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문화일보 2006-09-06 17:11]
(::낡은 기차역의 낭만, 추억 보듬고 홀로 잠든 해변…::)
# 청소역에서 만난 장항선의 옛 모습과 아련한 추억.
충남 천안에서 장항까지 잇는 143.2km의 단선철도. 장항선은 대 천해수욕장을 잇는 추억이 시작되는 공간이다. 여름이면 교련복 을 입은 학생들이나, 가족단위 승객들이 열차 안을 빼곡하게 메 웠다.
철로는 햇볕에 이글이글 달궈졌고 더위에 지친 입석승객들 이 열차 통로까지 들어차 북적거렸지만, 바다로 떠나는 열차에는 흥겨움이 넘쳐났다. 젊은이들이 메고 온 기타를, ‘풍기문란’이 란 터무니없는 이유로 열차승무원에게 뺏기고는 달리는 열차의 난간 손잡이에 매달려 뜨거운 가슴을 식히기도 했다.
1931년에 개통됐으니 올해로 일흔다섯 해를 맞는 장항선. 노인이 된 장항선은 이제 수술을 기다리고 있다. 철도개량화사업으로 2 009년까지 철로를 곧게 펴는 직선화 작업이 이뤄지는 것. 종착역 인 장항에서 군산까지 철로가 새로 놓이면서 군산에서 전라선과 이어지게 된다.
그때쯤이면 아마도 구불구불 마을과 마을을 이?沮獵?장항선의 정취는 간데없어질 것이다. 세련된 유선형의 열 차들이 ‘새 길’을 달리고, 간이역이나 낡은 역사 대신 말끔해 진 쇼핑센터와 같은 역들이 들어서게 될 테다. 새로운 길로 사람 들은 빠르게 오가겠지만 곡선이 없는 철로는 얼마나 삭막할 것인 가.
지금 장항선을 찾아가는 것은 바로 이런 연유다. 장항선에서 옛 모습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는 곳은 바로 ‘청소역’이다. 푸를 청(靑)에 곧 소(所)소. 충남 보령시 청소면 진죽리의 이 역은 당 초 ‘진죽역’이었으나 88년 지금의 이름으로 개명됐다. 붉은 벽 돌로 지은 역사는 지금은 흰색 페인트로 단장했지만, 역사 안의 창틀이며 나무의자까지 세월이 묻어나지 않는 것이 없다.
“이쪽은 변한 게 거의 없어요. 역사는 물론이고 마을도 수십년 전 그대로의 모습이지요. 역전식당이며 다방이며… .” 고향이 대천이라는 역무원 유임희(54)씨는 쌀 한 주먹씩 퍼 가지 고 모여서 텐트 들고 대천해수욕장을 찾아갔던 까까머리 시절의 장항선에 대한 추억을 풀어내며 “이제 청소역도 언제 문을 닫을 지 모른다”고 했다.
효용성과 수익성의 잣대로 보자면 하루 손 님이 50여명에 불과한 청소역은 진작에 없어졌을 역이다. 역 앞 에서 만난 마을주민 김병준(54)씨는 “한때 진죽역(청소역)은 하 루종일 들고나는 사람들로 북적였다”며 “지금은 내가 고향을 떠나 무작정 상경했던 18세 무렵의 모습 그대로”라고 했다.
철길의 침목 주변에는 호박이 덩굴을 뻗고 있고, 역무원들이 가 꿔 놓은 노란 가을꽃들이 화분 가득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무 궁화호 열차가 딸랑딸랑 종소리를 따라 역구내로 들어서고, 바람 에 하늘하늘거리는 코스모스. 문뜩 올려다본 하늘이 참 푸르다.
# 대천 바다에서 길어올린 오래된 이야기들.
이즈음 대천의 바다는 한가하다. 때늦은 휴가객들을 기다리는 해 변의 튜브대여점만이 하릴없이 바다를 지키고 있다. 굉음을 내며 모래사장을 가로지르던 네발오토바이나 하늘을 나는 초경량 비 행기도 뜸하다. 대신 조용히 홀로 해변을 걷는 사람들이나, 연인 들만이 드문드문 빈 공간을 메우고 있다.
대천해수욕장에서 가장 한적한 곳은 중앙광장에서 바다를 끼고 북쪽으로 1∼2㎞쯤 올라가면 만나는‘여인의 광장’ 일대. 대천 해수욕장의 한가운데로 가장 위치가 좋은 곳이라, 이곳에는 일제 시대 때부터 일찌감치 건물들이 들어섰다.
