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카파도키아에서 대접받은 감동적인 식사

피나얀 2006. 9. 28. 00:14

 

출처-[오마이뉴스 2006-09-27 13:49]  

 

▲ 높은 언덕에 올라가서 본 로즈벨리
ⓒ2006 김동희
한낮의 태양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이글거린다. 하지만 바람 역시 한결같이 그 곳에 불어주고 있다. 괴뢰메 오픈 뮤지엄을 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작년에는 이 길이 참 멀어 보였다. 발 근육에 문제가 있어 조금 걷다 쉬기를 반복해서야 가까스로 갔었는데 어느새 마지막 언덕을 올라가고 있다.

하지만 항상 빠른 걸음이 좋은 것은 아니다. 그 때 쉬면서 느꼈던 그 조각 조각의 평화로웠던 풍경은 내 빠른 걸음 속에 뒤로 지나가 버렸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느꼈던 그 감정은 더 이상 느낄 수가 없다.

작년에 이 곳에 왔을 때, 나보다 10살이나 어린 터키 꼬맹이가 다음에 오면 함께 러브 밸리를 가자고 했었다. 그 곳에 가면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그 귀엽디 귀여운 꼬맹이는 없지만 그 곳에 걸어서 가보고 싶었다. 왜 가고 싶었을까. 잘 모르겠다. 그냥 왠지 꼭 가봐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높은 돌산을 넘기로 했다. 길가에서 무작정 올라갔다. 아무 것도 안보이지만 그냥 저 높은 곳에 가면 그 곳이 보일 것 같았다. 미끄러워 쩔쩔매며 올라갔다. 그 높은 곳에 올라갔을 때 눈앞에 로즈 밸리가 숨이 막힐 정도로 크게 다가왔다. 하지만 그 반대편에 있는 러브 밸리는 아득하다. 그냥 ‘저기 어디쯤이겠지’ 라는 감으로 발길을 옮겼다.

아무도 없는 길. 갈래갈래 길. 그냥 내가 가는 곳이 길이 되는 곳들. 그런 길을 한참 걸었다. 어디로 가야할 지 몰라 주위를 둘러보기도 했다. 왔던 길로 돌아가지 않으려고 높은 곳에서 뛰어 내리기도 했다. 포기하면 아무 것도 못하고 그저 주저앉을 것 같아서 이리 저리 길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저 멀리 사람의 소리가 들리고 포도밭이 보인다. 러브 밸리도 조그맣게 보인다. 조금은 안심이 된다. 조그만 집이 하나 보인다. 아무 생각 없이 어슬렁거리고 있는데 할아버지 한 분이 저 멀리서 손짓한다. 우리를 향해 뛰어오신다.

“Hot!! Hot!! 너무 더워! 들어와. 들어와. 내 사무실이야.”

얼떨결에 사무실로 들어갔다. 할아버지는 길러온 물통으로 컵을 닦고 체리 주스를 주신다. 갈증이 가신다.

“너희들 저 위에서 뛰어 내려오는 거 봤어. 더워. 너무 더워. 좀 쉬어.”

할아버지의 친절

▲ 무스타파 아저씨의 사랑이 담긴 한끼 식사
ⓒ2006 김동희
영어를 잘 못하시는 할아버지는 바로 옆 교회와 사클리 교회(Sakli Kilise·숨겨진 교회)를 관리하신다고 했다. 손짓 발짓을 다 해가며 나에게 자신이 메시지를 이해시키기 위해 열심이셨다. 이렇게 공통된 언어가 없어도 몇 단어 쓰지 않고도 말이 통하는 구나! 아마 할아버지의 마음이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고자 하는 그 진한 마음이 그냥 스르르 들어오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는 열쇠를 쥐어 들더니 자신을 따라오라고 한다. 꼭 자신의 보물단지를 보여주려는 것처럼 신이 나셨다. 숨겨진 교회를 보여주려고 하신다. 오는 길에 네덜란드 청년이 사클리 교회가 아름답다면서 한참을 이야기 해주며 꼭 가보라고 했기 때문에 나 또한 이 기막힌 우연이 즐거웠다. 사실 이 교회를 찾아서 볼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교회는 이름 그대로 숨어 있었다. 우리는 그 길을 지나쳐 왔어도 그곳에 교회가 있다는 생각은 하질 못했다. 그저 길이었는데 길 옆 안보이게 계단이 보였다. 그곳으로 내려가니 숨겨져 있던 교회가 그 모습을 들어낸다. 교회 안은 괴뢰메 오픈 뮤지엄에서 보던 교회들과 다를 것이 없었다. 다른 점이라면 열정을 가지고 진심을 다해 나에게 자신이 아는 모든 단어와 손짓으로 설명해주시는 할아버지가 있다는 것.

또 흥미로운 것은 교회 위에 큰 구멍이 있는데 그곳은 굴이 파져 있어서 그 굴이 저 멀리 우치히사르까지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교회 바닥에 2008년을 쓰시면서 이 때가 되면 그 터널을 일반인에게 공개한다면서 그 때 꼭 다시 와 그 곳을 통해 우치히사르를 가보라고 하신다. 아무 것도 없을 것 같은 이 곳에 4km의 굴이 있다니!

우리는 다시 무스타파 할아버지의 사무실로 갔다. 덥다는 말을 달고 사시는 그분은 또 체리 주스 한잔 씩 만들어 주신다.

“배고프지?”
“아니에요. 괜찮아요.”

▲ 저멀리 뾰족뾰족한 러브 밸리가 보인다.
ⓒ2006 김동희
하지만 이미 늦었다. 신문지는 이미 책상 위에 깔렸고 저 구석에서 토마토와 오이를 꺼내신다. 칼로 정성스레 잘라서 접시에 놓아주신다. 소금 통을 꺼내더니 소금도 뿌려주신다.

“우리 집. 네브세히르에 있는데. 거기서 키운 거야. 오늘 아침에 따 온 거야.”

그러더니 가방에서 빵을 꺼내 썰어 놓으신다. 또 서랍을 여시더니 비닐에 쌓여있는 치즈 덩어리를 쏟아 놓으신다. 또 한잔의 체리 주스와 함께.

너무 감동적인 식탁이었다. 아나톨리아에서 최고의 식당이라고 하는 알라투르카에서 먹은 저녁보다도 더 감동이었다. 이 낯선 이방인에게 자신의 하루 먹거리를 다 내놓으신 그 분의 마음이 진하게 녹은 그런 따뜻한 신문지 위의 식사.

“이런 곳에서 혼자 안 외로우세요?”
“괜찮아. 괜찮아. 여기서 5년 일했어. 아무렇지도 않아. 큰 관광버스 오면 정신없어.”
그런데 왜 그렇게 외로워 보이시던 지. 왜 그렇게 하루 종일 같이 있어 드리고 싶던지.

그렇게 체리 주스를 한잔 더 마시고 나서야 그 곳을 나왔다. 할아버지는 러브 밸리 가는 길을 알려주셨다. 우리가 러브 밸리로 가는 길다운 길에 도착했을 때 그 때도 할아버지는 사무실 앞 포도 넝쿨 앞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힘껏 손을 흔들어 드렸다. 할아버지도 힘껏 손을 흔들어주신다.

러브 밸리에 도착했지만 꼬맹이가 말한 사랑의 마음이 솟아나지는 않았다. 그냥 할아버지가 있는 그곳으로 눈길이 자꾸 갔다. 따뜻한 마음, 그 마음이 있는 그곳이 진짜 러브 밸리가 아닐까.


덧붙이는 글
2006년 8월 두 번째로 떠난 터키 여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