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출근길은 여유로워 좋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와야 수업을
시작하는, 특수하다면 특수한 직업을 가졌으니 보통의 직장인들과는 달리 오전 시간은 한가롭고 여유롭다. 언젠가 나더러 무슨 일을 하냐고 묻길래
오후에 출근하는 직업을 가졌다고 했더니, 그게 뭐냐고 궁금해서 못 견디겠다는 표정을 하던 분이 생각나서 웃음이 난다. 그분의 눈빛이 아주 심각해
보였기 때문이다.
하긴 오후에 출근하고 야심한 시각에 퇴근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 맞긴
맞다. 시험 기간에는 더구나 야행성이 되어버린다. 늦잠꾸러기가 되기 딱 알맞은 직종이다. 좀 일찍 일어나면 남들보다 일을 몇 배로 하는 듯하여
뿌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계절은 칼 같이 왔다가 칼 같이 단번에 가는 것이 아니어서 여름의 흔적이
아직도 곳곳에 남아 있고 가을은 가을대로 자신의 향취를 풍기고 있다. 우리 집은 새로 난 소방도로변에 있다. 도로를 내면서 빈 터들은 대부분
텃밭을 만들어 이것저것 심어 놓았는데 집을 나서면 우선 도라지꽃이 눈에 띈다. 흰색도 예쁘지만 나는 보라색을 굉장히 좋아해서인지 보라색
도라지꽃이 훨씬 예쁘다.
보라색을 좋아하면 고독한 성격에 예술가적 기질이 있다고 한다. 이것은 내
표현이고 우리 딸은 한마디로 ‘사이코 기질’이 있다고 한다. 요즘 애들과 이렇게 표현의 차이가 있으니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조금 더 걷다 보면 감, 대추, 은행, 모과, 피마자, 수세미가 익어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어느 집 담 밑에는 아직도 채송화가 피어 있고 봉숭아가 손톱에 꽃물들이라고 유혹하고 있다.
해바라기는 키가 껑충한 채 노란 색 꿈을 물고 있는 듯하지만 발밑에 씨가
총총히 여물어 누운 모습이 청춘과 노쇠한 모습을 한꺼번에 보여준다.
갑자기 재채기가 난다. 별처럼 핀 금목서 꽃향기가 콧속을 간지럽혔기
때문이다. 알레르기성 비염 증세가 있어서 환절기에는 재채기가 심하다. 금목서 곁에 가면 재채기부터 해서 금목서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곳을
지나면 어린이집이 있다. 동화 속의 궁전같이 담쟁이 넝쿨이 가득 감싸고 있다. 작은 창문을 열고 잠자던 공주가 웃으며 손짓할 것 같다.
곧장 가지 않고 왼쪽 길로 돌아서 가본다. 여고 앞의 육교가 보인다.
조성해 놓은 꽃밭과 어울린 배경이 아름답다. 육교 아래 풀섶에서 달맞이꽃은 아직 그 노란 빛을 거두기가 아쉬운지 밝고 환하다. 망초꽃 곁에는 잘
말라가는 풀들이 바람에 함께 흔들린다.
이것을 잘 생각하다 보면 인생이 무엇이고 우리는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있다고 하셨다. 그런데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알 듯하면서도 모르겠다. 떨어지는 저 잎이 작년의 잎이 아니나 작년의 잎과 같다고
생각하면 글쎄, 한 소식 얻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한 소식은 고사하고 마음이 더 무겁고 복잡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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