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NAYARN™♡ 【이성(연애)】

불평등한 한가위, 우리집을 고발합니다

피나얀 2006. 10. 10. 00:34

 

출처-[오마이뉴스 2006-10-09 10:49]



▲ 우리집 추석 풍경. 부엌에서 일하는 사람이 처음부터 따로 있나요.
ⓒ2006 이진선


올해 추석은 다른 연휴보다 길었지요. 뉴스에서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긴 귀성길 행렬관련 소식이 전해집니다. 서해대교에서 큰 사고가 나서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했습니다.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추석 특집 오락 프로그램들은 연예인들의 '겹치기 출연'으로 그게 그것 같습니다. 영화들도 꽤 많이 보여주는데 아니 왜 그리 싸움질 욕질하는 게 많은지 오래간만에 모인 가족들끼리 보는 영화치고는 조금 심합니다.

연휴가 다른 때보다 조금 길었을 뿐이지 변한 건 하나도 없는 것 같습니다. 해외에 나가는 사람들이 많고 성형수술하는 사람들이 늘었다고 하는데 그거 원래 예상되는 일이었죠.

그런데 어째 우리 집도 변한 게 하나도 없습니다.

구태의연한 우리집, 명절 되면 '친가'로 직행

생각해 볼 여지도 없습니다. 너무나 '당연히' 친할머니댁으로 먼저 향합니다(사실 '친가' '외가'라는 말도 따져보고 싶습니다. 아무 생각없이 쓰는 이 단어 또한 차별이 담긴 단어라고 생각됩니다. 어느 쪽은 '친한 가족'이고 어느 쪽은 '바깥 가족'입니까? 하지만 다른 대체어가 떠오르지 않아 이 글에서는 구분하기 위해 사용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왜 외가 쪽으로 먼저 안 가냐고 하니까 그게 '전통'이라고 합니다. 우리 집은 딸만 둘이니까 나는 나중에 친정에 먼저 오겠다고 했는데, 그냥 엄마는 웃고만 맙니다.

맏며느리인 우리 엄마는 친가로 떠나기 며칠 전부터 여러 반찬을 준비해 놓습니다. 추석 때 일을 줄이기 위해 미리 해놓는 것이라는데 사서 고생입니다. 무슨 반찬을 그렇게 많이 하는지 무엇을 먹어야 할지 고민할 정도입니다.

친할머니댁 식구는 기독교 집안이라 제사를 드리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힘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오산입니다. 먹고 치울 때 보면 설거지가 끝이 없습니다. 5남매 식구들이 다 모이면 대식구는 대식구인가 봅니다.

그래도 여전히 가만히 앉아있는 것은 남자들이고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은 여자들뿐입니다. 상을 펴고 수저놓는 일도 절대 도와주질 않습니다. 그냥 앉아서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한 마디 내뱉습니다.

"반대로 놓지 않았느냐. 제대로 좀 놓아라."

할 말을 잃었습니다. 아니 그렇게 얘기할 거면 좀 도와주든가. 하지도 않으면서 말은 많습니다.

상 치우기도 바쁜데 "과일 좀 내와라" 재촉까지

또 있습니다. 한번 상을 치울 때 시간이 꽤 걸립니다. 세 개의 상으로 나누었던 반찬을 정리하는 데만도 복잡한데 거기서 남자들이 또 한마디 내뱉습니다.

"차하고 과일 좀 내와라."

아니 다 치우고 나서 어련히 내올까 자꾸 부추깁니다. 아니 여자들이 무슨 로보트입니까. 그것도 무슨 초고속 로보트!

우리 할머니는 식사를 가장 늦게까지 하십니다. 다른 분들 다 드시고 치울 때 혼자 드십니다. 옆에서 할아버지가 한 마디 합니다.

"남들 먹을 때 같이 퍼뜩 먹었어야지 뭐하고 있었덩거?"

알고 보니 우리 할머니는 제일 늦게 식사를 시작합니다. 밥을 잘 못드시는 증조 할머니를 위해 일일이 반찬을 잘게 잘라주시고 식사 도중 누가 "무슨 반찬 좀 더 내와라"하면 그 때마다 내오는 일이 할머니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할머니도 좀 편히 식사를 하게 도와달란 말입니다.

추석특집으로 한 프로그램에서 김미경 원장(미래여성연구원)이 강의를 합니다. '추석 때 남녀를 떠나 같이 일을 하자, 서로 좋은 말을 하자'라는 것이 주된 내용입니다. 내용도 어쩜 그렇게 속시원히 얘기해주는지 후련해집니다. '이것을 보고 남자들도 좀 반성하겠지'라고 생각을 했지요.

그러나 이 때도 어김없이 여자들은 부엌에 있습니다. 거실에서 이것을 보고있는 것은 남자들과 아이들 뿐입니다. 참 그 상황이 웃깁니다. 나는 아빠에게 묻습니다.

"아빠, 저것 봐. 남자들도 같이 설거지하고 일을 도와야 된다고 하잖아?"

그 때 아빠의 대답이 할 말을 잃게 했습니다. "부엌도 좁은데 들어가면 복잡해질 뿐이야." 아니, 실천도 하지 않을 것을 강의는 왜 듣습니까?

시집서 이틀 내내 일하고 친정선 밥 한끼 간신히 하는 엄마

같이 돕자고 할 때 핑계로 대답하는 유형이 한 가지 더 있어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것도 직접 들은 얘깁니다.

"남자들은 운전해야 되잖아."

그렇지요. 운전하는 것도 힘든 것 압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힘들게 일한 엄마 대신 아무 일도 하지 않았던 아빠가 운전을 하면서 졸린다고 합니다. 결국 엄마가 운전대를 붙잡았습니다. 아빠는 옆에서 주무십니다. 우리 엄마 아무 말 없이 운전합니다.

친가에서 이틀 내내 일한 엄마는 외가에서는 한 끼 식사만 달랑하고 다시 친가로 돌아왔습니다. 이유를 물어보니 손님이 또 오신다고 합니다. 명절 때마다 똑같습니다.

내년 설엔 우리집도 변할까

밥 먹다가 물을 떠오라는 말에 "직접 떠다 드시지요"라고 말하는 내 한 마디에 아직은 우리 집 식구들이 적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의? 그거 압니다. 알지요. 하지만 정말 화가 나서 몇 마디 해도 우리 할머니가 말리십니다. "아무리 세상이 바뀌었다 하더라도 어른들 앞에서 그런 소리하면 못 쓰는 것이여."

이러다간 변하지 않겠습니다. 어떻게 해야 될까요? 명절의 의미가 무색해지고 있습니다. 이번 추석도 이렇게 허무하게 지나갑니다. 내년 설에는 그래도 '변화'를 한번 기대해 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