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오마이뉴스 2006-10-09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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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느리 사정 힘들다고 어지간한 명절 음식은 미리 해놓으신 어머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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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김현자 |
| "아침 먹었니?
아범 편에 먹을 것 좀 챙겨보내랴? 아침먹을 반찬도 없을텐데…"
명절날 밤에 식구들 모두 시댁에 떼놓고 혼자 도망쳐와 실컷 자고
일어나 기분이 무척 좋았다.
'까짓 몇끼 밥이 문제야? 이렇게 좋은데?'
하지만 막상 밥 먹었냐는 전화를 받고나니
어머니께 좀 죄송한 생각이 들었다. 어쩔 수 없는 사정 때문에 아이들만 놔두고 차례가 끝나자마자 가버린 동서. 그런데 명절날 밤에 나까지
도망쳐(?) 오고 말았으니 어머니 혼자 아이들 아침밥 챙겨먹이면서 얼마나 바빴을까?
가기 전부터 도망칠 궁리부터... 난
'불량 며느리'
10년 동안 가게를 하면서 언제나 명절 전날에나 간신히 가던 시댁이었기에 늘 죄송스런 마음이었다. 그래서
'올해는 좀 일찍 가서 김치도 담고 해야지'하며 한가위 한 달 전부터 마음먹었다. 그러나 막상 한가위가 가까워지면서 슬슬 꾀가 나기 시작했다.
'지금은 가게도 안 하는데 언제 가야 하나?' 명절이 다가오면서 이렇게 막상 망설이고 있는데, 어머니께서 전화로 "명절 전날에나
점심 넘기지 말고 오너라"라고 하시지 않는가!
전화를 받는 순간 한 달 전에 먹었던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 대신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명절날 일찍 도망쳐올 궁리만 하고 있었다. 정말이지 남들이 보면 불량스럽기 짝이 없는 며느리다.
'올해는 친정에도
가지 않기로 했고, 보름 후에 집안에 잔치가 있다고? 그럼 올 추석에는 별도로 오고가는 손님도 별로 없겠네? 기회가 좀 좋아? 그럼 나도 식구들
모두 떼놓고 일찌감치 집에 와서 나만의 시간을 가져보는 거야. 아침밥도 신경 안 쓰고 실컷 자고. 아니 옛날처럼 절에 가서 하룻밤 자고 올까?'
식구들 모두 시댁에 두고 혼자 집에 온다는 내게, 어머니는 별다른 말씀 없이 아침에 일어나 먹을 것을 더 걱정하셨다. 그리고
이것저것 챙겨가라고 했지만 무겁다고 내가 겨우 들고 온 것은 송편 몇 개와 포도 한 송이. 하지만 어머니는 아침밥을 잡수시며 저 편하자고 혼자
집에 간 며느리의 아침이 걱정되었던 것이다.
변한 시어머니 덕에 명절 스트레스 싸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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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가위 음식 중 가장 많은 시간을 쏟아야 하는 송편. 올해 처음으로 떡집에 송편을 맞춘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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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김현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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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 일은 어머니께서 미리 해놓으시고,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야채 다듬어 데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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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김현자 |
| "늦게 오란다고 보란 듯이 이제 오니? 송편은 언제 다 만들고 부침개는 언제 다 할 거냐? 며느리 왔으니 난
이제 모른다! 엄마는 이제부터 푹 쉴 테니 네가 알아서 다 해라!"
명절 전날 점심 무렵에 시댁에 도착한 내게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하지만 송편은 떡집에 맞추어 찾아오셨고, 부침개도 동태전만 놔두고 몇 가지는 이미 해두셨다. 그리고 식혜도 이미 해놓으시고 묵을
쑤어 막 그릇에 담고 계셨다.
"저야 편해서 좋지만, 그래도 송편 하나 만들지 않고 명절 보내려니 많이 서운해요."
"장사하는 사람들 모두 힘들다는데 가게 접고 올해는 네 마음도 좀 복잡해 보이고 해서 그냥 송편은 떡집에 맞추었다. 송편 만들고 찌고,
이것저것 하면서 식구들 밥 챙겨 먹이고 그러자면 너나 나나 몸이 얼마나 고단하냐? 엄마가 쌀가루 미리 해놓았으니 가져가서 송편 먹고 싶을 때
조금씩 해먹어라!"
올 명절 어머님 댁에 가서 내가 한 일을 헤아려 본다. 명절 전날 점심 무렵에 가서 한 일이 얼마나 될까?
그나마 많은 일을 했다면 명절날 새벽 6시에 일어나 잡채 무치고, 탕 끓이고, 반찬에 올릴 고명 만들고 매짓고. 이런 걸로 좀 바빴을 뿐.
