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아듀! 여름, 담양 금성산성

피나얀 2006. 8. 24. 19:33

 

출처-[한국일보 2006-08-24 16:12]

 

 

담양은 푸른 숲과 푸른 바람이 만든 은율에 저절로 몸을 들썩이게 하는 고장. 금성산성의 길쭉하게 튀어나온 외남문 성곽 너머, 산자락에 살포시 앉아있는 물길이 담양호다.

 

지칠 줄 모르던 폭염도 한풀 꺾이고, 쉴 곳을 찾아 몰려다니던 피서객들의 폭주도 멈춰진 지금. 여행다운 여행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늦여름에 떠나는 호젓한 여행의 즐거움을 이해한다면 당신은 ‘떠남’의 참맛을 아는 여행꾼. 삼복더위를 집에서, 사무실에서 꾹꾹 눌러 참아가며 지금을 기다려왔다면 말이다.

 

긴 장마를 몰아내고 들이닥쳤던 열대야가 불현듯 사라져버렸고 아침 저녁에 부는 바람에는 푸른 가을의 서늘함이 서려있다. 저물어가는 여름이 무겁게 던지는 한낮의 따가운 볕이 오히려 반가워지는 때다.

 

초록의 잔치를 좇아 늦여름의 여행을 떠난 곳은 전남 담양의 금성산성. 담양군 금성면과 순창군 팔덕면이 만나는 금성산(603m) 자락에 올라 앉은 성곽이다.

 

 

숲길이 끝나고 처음 대면하게 되는 금성산성의 외남문. 푸른 하늘과 뭉게구름이 곱다.

담양 읍내에서 밤을 보내고 어둑한 신새벽 일찌감치 길을 나섰다. 돌무더기 성벽에 쏟아질 새아침 첫 빛을 눈에 담으려는 욕심에서다. 산성 입구 주차장에 차를 대고 산을 오른다.

 

머리를 덮은 초록의 터널은 일찍 일어난 새들의 지저귐으로 부산스럽다. 아무도 만나지 않은 산길을 30여분 저벅저벅 올랐다. 마침내 숲을 빠져나오는가 싶더니 하늘이 열리면서 산성의 외남문이 바로 눈앞이다.

 

금성산성은 연대봉과 시루봉, 철마봉 등 산봉우리를 잇는 능선을 따라 만들어진 성곽. 내성과 외성 2중으로 돼있다. 외성의 둘레는 6.5km. 내성까지 합치면 성의 길이는 7.3km에 달한다.

 

주위에 높은 산이 없어 성 안쪽을 전혀 관찰할 수 없는 천혜의 요새다. 성 안은 마을과 관아, 절이 있었을 만큼 넓어 장성의 입암산성, 무주의 적상산성과 더불어 호남의 3대 산성으로 불린다.

 

성은 삼한시대 때 처음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고려 때는 항몽의 격전지, 임진왜란 때는 의병의 거점이었고 구한말 동학군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정유재란 때 의병과 왜병 사이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후 지금의 ‘보국문(輔國門)’ 현판을 건 외남문의 오른편 깊은 골짜기로 전사자를 치우고 보니 시신이 2,000여 구에 달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 골짜기를 지금껏 ‘이천골(二千骨)’이라 부른다고.

 

 

외남문을 지나 조금 더 오르면 ‘충용문(忠勇門)’ 현판이 달린 내남문. 금성산성 최고의 전망대다. 일찍 올라 아무도 없는 산성 망루에 걸터앉아 웃통을 벗어 던지니 시원한 산바람이 땀을 홅어간다.

 

소의 혀처럼 길쭉하게 비어져 나온 외남문쪽 성곽 너머로 담양호가 다소곳이 들어앉았다. 호수 뒤편에는 여러 겹의 산자락이 포개졌다. 높고 맑은 푸른 하늘 아래 산성의 성곽이 물결치고, 호수의 테두리 고운 선이 물결치고, 무희의 12폭 치마주름 같은 산능선이 한데 물결친다.

 

건너편 무등산과 추월산이 훤칠한 자태를 드러내고 발아래 펼쳐진 담양들판은 풍요로운 초록의 빛으로 출렁인다. 담양 읍내로 길게 뻗은 메타세콰이어 가로수 길까지 눈맛을 더하는데. 마냥 앉아있어도 눈곱 만큼도 지루하지 않을 풍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