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800㎞를 내뻗은 산맥…높이 1000m 암벽에 둘러 싸인 분지

피나얀 2006. 9. 21. 01:10

 

출처-[주간조선 2006-09-20 10:32]

 


남호주 플린더스 레인저스 '아웃백 투어 결정판'…클레어 밸리는 호주 와인의 고향

10분쯤 졸았던 모양이다. 감긴 눈꺼풀 끝을 간질이며 햇빛이 속삭였다. 눈을 떠, 이제 출발이야.

아침 8시. 호텔 입구에 ‘도요타(Toyota)’ 라벨을 붙인 구식 4륜 구동 지프 한 대가 서 있었다. 여기는 남호주(South Australia)의 주도(州都) 애들레이드(Adelaide) 도심 한복판. 지금부터 7시간쯤 북(北)으로 내달려 남호주가 자랑하는 와이너리(winery, 와인 양조장)와 아웃백(outback, 호주의 오지(奧地)를 일컫는 말)을 돌아볼 참이다. 일정은 고작 1박2일. ‘드라이버 겸 가이드’를 맡은 마이클의 미간에 살짝 주름이 생겼다 사라진다. 2박3일은 돼야 하는데 너무 짧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부르릉, 부르르. 둔탁하고 강한 시동 소리에 몸이 따라 떨리더니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5인승 지프의 좌석이 꽉 들어찼다. 낯선 이들과 어깨가 닿을 듯 말 듯한 거리를 유지하며 장거리를 여행하는 일은 고역이다. 게다가 어쩌다보니 뒷좌석 가운데 자리를 골라 앉았다. 맙소사. 잠시 아득해졌지만 이내 정신을 차렸다. 시작도 하기 전에 지칠 순 없지, 암.

 

도심을 빠져나간 지프는 곧 차창 가득 광활한 평원을 펼쳐놓았다. 두껍게 층을 이룬 흰색 구름과 여린 연둣빛 초원은 드문드문 서 있는 나무의 짙은 초록과 묘하게 어울렸다. 방목 중인 양떼의 아이보리색이 그 앙상블에 고명으로 얹혔다. 양손의 엄지와 검지를 직각으로 세워 어슷하게 끝을 맞추었다. 손이 닿는 곳 어디나 제법 어엿한 그림 엽서가 됐다. 누군가 호주를 가리켜 ‘나라 전체가 포토제닉한 곳’이라 했던 게 떠올랐다. 그 말, 하나 틀린 것 없다.


남한보다 77배나 큰 땅에 1㎢당 인구 밀도는 1명을 약간 웃도는 나라, 그것도 도심을 한참 벗어난 곳에서 교통 체증은 난센스다. 수십 분을 달려도 차는커녕 행인 하나 마주치는 법이 없었다. 엽서 만들기도 슬슬 지겨워질 때쯤, 저만치서 표지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클레어 밸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Welcome to the Clare Valley)!’. 애들레이드를 출발한 지 2시간여 만이었다.

 

클레어 밸리는 인근 바로사 밸리(Varossa Valley)와 함께 남호주를 대표하는 와인 원산지 중 한 곳이다. 1842년 처음 포도밭이 들어선 후, 160여년간 ‘메이드 인 오스트레일리아’ 와인을 제조해왔다. 이 마을의 지형은 해수면으로부터 대략 400~500m 위로 솟아 있다.

 

 그 덕에 여름엔 낮이 덥고 밤은 서늘하다. 겨울엔 비가 잦다. 매년 겨울에 내리는 비만 평균 630㎜ 이상이다. 포도가 자라기 적당한, 완벽한 대륙성 기후다. 하나 둘 생기기 시작한 이 지역의 포도밭은 이제 줄잡아 40여개에 이른다.

첫 번째 방문지는 ‘세븐힐 셀러스(Sevenhill Cellars)’. 1851년에 설립, 일대 와이너리 중에서도 터줏대감 역할을 하고 있다. 종교 박해로 본국에서 추방 당한 오스트리아 제국 출신 신부 2명이 호주에 정착하면서 세워진 곳이다. 마케팅 담당 크리스틴은 “초창기 우리 양조장은 교회 성찬식용 와인(sacramental wine)을 만드는 데 주로 사용됐다”고 설명했다.

 

그의 말이 아니더라도 양조장 곳곳에는 세븐힐의 종교색을 짐작할 수 있는 시설이 즐비했다. 주축이 되는 성(聖) 알로이시우스 교회를 비롯해 성모 마리아상과 납골당, 묘지까지 갖춰져 마을 전체가 거대한 기독교도 집합소 같은 느낌이었다. 720㎢에 달하는 거대한 포도밭과 지하 저장고가 그나마 이곳의 정체성을 깨닫게 해주었다.


역사가 오랜 만큼 세븐힐은 포도 품종과 와인 생산량에서 다른 와이너리를 거뜬히 압도한다. 여기서 생산되는 포도 품종은 레드 와인을 제조하는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쉬라즈(Chiraz), 메를로(Merlot)를 비롯해 화이트 와인의 재료가 되는 리슬링(Riesling), 샤르도네(Chardonnay), 세미용(Semillon) 등 20여종에 이른다.

특히 초창기부터 재배해 최상의 품질을 자랑하는 쉬라즈 와인은 자타가 공인하는 ‘수퍼 프리미엄’급이다. 세븐힐에서 만들어 세계 각국에 판매하는 와인은 연 평균 3만5000상자. 병으로 따지면 21만병에 해당한다.


호주에서 8월은 포도밭을 방문하기에 좋은 계절이 아니다. 우리나라와 계절이 반대인 이곳에서 포도 농사는 4월, 늦어도 5월 초면 끝난다.

수확이 끝난 6월 이후는 본격적인 비수기다.

강렬한 태양빛 아래 탱탱하게 영근 포도알을 보리라는 기대는 여지 없이 무너졌다.

끝없이 이어진 포도밭에는 앙상하게 가지를 드러낸 포도나무와 포도 송이를 지지하기 위한 버팀목만 초겨울 바람에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