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비 갠 오후의 창덕궁을 가다

피나얀 2006. 8. 14. 21:04

 

출처-[오마이뉴스 2006-08-14 17:14]

 

일본인 친구들의 방문과 그 첫 번째 목적지 창덕궁

 

▲ 한껏 물을 머금은 창덕궁
ⓒ2006 이희동
오랜만에 원주에 사는 사촌동생에게서 연락이 왔다. 캐나다에서 만났던 일본인 친구가 그 친구와 함께 서울에 온다고 했는데 자신이 서울 지리에 익숙하지 못한 터라 내가 함께 동행 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사촌동생 말의 요지였고 나는 기꺼이 그 부탁을 받아들였다. 사촌동생과의 의리도 의리였지만 짧은 영어로나마 한국의 모습을 외국인에게 소개시켜주고 싶은 욕심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한정된 시간에 한국을 다른 나라 사람에게 설명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나의 짧은 지식이나 언어도 문제였지만, 대부분의 일본 관광객들이 그렇듯이 그들도 쇼핑이 한국 방문의 가장 큰 목적이었던 터라 한국에 대한 사전 지식이 매우 얕은 것이 사실이었다.

덕분에 토요일(7월 29일) 오후, 사촌동생과 함께 인천국제공항에서 일본친구들을 픽업한 나는 끝도 없이 막히는 강변북로 위에서 그들에게 서울 어느 곳을 보여 주어야 할지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오랜 장고 끝에 한 곳을 선택해서 차를 몰기 시작했다. 그곳은 바로 다름 아닌 창덕궁이었다.

한국을 보고 싶어 하는 외국인들에게 이미 화석이 되어버린 고궁을 보여주는 것은 매우 상투적이면서도 어려운 선택이다. 물론 고궁 관람은 정부뿐만 아니라 많은 여행사에서 지정하는 대표적인 관광코스로서 영어, 중국어, 일어 가이드의 설명도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이 결코 관람객의 만족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

비록 역사라고는 하지만 이미 우리의 현실과 유리되어 버린 고궁에서는 시장 등 삶의 현장에서 느낄 수 있는 그런 생생함을 찾아 볼 수 없으며, 또한 혹자는 우리의 고궁들을 보면서 중국과 혹은 일본의 아류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일본인들에게만은 꼭 우리네의 고궁을 보여주고 싶었다. 물론 과거의 역사를 가지고 일본인 개개인에게 그 책임을 추궁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개인이 역사와 사회에 대해 무관심할 때, 때로는 그 결과가 다른 사회 구성원에게 비극적으로 나타날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현재 점점 극우화되어 가는 일본의 모습은 결국 일반 민중들의 역사에 대한 무책임한 무관심이 그 전제로 깔려 있지 않은가.

창덕궁의 소리

 

▲ 가이드 주위로 모인 일본인들. 마치 외국에 온 것 같은 느낌입니다.
ⓒ2006 이희동
극심한 교통정체 뒤에 도착한 창덕궁. 어쩌면 창덕궁까지 들어서는 그 행위자체가 현재 우리의 모습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지도 모르겠다. 넓은 도로를 꽉 메운 자동차의 물결과 서커스 곡예를 방불케 하는 묘기 운전, 계획 없이 난잡하게 들어선 고층빌딩들과 그 속에 너무나도 뜬금없이 자리 잡은 고궁. 정말이지 고궁 옆에 주차를 한다는 것은 하늘에서 별 따기 수준이었다.

일본인 관람 시간에 맞춰 창덕궁에 들어갔다. 한국인과 일본인을 어떻게 구별하시는지 표를 받는 아저씨께서 한국인은 같이 들어갈 수 없다고 막으셨지만, 일본인 일행이 있다고 하자 통과가 허락되었다. 역시 한국인 토종의 외모는 숨길 수 없는 것인가.

일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가이드와 일군의 일본인들과 섞여 있자니 기분이 참 묘했다. 당장 4월에 왔던 창덕궁이었건만 느낌부터 달랐다. 외국에 온 것 같은 느낌이랄까. 옆에서 소곤소곤, 구시렁구시렁거리는 소리가 모두 일본어다 보니 그런 착각이 들 수밖에. 과연 이 일본인들은 창덕궁을 관람하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 물소리는 창덕궁에 생명을 부여합니다.
ⓒ2006 이희동
그러나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일본어보다 정작 이번의 창덕궁 관람을 기존의 것과 다르게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창덕궁 궁내에 들어서자마자 들리기 시작했던 시원한 물소리였다. 비가 온 다음 날. 덕분에 올 때마다 항상 건조하게 메말라 있었던 다리 밑으로 상당한 분량의 물이 시원하게 흐르고 있었다.

창덕궁이 과거 화석이 되기 전에는 항상 이렇게 물이 흘렀을까? 분명 물소리는 창덕궁에 생명을 불어넣고 있었다. 항상 건조한 모습으로 과거 딱딱한 역사만을 담지하고 있던 고궁이, 이곳 역시 사람이 살던 공간이었음을 가슴 아프게 강변하고 있었다. 고궁의 지나간 화려한 시간을 반추하는 눈물이랄까.

