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오래된 살림집에서 맛보는 남도의 풋풋한 내음

피나얀 2006. 8. 21. 20:38

 

출처-[오마이뉴스 2006-08-21 13:49]

 

여름의 끝자락, 푸른 들판의 지평선이 갯벌과 아스라한 수평선을 만나 절묘하게 어우러진 전남 보성 득량면 예당 들녘을 지나 보성강 줄기를 따라가니 전혀 '남도(南道) 답지' 않은 산속 오지 마을이 연이어집니다. 그 이름 참 예쁜 '참샘 마을'도 그런 곳 중 하나입니다.

참샘 마을은 뒤로는 동소산(해발 465m) 자락에 포근히 기대어 있고, 앞으로는 물이 불어난 보성강이 점잖게 흐르는 곳에 다소곳이 있습니다. 짙은 대숲으로 가려져 있어 버스가 다니는 도로에서는 마을 안을 전혀 볼 수 없어 요새와도 같은 곳입니다. 버스는 물론 웬만한 승합차조차도 들어가기 어려운 좁다란 마을길을 비집고 200여 미터쯤 들어가면 오밀조밀한 마을이 꽤 넓게 펼쳐져 있습니다.

▲ 마을의 한 가운데에 자리한 '참샘'의 모습. 마을의 이름이 이곳에서 유래된 듯 합니다.
ⓒ2006 서부원
족히 자동차 몇 대는 주차할 수 있는 광장이 마을의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바로 그 곁에 범상치 않은 우물이 있는데 '참샘'이라는 마을 이름도 여기에서 유래한 듯싶습니다. 여느 곳 같으면 이미 '진천(眞泉)' 따위의 한자말로 바뀌었을 터인데, 아름다운 우리말을 끝내 간직해온 마을 사람들이 고맙게 느껴집니다.

콘크리트로 담을 쌓은 정사각형의 우물터에는 세 개의 우물이 나누어져 있는데, 그 중 땅 밑에서 쉼 없이 물이 샘솟는 제대로 된 우물 구실을 하는 것은 맨 위에 것이다. 나머지 둘은 그 물을 순서대로 받아 담는 곳일 뿐입니다.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지 곳곳에 이끼가 덕지덕지 끼어있지만, 듣자니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물이 샘솟는 맨 위에 것은 식수로, 가운데 것은 세수용으로, 맨 아래 있는 것은 세탁용으로 쓰였다고 합니다. 마을 사람들의 공동체적 질서를 잘 보여주는 유물입니다.

물어물어 이 마을을 어렵사리 찾은 까닭은 지은 지 100년도 넘었지만 지금도 사람이 살고 있고 여전히 튼실한 남도의 살림집을 만나보기 위해서입니다. 중요민속자료 제156호로 지정된 '문형식 가옥'이 그것입니다.

이른바 특출 난 명문가의 종갓집도 아니고, 풍수지리적인 길지라거나 주변이 빼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곳도 아닙니다. 그러나 이곳에는 남도의 풋풋한 정서가 살아 있습니다. 건물의 구조도 그렇지만, 지금 살고 계신 두 분의 어르신들의 포근한 얼굴을 통해 잘 드러납니다.

▲ 문형식 가옥의 안채 모습. 100여 년 된 건물 치고는 말끔하다.
ⓒ2006 서부원
이 집에는 대문이 없습니다. 낡은 것을 헐고 얼마 전 새로 지었다는 사랑채와 어르신 내외가 사는 안채 등은 있되 여느 곳처럼 담으로 구분되어 있지도 않습니다. 안채 마당과 뒤뜰을 마구 뛰노는 토종닭의 홰홰 거리는 소리조차 아주 정겨운 전형적인 남도의 살림집입니다.

안채 마당에 들어서니 고추를 말리고 계시던 할머니께서 친손자처럼 반갑게 맞아주십니다. 할머니의 얼굴에는 맏며느리의 절제된 모습과 함께, 다정다감한 남도 사투리에 실려 오는 자상함이 묻어 있습니다. 순간 어렸을 적 외가를 찾았을 때의 느낌을 받았습니다.

기다란 일자형 안채 옆으로 한 칸짜리 작은 건물이 하나 세워져 있습니다. 곳간채로 쓰이는 건물이라고 합니다. 곡식을 보관하기 위한 공간인 곳간은 안채 안에 딸려 있는 것이 보통인데, 무슨 까닭인지 외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독특합니다. 자세히 뜯어보니 바닥에서 50센티미터쯤 띄운 것도 그렇고, 입구를 여닫이문이 아닌 널판으로 아예 막고 묵직한 자물쇠로 걸어 잠가 둔 것 등을 보면 꼼꼼한 살림집의 곳간답습니다.

