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그 몽돌밭에 달빛을 깁는 여인이 있다

피나얀 2006. 8. 15. 17:47

 

출처-[오마이뉴스 2006-08-15 14:35]

 

 

▲ 제 몸보다 더 큰 튜브를 들고 바다로 달려가는 작은 딸 빛나(오른쪽)와 조카 소영이
ⓒ2006 이종찬

불볕더위는 그 어디에나 찾아온다

한반도 곳곳을 불볕으로 달구는 여름. 살이 데일만한 불볕더위는 그 어디에나 찾아온다. 저만치 온몸을 우쭐거리며 하늘로 우뚝 솟아난 산봉우리에도 따가운 햇살이 화살처럼 쏟아지고 있다. 저어기 하늘에 떠도는 뭉게구름을 널어놓은 빨랫줄 같은 수평선을 출렁이고 있는 바다, 청자빛 하늘보다 훨씬 더 싯푸른 바다 위에도 따가운 햇살이 바늘처럼 내려꽂힌다.

드넓은 들판에 연초록빛 파도를 일렁이는 나락, 하얀꽃을 매단 나락 포기 사이에도 불볕이 아지랑이로 쏟아지고 있다. 그 불볕 속에 이리저리 구겨지고 휘어지는 여름이 보릿대 모자를 쓴 농민들의 삽날이 되어 축축한 물꼬를 헤집는다. 초록빛 호수에 정갱이를 담근 산골짝에서는 산비둘기 한 마리 '꾹구~ 꾹구~ 꾹구~' 뜨거운 불볕을 내뱉고 있다.

올 여름은 그 어느 해보다 무덥고 길다. 어디를 바라보아도, 어디를 찾아가더라도 숨을 컥컥 막는 불볕더위뿐이다. 찌는 듯한 무더위를 참지 못해 한 사발의 얼음물을 마시고 나면 이내 서너 사발의 땀방울이 온몸 구석구석에서 빗물처럼 주르륵 주르륵 흘러내린다. 찬물로 샤워를 해도 그때뿐, 이내 또 땀이 흐른다.

 

▲ 해금강과 외도를 거쳐 몽돌해수욕장 선착장으로 달려오는 유람선
ⓒ2006 이종찬

 

▲ 몽돌해수욕장에 몰려든 수많은 피서객들
ⓒ2006 이종찬

까아만 몽돌밭에 뒹구는 파도의 끝자락을 밟는 연인 한 쌍

지난 11일(금) 오전 8시. 바늘로 콕콕 찌르는 듯한 불볕더위와 아열대의 밤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족들과 함께 찾았던 학동 몽돌해수욕장(경남 거제시 동부면 학동리). 그 맑고 짙푸른 바다에 찾아온 여름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그 까아만 몽돌밭에 하얗게 구르는 날 선 파도. 뿌우우 소리를 내지르며 수평선 속으로 사라지는 유람선. 그 수평선 위에 고래처럼 떠도는 섬, 섬, 섬.

'싸르락~ 싸르락~' 온몸을 파도에 굴리는 동글동글한 몽돌의 외침. 저 몽돌이 파도에 제살을 깎으며 내는 소리가 한국의 아름다운 소리 100선 속에 뽑혔다고 했지, 아마. 그 뜨거운 몽돌밭에 빼곡하게 들어선 파라솔, 파라솔보다 더 많은 사람들의 선글라스 속에 갈매기 서너 마리 천천히 날고 있다.

까아만 몽돌밭에 뒹구는 파도의 끝자락을 밟으며 다정스레 걸어가는 연인 한 쌍의 모습도 참 보기 좋다. 동글동글한 몽돌밭을 헤집으며 조개껍데기를 줍고 있는 꼬마들의 까아만 얼굴에도 파도가 처얼썩 튀어오른다. 저만치 뭉개구름을 물고 있는 선착장에는 해금강과 외도로 가는 유람선을 타기 위한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바닥이 훤히 비치는 티 한 점 없이 맑은 바다. 그 바다 위에 눈부신 윤슬을 톡톡 터뜨리고 있는 따가운 여름햇살. 그 투명하고 짙푸른 바다와 하나가 되기 위해 제 몸보다 더 큰 노오란 튜브를 힘겹게 끌고 가는 작은 딸 빛나(14)와 조카 소영(14)이. 튜브를 안고 바다에 뛰어든 빛나와 소영이의 작은 어깨 위에도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이 '메롱~' 하며 혓바닥을 쏘옥 내민다.

 

▲ 해금강과 외도로 가는 유람선을 탈 수 있는 몽돌해수욕장 선착장
ⓒ2006 이종찬

 

▲ 꼬마들이 몽돌을 뒤지며 예쁜 조개껍데기를 찾고 있다
ⓒ2006 이종찬

여름햇살과 파도떼와 갈매기가 들려주는 여름 이야기

그때 외도가 떠 있는 수평선 위, 끝없이 쏟아지는 따가운 여름햇살이 거제 학동 이야기를 재잘거리기 시작한다.

'학동의 순수한 우리 이름은 그물개야. 여기 사는 사람들이 왜 그물개라고 부르느냐 하면 높은 산 위에서 이 바다를 바라보면 마치 어부가 수평선에 던진 그물처럼 펼쳐져 있기 때문이야.'

여름햇살의 학동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하늘과 이마를 마주 대고 있는 수평선 위를 마구 구르는 자잘한 파도떼가 달려온다. 그리고 끝없이 출렁이는 바다 이야기를 귓속말로 소곤댄다.

'어부들이 왜 양력을 무시하고 음력을 고집하는지 알아? 끝없이 출렁거리는 이 바다는 달을 따라 움직이고 있거든. 달이 기울고 차는 모습에 따라 밀물과 썰물의 들고 나감이 쬐끔씩 달라지거든.'