고궁을 보는 새로운 시점

 

▲ 정9품직은 이쯤에서 엎드려 앞을 바라봤을 것입니다.
ⓒ2006 이희동

 

▲ 이쯤에서 인정전을 관망하는 이도 있었을 것입니다.
ⓒ2006 이희동
일본어를 전혀 모르는지라 기존의 창덕궁 관람과는 달리 가이드의 말 하나하나에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가이드의 동선과는 상관없이 때론 빠르게, 때론 느리게 일행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다른 시점으로 창덕궁을 바라볼 수 있었다.

가이드는 인정전 앞에서 길바닥에 도드라져 올라온 왕도 등을 운운하며 일본인들에게 왕의 시점을 이야기 했지만 어디 궁에 사는 이가 왕 뿐이었겠는가. 비록 왕조 중심의 역사관에 익숙해져 고궁을 가더라도 왕도를 고집하고, 역대 왕조 임금의 순서를 외우기에 바쁜 우리들이지만 실제로 역사를 풍부하게 만드는 것은 그 중심을 둘러싼 수많은 시점일 것이다.

일본인들이 인정전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사이 나는 정9품이 되어 무릎 꿇어 인정전을 바라보았고 내시가 되어 저만치서 인정전을 바라보았다. 비록 기록된 글귀에 가려져 알 수 없지만 그 시대 모든 사람들이 우리가 배우듯이 경건하지만은, 순종적이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저 멀리 전하의 추상같은 호령에 덜덜 떠는 늙은 신하를 지켜보면서 키득거렸을 궁중 나인이나, 절대 권력의 눈물을 가까이서 보며 권력의 무상함을 뼈저리게 느꼈을 내시들. 어쩌면 현재 우리의 역사 교육에 필요한 건 이런 다양한 시점이 아닐까. 역사는 결코 영웅의 일대기가 아니라 수많은 일상사의 합이란 걸 잊고 있는 건 아닌지.

이어지는 창덕궁 관람

 

▲ 아직까지 사람냄새가 남아 있는 낙선재
ⓒ2006 이희동
30년 만에 개방되었던 옥류천을 관람했던 4월과는 달리 오늘 우리의 관람일정에는 옥류천 대신 낙선재가 있었다. 최근까지 실제 왕족이 기거했던 그곳. 낙선재는 비록 인정전 등의 건물보다 작고 볼품 없었지만 분명 사람의 냄새가 깃들어 정감을 주고 있었다. 확실히 건물은 사람이 살아야만 건물이다. 더 이상 사람이 살지 않고 관리되고 있는 고궁은 어디까지나 문화재일 뿐이다.

낙선재를 나와 후원으로 가는 길은 역시나 아름다웠다. 4월의 길이 싱그러웠다면 7월의 길은 울창함 그 자체였다. 곧이어 보일 부영정의 모습을 기대하며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발을 내딛는다.

울창한 수풀 사이로 보이는 부영정과 주합루의 모습. 비가 온 직후라 비록 연못은 그리 맑지 않았지만 그 연못 위로 가득 메운 연꽃들은 또 다른 상념을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 옆에서 사진을 찍던 어떤 아저씨는 이곳이야 말로 사진을 배우는데 있어서 최적의 장소라며 연신 셔터를 눌러대고 있었다.

 

▲ 후원으로 떠나는 그 길
ⓒ2006 이희동

 

▲ 부용지의 여름
ⓒ2006 이희동
돈화문을 통과한지 어느덧 1시간. 최소한 오늘만은 또다시 금단의 지역이 되어버린 옥류천의 맑은 물소리를 기약하며 발걸음을 밖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비가 온 직후라 옥류천의 수량도 꽤 풍부한 것이 아름다울 텐데 아쉬울 수밖에. 처음엔 흥미롭게 가이드를 따라다니던 일본인들도 이제는 지쳤는지 제각기 떨어져 각자의 행동에 몰두하고 있었다.

수풀을 지나 창덕궁 담장을 따라 밖으로 나오는 길. 창덕궁을 방문할 때면 으레 지나쳤던 그 유명한 향나무마저도 오늘은 달라 보인다. 맑은 시냇물의 소리는 향나무의 그 용틀임에도 숨을 부여하고 있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맑은 물소리가 이내 하수도로 흘러들어 묻힌다는 것이 가슴 아팠다.

 

▲ 맑은 물소리에 향나무의 용틀임마저 생명을 얻습니다.
ⓒ2006 이희동
창덕궁을 나와 일본 친구들의 눈치를 본다. 과연 그들은 창덕궁을 보면서 어떤 생각과 어떤 느낌을 가졌을까? 역시 나의 희망은 희망으로 끝난 것일까? 차에 오르기 전 저 멀리 뿌옇게 보이는 남산 서울 타워를 발견하곤 아는 구조물이 나왔다며 환호하는 일본 친구들. 그들과 남산 관람 후 갈비를 사주겠다고 약속을 한 후 천천히 차를 몰아 종로로 향한다. 평생 잊지 못할 창덕궁의 소리를 간직한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