▲ 안채와 외따로 떨어져 있는 한 칸짜리 곳간채.
ⓒ2006 서부원
안채는 맨 왼쪽의 부엌과 네 칸의 방, 그리고 각 방의 앞과 옆으로 둘러져 있는 마루로 이루어져 있는 직사각형 건물입니다. 바깥에서 대충 보면 그렇습니다. 그런데 안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그렇게 단순하지 않으며, 동선을 그리며 구조를 따라가다 보면 이 건물을 지을 당시인 100여 년 전의 이곳에 살던 사람의 살림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큰 가마솥이 놓인 부엌에는 통풍과 빛이 들 수 있도록 지붕의 서까래 바로 아래 환기구를 두었고, 지금은 아예 닫아버렸지만 뒤편으로 부엌에 딸린 조그만 방이 있어 수납장 내지는 음식재료의 임시 보관 장소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또 '왜 남도의 가옥답지 않게 대청마루가 없는지'를 의아해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방이라고 생각했던 가운데 두 칸은 바깥쪽으로 문만 달렸을 뿐 안은 트인 널찍한 대청이었습니다. 계절에 따라 다용도로 활용할 수 있는 겸용 공간이라 할 만합니다.

▲ 부엌의 통풍을 위해 지붕 서까래 아래에 만들어 놓은 환기구 구멍.
ⓒ2006 서부원
거무튀튀한 사각기둥도 그렇지만, 기둥에 맞물려 있는 반들거리는 마룻바닥은 오랜 세월의 더께를 잘 보여주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용되었다는 돌로 된 소 여물통과 깨진 절구통은 이제 이끼 가득히 낀 빗물만 담긴 채 마당 한구석에 버려져 있습니다. 한 세기를 잘 견뎌온 이곳의 쓸쓸한 현재를 말해주고 있다고나 할까요?

▲ 이제는 '퇴물'이 돼 마당 한 구석에 방치된, 돌로 만든 소여물통과 깨진 절구통.
ⓒ2006 서부원
'문형식'이라는 문화재로 등록된 가옥의 이름은 지금껏 이곳을 지키며 평생을 살아오신 할아버지의 그것을 그대로 딴 것입니다. 할아버지의 아들과 손자가 대를 이어 이곳에 살게 된다고 해도 한번 등록된 문화재의 이름이 바뀔 리 만무하지만, 설령 바뀔 수 있다고 해도 기꺼이 들어와 살겠다는 후손들이 없으니 그렇게 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는 전국의 내로라하는 명문가문의 종갓집과 문화재로 지정 보호되고 있는 전통 가옥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의 고민이기도 합니다.

할머니의 말씀처럼, 이곳은 하나 다행스러운 것은 현재 객지에서 생활하는 맏아들이 앞으로 여기서 살아야 한다는 것에 대해 기꺼워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문화재로 지정되었든 그렇지 않든 모름지기 집이란 사람이 살지 않으면 얼마 못 가 망가지게 됩니다. 사람의 자취가 사라지면 집은 그 목적을 잃게 되는 것이니 너무도 당연한 결과라 하겠습니다.

▲ 족히 몇 십 년은 돼 보이는, 곳간채의 녹슨 자물쇠. 만만치 않은 세월의 무게가 느껴진다.
ⓒ2006 서부원
비록 한 세기도 더 된 '문형식 가옥'은 주름 깊은 할아버지 내외분의 얼굴처럼 세월의 무게를 안고 있지만, 시간이 한참 흘러 언젠가 또 한 번 찾았을 때도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변함없이 맞아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뒤로하고 가벼운 목례로 작별 인사를 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웬만한 정성과 노력이 아니면 이곳을 찾아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리 알려진 곳도 아닐뿐더러 도로변에 변변한 안내판조차 세워져 있지 않아 '물어물어' 갈 수밖에 없습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경찰지구대를 찾아가 물었더니, 한 경찰관이 그곳 출신이라며 직접 '에스코트'해 주셨습니다. 족히 시오리는 돼 보이는 가깝지 않은 거리였지만, 기꺼이 직접 안내해주신 겁니다. 이 글을 통해 도움을 주셨던 보성경찰서 복내면지구대의 친절한 그 경찰관께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