몇 년 전부터 그래온 것처럼 어머니와 나는 차례음식만 만들고 이번 명절도 차례 상 차리는 것부터 설거지까지 남자들이 거의 했다.
이쯤 되면 스트레스는 아예 없는 한가위였다.
그러나 몇 년 전까지 나 역시 명절스트레스가 엄청 심했다.
가만히
앉아 '이것 내놔라, 저것 줘라'하던 남자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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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느리가 좋아하는 '청포묵' 만큼은 명절때마다 빠뜨리지 않고 직접 쑤는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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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김현자 |
| 몇년 전까지,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시어머니의 권위만을 내세워 며느리에게 기대만 했다. 그리고 몇 되지 않는
남자들도 가만히 앉아 놀면서 이제 좀 엉덩이 붙이고 앉아 쉴까 하면 '이것 내놓아라, 저것 내놓아라' 끊임없이 요구했다. 그러다보니 동서와 나는
명절 후 며칠 동안 몸살이 나곤 했었다.
어머니는 며느리들이 명절에 쉴 새 없이 일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아니 오히려
어머니 젊었을 때를 말하면서 "모든 일에는 예의와 범절…""뼈대 있는 집안의 며느리들은…"이라고 말씀하셨다. 여자라면 누구나 다 치르는 명절인데
유별나게 몸살까지 나고 그러느냐며 오히려 부실한 몸을 못마땅해 하셨다.
그런데 몇년 전, 남편이 이런 어머니께 강하게 맞섰다.
그날은 어머니 생신이었는데 난 며칠째 가벼운 몸살을 앓던 중이었다. 이런 사정을 알고 있는 남편은 생신상을 물린 그 많은 설거지를 자기가
하겠다며 팔을 걷고 나섰다. 어머니는 당연히 펄쩍 뛰셨고 남은 반찬을 정리하고 있는 며느리들을 탓하며 당신이 하겠다며 남편을 몇 번이고
밀어냈다.
그러나 남편은 그대로 물러서지 않고 남자들도 집안일을 적극 해야만 하는 이유를 조목조목 말하면서 어머니를 설득했다.
'남자들이 주방에서 어쩌면 어쩐다더라'는 어머니의 완고한 관습은 이렇게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사실 그 때, 어머니 기분이 조금
좋아 보이면 '남자들도 집안일을 같이 할 수밖에 없는 게 요즘 시대'임을 틈날 때마다 의도적으로 말했다. 어머니께서 좀 바뀌기를 바라면서.
그러나 어머니는 며느리의 말이 당돌하다고 여겼던지 앞에서는 고개를 끄덕이셨지만 좀처럼 바뀌지 않았었다. 그런데 아들의 몇 마디에 완고한 생각이
무너지고 만 것이다.
며느리의 천마디 애원보다 당신 아들의 한마디 말이 이렇게 강할 수 있다니! 놀라면서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리고 남편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여하간 이것을 시작으로 남자들은 집안일을 조금씩 더 하게 되었고, 이전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도와주었다.
명절 집안일은 온 가족이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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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께서 챙겨 보내신 것 일부. 수박을 예쁘게 잘라 차례상에 올린 큰 시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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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김현자 |
| 올 한가위, 동태전을 부친 것은 남편이고 명절 전날 밤 식구들이 모여 놀면서 먹은 뒤처리 담당은 막내
시동생이었다. 그리고 명절 낮에 모든 식구가 먹은 간식과 식사 설거지는 큰 시동생이 도맡아 했다. 물론 차례상 차리는 것부터 차례상을 물린
설거지를 한 것도 남자들이다.
몇년 전, 아픈 나를 대신하여 남편이 설거지를 하려고 하지 않았다면 올해도 난 명절스트레스에 몸살이
났을지도 모른다. 명절마다 되풀이했던 것처럼 "언제 집에 돌아갈 것이냐"며 남편과 끝없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늦은
아침이라도 먹을까? 어머니께서 우선 챙겨 보내신 것을 하나씩 들추어본다. 두부 반 모만한 청포묵이 보였다. 큰 아이를 가졌던 첫 설날에 맛있게
먹는 나를 보면서 15년 넘도록 명절이면 빠뜨리지 않고 시어머니가 손수 만들어주시는 청포묵!
'이것 무치고 얼마 남지 않았는데?
그냥 두고 잡수시지 얼마나 된다고 이걸 챙겨 보내셨대? 명절날 일찍 도망간 며느리 뭐가 이쁘다고!'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명절 다음날인 10월 7일에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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