해수욕장 개발사업이 진행되면서 수백년 수령의 울창한 송림을 밀어버리고 중앙광장이 들어섰고, 모텔촌이나 횟집단지가 줄줄이 들어섰지만, 이곳은 아 직 개발의 손을 타지 않았다. 일대가 시유지라 수십년 동안 개발 이 제한됐던 탓이다.
골목을 들어서면 낡은 여관 건물들과 목조건물에 들어선 횟집들, 세탁소와 낡은 유리문의 가게들…. 저마다 ‘펜션’이니 ‘하와 이’니 하는 간판을 세워 놓고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아무래도 ‘요즘 손님’을 끌어들이기에 역부족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곳 에는 넓은 유리창과 세련된 네온사인으로 무장한 개발지역의 모 텔이며 음식점이 주지 못하는 ‘추억’이 묻어 있다. 이 거리 한 복판의 대천해수욕장 여름경찰서 옆에는 ‘하와이여관’이 있다.
일제시대 때 전기판매를 독점했던 한성전기회사의 별장건물로 세워졌던 곳이다. 건물은 시멘트로 발라져 있지만 안쪽에는 목조 다다미방의 흔적들이 곳곳에 있다. 이렇듯 이 거리의 낡은 건물 들은 모두 한두 가지씩 이야기를 갖고 있다.
지난 1960년대 중반부터 식당을 해왔다는 하와이여관 주인 김영 차(70)씨는 “여기가 서울로 치자면 ‘명동’이었다”며 “워낙 없던 시절이라 지금처럼 젊은 사람들은 거의 없었고, ‘돈깨나 만지던’ 사람들이 가족을 데리고 이곳을 찾았다”고 했다. 그때 만 해도 대천해수욕장으로 고깃배들이 무시로 드나들었다. 이른 새벽 고깃배들은 해수욕장에서 잡아낸 생선이며 꽃게를 부려놓았 다.
식당 하나 변변한 게 없었던 당시 김씨는 36공탄(연탄)불에 꽃게를 삶아서 피서객들에게 팔았다. 손님들이 줄을 설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소라와 해삼도 썰어서 내놓았다. 당시 해삼 한 접시에 3000원, 꽃게 3마리에 1000원을 받았다. 쌀 한 가마가 30 00~4000원쯤이었으니 호되게 비싼 가격이었다.
한때는 ‘노름방’으로 유명했다던 ‘대동여관’은 이제 툇마루 를 가진 민박집 형태의 여관으로 바뀌었다. 여관을 운영하는 전 병식(44)씨는 “학창 시절, 한쪽 구석에 텐트를 치고 여름을 지 내면서 도회지에서 몰려든 말쑥한 도시 사람들의 모습을 보곤 친 구들과 서울로 가는 기차를 타는 꿈을 꿨다”며 “그렇게 여름철 이 지나면 한 반에 몇명씩 무작정 상경해 빈자리가 늘었다”고 했 다.
이곳의 여관들은 여인숙에 가까울 정도로 낡아 있지만 어느 바다 , 어떤 해수욕장보다 더 가까이 바다를 두고 있다. 여관방 창을 열면 바로 백사장과 바다가 잇닿아 있다. 그 덕에 마음이 복잡해 대천을 찾은 여행자는 밤새 철썩이는 파도소리에 잠을 설치게 마련이다. 이른 새벽 해변으로 나가 누군가 찍어 놓은 백사장의 발자국을 따라 걷다보면 생각이 더욱 깊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 으리라.
# 장쾌한 정경의 옥마산, 그리고 지나쳤던 것들.
대천은 보령으로 불러야 옳다. 지난 1995년 대천시와 보령군이 통합돼 보령시가 된 탓이다. 보령시에서는 대천해수욕장 외에 눈 에 띄는 여행지를 찾기 어렵다. 대천해수욕장의 후광에 가려 이 렇다 할 관광개발이 이뤄지지 않았던 탓이다.
그렇지만 옥마산 패러글라이딩 활공장만큼은 빼놓지 말아야 할 곳이다. 보령시를 품에 안고 있는 성주산 능선과 이어져있는 옥 마산은 해발 601m의 높지도, 낮지도 않은 산이다. 이 산의 정상 부근에는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이 있다. 잘 다듬어진 산정상 부위 에 서면 한눈에 보령시 일대는 물론 서해바다 위의 섬들까지 내 려다보인다.
