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2006년 8월 7일(월) 8:19 [세계일보]
◇자전거 여행가 윤옥환씨가 6일 서울 한강시민공원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그는 세계를
누비는 광고판을 자처하며 옷에 한반도의 통일과 세계 평화, 2016년 하계올림픽의 남북한 공동개최 열망을 담은 표어를
새겨넣었다.
[이사람의 삶]자전거로 5년동안
117개국 20만㎞ 돌고 온 윤옥환씨
"길에서 얻은 희망과 사랑 세계인에
전할래요"
“인생은 짧지만, 도전은 끝이 없다. 항상 시작일 뿐이다." 삶의 무게가 버겁다고 느껴지던 시절 그는 홀연 자전거를 타고 떠났다. 딱히 거창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광활한 대륙을 내달리다 보면 세상살이의 각박함에서 벗어나 보다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란 기대뿐이었다.
# 자전거를 사랑한 ‘약골소년’
윤씨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자전거를 친구이자 애인, 자식이라고 소개한다. 벌써 다섯 대 째. 여러 번 ‘전문의’에게 ‘치료’를 받았지만 이번에는
중병이다. 귀국 후 그는 차츰 기력을 되찾고 있지만 자전거는 사망선고를 받았다. 매번 겪는 일이지만 가족을 떠나보내는 듯 가슴이
아리다.
어린 시절 윤씨는 천식과 위장병을 달고 산 ‘약골 소년’이었다. 특히 중학교 2학년 때 자전거를 타다가 코를 다친 뒤로는
아예 자전거를 타지 않기로 마음먹기도 했다.
그런 그가 다시 자전거를 타게 된 것은 운명적이다. 대학 졸업 후 건강 때문에
사법고시의 꿈을 접고 무역회사에 다니며 무기력한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윤씨는 바람을 쐬러 한강시민공원에 갔다. 벤치에 잠시 멍하니 앉아
있는데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예전 같으면 그냥 지나쳤을 장면인데 갑자기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원초적 희열’을 느꼈다.
그 길로 회사 생활을 접고 다시 자전거를 탔다. 워낙 약골이라 처음엔 1시간을 넘기기 어려웠다. 하지만
남들 보기에 ‘미친 사람’처럼 매일 연습했다. 차츰 병약했던 다리에 힘이 붙기 시작하자 국내 일주에 도전했고, 곧 이어 그간 모아둔 돈과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2001년 7월 해외 도전에 나섰다.
# 생사의 갈림길에 서다
낯선 나라를
여행하는 데는 항상 위험이 도사린다. 안전한 쪽보다는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길을 골라 다녔던 윤씨는 죽음에 가까운 순간을 여러 번 겪었다.
중국을 거쳐 러시아 하바롭스크로 가는 길에 뒤에서 차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한순간 몸이 붕 떠올랐다. 살에 돌이 박히고 뼈를 다시 맞춰야 했지만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한 달 넘게 침상에 누워 병원 천장만 바라봐야 했다. 결국 여행을 중단하고 2개월 만에 귀국했다.
하지만 그렇게 끝낼 수는 없었다. 이를 악물고 다시 몸을 만들었다. 그래서 2002년 9월 다시 2차 장정에 나서 매일
200여㎞씩 달렸다. 사이클 선수들조차 그의 초인적 행군에 혀를 내둘렀다.
숙소는 주로 유스호스텔이나 민박을 이용했지만 그것마저
없는 오지에서는 하늘을 벗 삼아 자야 했다. 식사는 주로 현지 음식을 사 먹었는데 워낙 운동량이 많다보니 하루 세 끼로는 부족할
정도였다.
내전 중인 수단에선 인적 없는 거리에서 무장강도를 만나 꼼짝없이 죽겠구나 싶던 순간 기적처럼 인권운동가가 탄 차량을 만나
위기에서 벗어났다. 이란에선 열병에 걸려 의식을 잃은 채 5일간 입원실에 누워 있었다. 교통사고만 5번 겪고 말라리아에 4번이나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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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에리트레아의 수도 아스마라,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 |
# 대륙을 건너며 만난 사람들
하지만 그는 길에서 많은 사람을 만났다. 유럽 동부 크로아티아에 있는 한 고등학교에서 졸지에 일일 강사가 된 적도 있다. 화장실을 찾다가 우연히 들어간 학교에서 한 교사가 말을 걸어와 “자전거로 여러 나라를 여행했다"고 얘기하니까 교장이 모든 수업을 중단하고 전교생을 강당에 모았던 것이다.
이런 식으로 강연한 국가만 5∼6곳이다. 쿠웨이트에서는 얼떨결에 ‘자전거 여행가’로 항공사 잡지모델도 되었고, 자사 로고가 찍힌 티셔츠를 입고 다니라며 경비를 제공한 기업도 있었다.
태국 국경에선 경찰관에게 길을 묻다가 사소한 오해를 사 공무집행 방해죄로 구치소에 갇혔다가 현지인들의 구명운동으로 가까스로 풀려났다.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는 우연히 그곳 왕족의 눈에 들어 “이곳에 정착만 하면 모든 경비를 지원하겠다"는 제안도 받았다.
