겠다고 가느냐'며 궁금해 했다. 그때마다 '겨울에 가봤으니까 여름에도'라는 궁색한 답변으로 적당히 넘길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우리에겐 '홋카이도'하면 대지를 새하얗게 뒤덮는 눈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듯하다. 그러나 가오리처럼 생긴 거대한 섬의 진가는 짧지만 화려한 여름날에 나타난다. 생물이 약동하고 번창하는 계절은 어느 곳에서나 소중하고 고혹적이다.

 

물론 고정관념으로 깊이 박혀있는, 눈발이 휘날리는 겨울의 홋카이도 역시 충분히 아름답다. 아오모리(靑森)에서 삿포로(札幌)로 향하던 밤기차에서 창밖으로 해가 뜨는 광경을 목격했을 때 숨이 멎는 줄 알았다. 흰색을 뒤집어 쓴 아득한 평지에 발갛고 동그란 불덩이가 서서히 치솟고 있었다.

 

그런데 오래지 않아 눈에 질리고 말았다. 다소의 차이는 있었지만 어딜 가도 눈이다 보니 식상해져 버린 것이다. 백의(白衣)를 벗은 맨살의 섬과 교감하고 싶었다.

 

태고적 자연을 간직한 순수의 땅, 구시로

 

구시로는 홋카이도 동부의 관문이자 주변의 습원과 호수, 온천 관람의 출발점이다. 보통은 구시로 역에 잠시 들렀다가 바로 람사조약에 가입한 구시로 습원을 보러 떠난다.

 

일본에서 가장 광대하다는 습원을 확인하기 위해 먼저 차로 국립공원 둘레를 돌았다. 좁은 시내를 빠져나오자 잿빛 건물은 완전히 사라졌다. 사위가 온통 초록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표면만 보고서는 넓은지 아닌지 알 수 없는 법이다. 도로 이곳저곳에 위치한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습원은 뿌옇게 내려앉은 안개 탓인지 불투명하고 희미했다. 연둣빛이 지평선까지 이어지는 광막한 습원은 답답함을 일거에 해소시켜줄 만큼 시원했다. 키가 낮은 풀 사이에 돋아난 관목은 군데군데 진한 녹색의 얼룩을 묻혀 놓았다.

 

대략 도쿄돔 야구장이 5천500개 정도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설명을 듣고 보니 굉장하다. 습원의 끝을 눈으로 추적하는 일은 불가능했다. 빌딩에 막히고 사람에 부딪혀 가까운 곳만 쳐다보던 도시인에겐 아스라이 멀게만 느껴졌다.

 

산정에 올라 장엄한 산세를 굽어보거나 모래사장에 앉아 대양을 접할 때만 경험할 수 있었던 일이다. 구시로 습원은 들판도 한없이 넓을 수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알려주었다.

 

반대편의 전망대까지는 30분 정도가 걸렸다. 호소오카(細岡) 전망대는 구시로에서 연인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장소로 습원을 물들이는 일몰이 매우 아름답다. 해가 아직 하늘에 걸쳐 있었지만 꽤 많은 사람들이 5분도 안 되는 자연의 선물을 받기 위해 군집했다.

구시로 습원을 여행하는 방법은 산책, 기차, 카누, 열기구 등 다양하다


꾸물거리는 뱀의 형상을 한 구시로가와(釧路川)가 습원을 관통하는 모습은 웅혼하고 역동적이었으나, 들려오는 소리가 없어 숙연하고 잠잠했다. 인간 무리도 습원과 동화돼 침묵 속에서 자리를 지킬 뿐이었다.

 

석양은 좁은 강에 자신의 그림자를 드리우더니 이내 구름 아래로 침잠했다. 잠깐 동안 붉은 빛을 미약하게 내뿜던 해는 암흑 속으로 들어가 내일을 준비했다. 태양과 습원의 짤막하고 뜨거운 데이트는 이렇게 끝을 고했다.

 

자연의 보고, 구시로 습원

 

다음날 숲만 보고 귀환할 수는 없기에, '나무'를 관찰하러 습원의 한가운데로 뛰어들었다. 수목이 빽빽한 평범한 산길을 지나쳐 온네나이(溫根內) 비지터 센터에 닿으면 목책로가 눈에 띄고 산책이 시작된다.

 

센터 내부의 지도에는 두루미나 다람쥐를 발견했다는 메시지가 빼곡이 기록돼 있다. 특히 두루미는 세인의 관심을 온몸에 받고 있는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절멸 위기에 놓였던 새가 마지막까지 생존한 곳이 바로 구시로 습원이다. 그래서인지 철새인 두루미가 홋카이도에서는 번식지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텃새라고 한다.

 

다양한 풀들이 밀림을 이룬 습원에서는 억새 같은 기다란 풀과 들꽃이 곧게 난 길을 호위했다. 같은 듯하지만 서로 다른 식물들이 연속해서 나타났다. 식물에 문외한인지라, 가치를 측정할 순 없었지만 고귀함만은 느껴졌다. 개발의 광풍에 시달리지 않고 본디의 성질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는 땅이 얼마나 되겠는가.

 

산책로 아래에는 흙이나 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물이 출렁였다. 3m 길이의 막대를 넣어도 스펀지처럼 쑥 들어가는 습지는 3천 년 전까지 구시로와 접한 바다였으나, 세월의 흔적이 쌓여 현재에 이르렀다. 마구잡이로 자라 정돈되지는 않았지만 '자연스러운' 습지에 작은 식물들이 어떻게 뿌리를 박고 살아가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어찌 보면 인간이 침입할 수 없었기에, 지금까지 수많은 생명들이 상처를 입지 않고 공생할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시야가 미치지 못하는 습원은 하늘과 접했다. 지금은 싱그러운 풀색이지만 가을엔 황색으로, 겨울엔 흰색으로 둔갑해 천공을 떠안는다.

다양한 풀과 수목이 빽빽한 산길

▲ 여행정보 = 현재 대한항공이 삿포로와 하코다테로, 아시아나항공이 아사히카와로 직항을 운행하고 있다. 항공료는 다른 일본 지역보다 비싸다. 7월의 평균기온이 21℃로 서울보다 3~4℃ 정도 낮다. 한여름에도 아침, 저녁에는 선선하므로 긴 소매 옷을 준비하는 것이 좋으며, 특히 구시로 습원에서는 긴 소매 상의와 긴 바지를 입어야 한다.

 

홋카이도에서 도시 간을 이동할 때는 기차가 가장 유용하다. 레일 패스를 구입하면 저렴한 가격으로 원하는 스케줄에 맞춰 여행을 즐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