마악 말을 끝낸 파도떼가 숨을 고르려 하자 이번에는 뭉개구름이 피어오르는 하늘에서 아까부터 제 홀로 날고 있는 갈매기 한 마리가 끼어든다. 이어 수평선 너머 제 홀로 떠도는 섬 이야기를 끼륵댄다.

'지금 보이는 저 섬이 외도야. 외도는 섬 그 자체로도 참 아름답지만 이창호(1937~2003)란 분이 평생을 바쳐 꾸며놓은 해상농원이 참 멋져. 그리고 외도로 가는 바다 길목에 떠있는 해금강의 아름다운 절경은 환상 그 자체야.'

 

▲ 거제 학동 몽돌해수욕장 앞바다, 멀리 보이는 섬이 외도이다
ⓒ2006 이종찬

 

▲ 파도를 밟으며 해변가를 걷고 있는 연인 한 쌍의 모습이 아름답다
ⓒ2006 이종찬

"이기 누구 바단데 느그들이 입장료를 받고 있노"

거제도 학동에 있는 몽돌해수욕장에 가면 이렇게 정겨운 여름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언제부터 몽돌해수욕장이 한려해상 국립공원에 포함됐는지, 언제부터 몽돌해수욕장을 찾은 사람들에게 국립공원 입장료(1인 1600원)를 받았는지는 잘 모르지만, 하여튼 몽돌해수욕장 입장료 때문에 여기저기에서 실랑이가 자주 벌어진다.

나그네가 몽돌해수욕장을 찾은 그날과 다음날, 그 다음날도 그랬다. 첫 날 오후 4시쯤 나그네는 몽돌해수욕장 주변을 한바퀴 둘러보기 위해 몽돌밭을 빠져 나와 해수욕장 곁에 놓인 산책로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그때 어떤 할머니 한 분과 입장료를 받는 젊은이 사이에 제법 큰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 할머니는 학동 몽돌해수욕장 주변에서 살고 있는 분이었다. 그날 그 할머니가 차가운 바닷물에 발을 한번 담그기 위해 몽돌해수욕장으로 내려 가려고 하자 젊은이가 무조건 입장료를 내라고 한 것이었다. 할머니 왈 "이기 누구 바단데 느그들이 입장료를 받고 있노. 그라모 너거들은 우리 마을에 들어올 때 입장료를 내고 들어왔나?".

나그네 또한 그랬다. 그날 나그네가 가족들이 있는 몽돌밭으로 들어오려 하자 젊은이 한 명이 '입장료를 내지 않으면 들어갈 수가 없다'며 나그네를 가로막았다. 나그네가 '아까 아침에 표를 끊었다'고 하자 대뜸 '영수증을 보여달라'며 윽박지르는 것이었다. 기가 막혔다. 아침부터 수영복을 입고 틈틈이 수영을 즐기던 나그네에게 어찌 영수증 따위가 있겠는가.

 

▲ 몽돌해수욕장 오른 편 끝자락 바위 주변은 낚시꾼들의 차지다
ⓒ2006 이종찬

 

▲ 몽돌해수욕장에서 폭죽을 쏘아올리고 있는 사람들
ⓒ2006 이종찬

밤새 바다 바라보며 고운 달빛을 깁고 있는 여인 하나

이는 나그네뿐만이 아니다. 아이 어른 할것없이 몽돌해수욕장을 찾은 여러 사람들이 어떤 일을 보기 위해 해수욕장 바깥으로 나갔다 들어올 때마다 당해야 하는 수모 아닌 수모이다. 하지만 이러한 실랑이도 오후 6시가 다가오면 슬그머니 사라진다. 몽돌해수욕장 들머리 곳곳에서 입장료를 받는 젊은이들이 퇴근(?)을 하기 때문이다.

이윽고 몽돌해수욕장에 어둠이 서서이 밀려들기 시작하면 해수욕장 주변은 아름답고 휘황찬란하게 빛나기 시작한다. 파라솔이 접힌 몽돌해수욕장 곳곳에서는 아이들이 쏘는 폭죽이 밤하늘을 마구 터뜨리고, 해수욕장 주변에 늘어선 횟집과 식당가에서는 가지 각색의 화려한 불빛이 어둠에 잠긴 밤바다를 향해 환한 빛을 내뿜는다.

바다에 걸쳐진 수평선에서 쏘옥 떠오르는 노오란 달의 모습도 참으로 곱고 아름답다. 밤이 깊어지면 몽돌해수욕장의 하늘 위에 휘영청 떠오른 달이 구름 사이에 그려넣은 무지개 빛깔의 달무리와 어둔 수평선 위에 곱게 뿌려놓은 금빛 달빛이 파도를 따라 밀려오는 모습은 환상의 극치를 느끼게 한다.

그 고운 달빛 아래 밤새도록 바다를 바라보며 달빛을 깁고 있는 여인 하나. 그 여인의 머리 위에서 헤엄치고 있는 달. 어둔 수평선 저만치 끝없이 밀려오는 금빛 물결. 그래. 올 여름에는 마음에 새긴 사람과 함께 거제 학동에 있는 몽돌해수욕장으로 가보자. 가서 끝없이 달려갔다 달려오는 수평선과 달무리 진 밤바다를 바라보며 사랑을 고백해보자.

 

▲ 달무리 진 바닷가 몽돌밭에 여인 하나 밤을 새워 달빛을 깁고 있다
ⓒ2006 이종찬


덧붙이는 글
☞가는 길/서울-대전-대진고속도로-통영나들목-거제대교-해금강, 학동 몽돌해수욕장 쪽-몽돌해수욕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