그야말로 가슴이 툭 터질 듯 장쾌한 전망이다. 멀리 대 천해수욕장과 안면도, 삽시도, 원산도가 손에 잡힐 듯 서해 위에 떠있다. 산 정상이지만 힘들여 등산을 하지 않고 차를 타고도 포장도로를 따라 가볍게 오를 수 있다.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계단 몇개만 오르면 바다를 굽어보는 산 정상의 풍경을 만끽할 수 있는 것이다.
보령에서 부여 쪽으로 국도를 타고 가다가 만나는 ‘개화예술공 원’도 여행포인트로 삼을 만한 곳이다. 5만여평에 달하는 예술 공원은 조각공원과 육필시비공원, 허브랜드, 참숯가마 등 다양한 시설이 구비돼 있다. 유명 시인들의 육필원고를 새겨놓은 비석 들이 즐비하고, 세계각국 조각가들의 작품들도 공원 곳곳에 서있 다. 이곳의 조형물들은 대부분 구상의 형태여서 일반 관람객들도 한눈에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공원의 조형이나 구성은 그러나 세련된 맛이 덜한 편이다. 좀 투 박하기도 하고 정리된 느낌도 덜하다. 하지만 그림 같은 산책로 를 숨겨 놓고 있다는 점 한 가지만으로도 찾아볼 만하다. 조각작 업장 뒤편 연꽃이 만개해 있는 연못을 한 바퀴 도는 산책코스에 는 한창 목백일홍이 붉은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연못 가운데 에는 3명의 선녀상이 기품 있게 서있다. 그래서 이곳을 ‘선녀지’ 라고 부른다 개화예술공원 못 미처 석탄박물관도 자녀들을 위해 들러볼 만한 곳이다. 각종 탄광관련 설비 등을 전시한 관람실보다 지하의 탄 광체험실이 아이들에게 인기다.
이곳을 둘러보면 보령시 일대가 한때 손꼽히는 탄광 지대였음을 알수 있다. 탄광이라면 먼저 태 백 쪽을 떠올렸던 사람이라면 의외다. 아이들은 지하 수백m를 내 려가는 듯 착각하게 하는 엘리베이터의 효과나 폐광의 냉풍을 맞 아보는 체험시설에 환호성을 지른다.
◆ 대천해수욕장 가는 길=
서해안고속도로를 탄다면 길을 잘못 들 리 없다. 대천IC에서 빠져나가면 대천해수욕장 방향을 알리는 표지판이 끊기지 않고 이어진다. 고속도로를 나와 36번 국도를 타고 가다보면 대천해수욕장 중심의 광장을 만난다. 광장에서 우회전해서 길을 따라 1.5㎞쯤 가면 ‘여인의 광장’을 만난다. 이곳 일대가 바로 해수욕장의 옛 풍경이 남아있는 곳이 다.
◆ 패러글라이딩 활공장 가는 길 =
보령시에서 부여로 넘 어가는 40번 국도를 타고 가다 성주터널을 지나자마자 왼편으로 나있는 샛길을 따라 올라간다. 성주산 일출전망대 정자까지는 왕 복 2차로. 전망대에서 옥마산 정상까지는 교행이 불가능한 포장 도로다. 군데군데 차를 비킬 곳이 있긴 하지만, 마주 오는 차가 있는지 주의하고 살펴서 가야 한다.
옥마산 정상은 전파송신소가 있어 접근할 수 없다. 그러나 정상 바로 아래쪽 패러글라이딩 활공장까지는 차량으로 출입할 수 있 다. 활공장에 도착하면 길 양편으로 주차공간이 마련돼 있다. 주차장 바로 위쪽이 장쾌한 전망이 펼쳐지는 활공장이다. 군데군데 ‘ 차량통행 자제’ 등의 표지판이 있지만, 관광객들의 차량출입은 허용돼 있다.
◆ 잘 곳과 먹을 것 =
대천해수욕장에서 가장 깨끗한 잠 자리는 물론 대천 한화콘도. 비수기로 접어들어서 주중 9만원 안 팎이면 이용할 수 있다. 해수욕장 인근에 깔끔한 모텔이나 여관 들이 빼곡하지만 ‘러브호텔’ 분위기가 풍기는 것이 단점. 추억 을 되새기고 싶다면 일제시대 지어졌다는 ‘하와이여관’(041-93 3-9981)이나 ‘대동여관’(041-932-4348)을 찾아도 좋다. 숙박비 는 3만원가량.
이들 여관의 숙박비는 3만원 안팎. 대천은 식당들이 즐비하지만, 이렇다 할 맛집이나 메뉴는 없는 편. 해수욕장 인근에 조개구이 나 횟집이 성업하고 있는데, 워낙 치열하게 경쟁하는 탓에 양이 나 맛은 대동소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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