그는 지금도 여행 때 만났던 사람들이 혹시 연락을 해올까봐 10여년 동안 사용한 휴대전화 번호를 바꾸지 않고 있다.
# 길 위에서 얻은 것
독특한 이력 때문에 가는 곳마다 현지인의 관심을 사고 현지 언론의 지면을 장식했지만, 사실 그는 타고난 모험가는 아니다. 새로운 국경이 가까워질 때마다 매번 미지의 세계에 불안을 느낀다.
특히 인적이 없는 길을 며칠간 끝도 없이 달리거나 현지인들이 가족과 식사하는 모습을 보며 남몰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하지만 긴 여행에서 체득이 된 것일까. 아프리카 동북단의 에리트레아를 100개국째로 돌파하는 순간 이런 감정들이 눈 녹듯 사라졌다. 나와 너, 우리와 그들을 구별하는 마음속 ‘울타리’가 무너지면서 온 세상이 안방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현재까지 117개국을 돈 그는 몸이 회복되는 대로 곧 남미로 가 그곳에서 통산 130개국 여행기록을 세울 작정이다. 자전거와 함께한 그의 세계일주는 단연 아시아 최고기록이다.
하지만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여행의 끝은 또 다른 출발점일 뿐이다. 결혼해 단란한 가정도 이루고, 그간 여행으로 얻은 5개국어 실력을 바탕으로 어린 학생들과 함께 자전거 세계일주를 하면서 어학 공부도 해주고 싶다.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영화를 찍을 꿈도 갖고 있다. 이를 통해 자신이 여행에서 얻은 ‘희망’과 ‘사랑’을 이웃에 나눠 주고 싶다.
“행복과 불행, 기쁨과 슬픔처럼 삶에는 양면이 있지만 사람들은 흔히 나쁜 일을 겪고선 포기하고 말죠. 하지만 저처럼 몸이 약해 황금 같은 젊은 시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사람도 결국 이렇게 해냈잖아요. 몸을 치유했으니 이제 세상을 치유하는 데 조금이라도 힘이 되기 위해 다시 달릴 겁니다."
활짝 웃는 그의 고운 이가 햇빛에 반짝이는 자전거 바퀴살처럼 하얗게 빛나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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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중국 리수이(麗水), 호주 와남불, 프랑스 코냐크(코냑) |
윤옥환씨가 권하는 '꼭 가 봐야 할 6곳'
1 에리트레아의 수도 아스마라
아프리카 동북부에 있는 에리트레아의 아스마라에 가기 위해 자전거로 2000m 정도 높이의 산에 올랐지만 유씨는 힘든 줄 몰랐다고 한다. 아름다운 자연 풍광은 물론이고 산봉우리에 나타난 아스마라는 새로운 세계였다. 게다가 선남선녀들만 모여 있어 꿈인지 생시인지 헷갈렸다. 이곳은 19세기 말 이탈리아 지배를 받아 아프리카 속의 작은 유럽 같은 느낌을 준다.
2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유명한 관광지에는 대부분 오래된 문화유적이 있다. ‘중동의 진주’ 두바이는 그런 문화유산 하나 없지만 나무 하나에서 건물까지 현대도시의 인공미의 최고봉에 올라 서 있다.
시 전체가 하나의 잘 그려진 그림 같은 꿈의 도시.
3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
윤씨는 기계적으로 페달을 밟다가 리가에 들어서는 순간 눈이 번쩍 뜨였다. ‘아름답다’는 감탄사밖에 나오지 않았다. 8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리가는 고풍스런 유럽 건축양식의 진수를 보여주는 웅장한 건물로 눈을 즐겁게 해줬다.
4 중국 리수이(麗水)
중국은 그야말로 ‘안방 드나들 듯이’ 여러 번 간 윤씨.
그 중 리수이는 아름답고 깨끗한 강이 절경으로, 동양미의 진수를 보여줬다. 지붕이나 회랑이 있는 다리인 ‘낭교(廊橋)’는 소설 ‘매디슨카운티의 다리’에 등장하는 다리와 같은 종류로, 다양한 사연과 세월을 간직하고 있다.
5 호주 와남불
와남불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안도로’라는 그레이트 오션 로드가 시작되는 도시. 그 이름에 손색이 없을 정도로 쾌적하고 편안한 이곳은 자전거 여행가에겐 최적의 조건이다. 게다가 의외로 인적이 드물어 오랜만에 번잡한 도시는 잊고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길을 사색하며 달릴 수 있었다고 한다.
6 프랑스 코냐크(코냑)
프랑스는 문화, 자연, 사람까지 모든 면에서 윤씨에게 호감을 주었다. 이 중 코냐크는 프랑스 포도 재배지와 ‘코냑’이라는 브랜디 산지로만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빼어난 자연풍경과 따뜻한 기후로 여행객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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