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경향신문 2006-10-11 15:39]
마드리드는 ‘열기의 냄새’가 나는 곳이라고 한다. 햇볕을 파는 나라라고 불리는 스페인의 수도를, 또 이곳 사람들의 정열적인 성향을 딱 맞게 표현하는 듯하다. 한여름 마드리드의 뜨거운 태양은 대기를 마치 오븐 속처럼 데워 놓는다.
하지만 이번엔 그 더위가 결국 소나기를 몰고 왔다. 여행자로서 낯선 거리에서 비를 맞는 것은 그리 유쾌한 일이 못되지만 열기가 식은 거리는 내 기분을 상쾌하게 했다. 왕궁 주변과 마요르 광장의 젖은 건물들은 무게를 싣고 더 웅장하게 보였다.
하지만 밤 늦도록 먹고 마시고 노는 이곳 사람들은 날씨도 상관치 않는지 레스토랑과 술집의 종업원들이 거리에 나와 있는 젖은 테이블과 의자들을 닦고 있었다. 그 ‘소문난 밤 잔치’를 한 남자가 아코디언 연주로 열기 시작했다.
1561년 국왕 펠리페 2세가 근처의 톨레도에서 이곳으로 수도를 옮겼다. 국토의 한가운데 있는 건조하고 혹독한 기후의 고원지대로 거의 아무 것도 없던 곳이었다고 한다. 게다가 스페인 내전 후 급하게 재건되고 프랑코 사후에나 생기를 찾기 시작한 마드리드는 사실 19세기와 20세기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신시가지엔 현대적인 건물이 세워지고 교외에는 공장과 고층 아파트들이 들어서면서 점점 팽창해가는 대도시. 첫 눈에 그렇게 매력적으로 보이는 도시는 아닐 수 있다.
마드리드는 도시가 통째로 박물관 같은 파리나 로마같이 고색창연한 아름다움은 좀 모자랄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곳에는 많은 보물을 담고 있는 세계 수준의 미술관들이 있다. 선사시대부터 알타미라 동굴에 벽화를 그렸고, 또 각 시대마다 미술사에 큰 발자국을 남긴 대가들을 많이 배출한 나라의 수도답다.
12세기의 로마네스크 프레스코부터 20세기 추상 작품까지, 스페인 외에도 다른 나라 예술가들까지, 그들이 제공하는 시각 체험의 세계가 마드리드의 미술관에 열려 있다. 엘 그레코와 벨라스케스의 걸작들이 있는 프라도 미술관. 그곳에 가면 나를 충격으로 침묵에 빠지게 하는 고야의 검은 그림들(black painting)을 만날 수 있다.
또 피카소의 게르니카가 걸린 소피아 미술관에서는 미로와 달리와 함께 초현실의 세계에서 꿈을 꿀 수 있으며 타피에스와 칠리다와도 한참 얘기를 나눌 수가 있다. 그래서 나는 마드리드를 피해 갈 수가 없다.
프라도 미술관은 1819년 건립되어 중세부터 18세기에 이르는 작품 6,000여점을 소장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고야의 그림들이, 그 고통과 공포, 의혹의 표정과 사악한 인간들 모습들로 나를 사로잡는다. 그 얼굴들 하나하나만 보고 있어도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고야의 블랙 페인팅들은 궁정화가로서의 왕성한 활동을 마친 78세의 그가 나폴레옹 전쟁과 그후 스페인의 정치적 혼란을 겪으며 느껴온 인간 세상의 비열함과 잔혹성을, 그것에 대한 고발과 풍자, 비판을 14점의 유화로 그 자신의 집 석회벽 위에 그린 것을 나중에 캔버스로 옮긴 작품들이다. 아들을 잡아먹는 사트루누스, 악마의 집회, 왕정복고를 피해 지브롤터를 넘어 도망가는 공화주의자들, 시드로 축제에 나온 추악한 민중들….
모두 마음을 편치 않게 하는 이미지들이다. 청각을 잃은 노년의 숭고한 노력이 담긴 그 자유롭고 힘찬 붓자국은 우리에게 깨어나라고 채찍질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 그림들은 고야가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자신만을 위해 제작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더 호소력이 있는가 보다.
소피아 미술관에는 피카소의 게르니카가 걸려 있다. 1937년 스페인 내란 중 프랑코를 지원하는 독일의 무차별 폭격에 의해 많은 희생자를 낸 게르니카라는 작은 마을의 사건을 한 장면으로 압축한 349×775㎝의 거대한 유화 작품이다. 전쟁의 공포, 민중의 분노와 슬픔은 흰색, 검정색, 회색으로 처리된 이 그림 속에서 더 비극적으로 전달된다.
죽은 아이를 안고 울부짖는 여인, 짓밟힌 사람들, 창에 찔린 말…. 어쩌면 그렇게 한마디 말도 없이 이미지로만 인간을 파괴하는 무모한 폭력을 신랄하게 비난할 수 있는지. 감히 피카소에게 질투가 났다.
게르니카가 걸려 있는 같은 방에는 이 작품을 위한 스케치며 각 부분을 연습한 소품들이 같이 전시되어 있다. 쉽게 그려진 듯 보일 수 있는 게르니카를 그리기 위해 피카소가 얼마나 철저하게 준비를 했는지 알 수 있다. 그 작은 거인을 질투하는 것을 포기했다. 뒤로 멀리 물러나 정면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작품 전체를 한참 바라 보았다. 무채색의 레퀴엠이 울려 퍼져 나왔다.
고야나 파카소의 이 걸작들이 지금도 우리의 마음에 큰 진동을 주는 이유는 배경과 인물의 상세한 묘사를 배제하고 표정이나 제스처, 그리고 색채로 메시지를 표현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어떤 특정 시대나 신화 속의 사건으로보다는 지금 우리 시대의 비극들을, 그리고 우리 자신들의 잔혹함을 그들의 작품에서 볼 수 있게 한다.
또한 다루고 있는 주제로만 아니라 색채와 그 속의 생명체들이 만들어내는 정직한 분위기가 우리의 감성을 자극하기 때문에 누구나 어렵지 않게 이 작품들에서 반응할 수 있는 것 같다.
여행길에는 정말 볼 것이 천지다. 아름다움으로 단지 눈을 즐겁게 하는 것들, 가슴으로 전달되어 느끼게 하는 것들, 머리로 전달되어 생각하게 하는 것들. 우리는 그 체험의 세계로부터 문을 닫아 걸지 않아야 한다.
보고 느낀 것으로 해서 생각이 바뀌고 삶의 행로가 바뀐다 해도. 거리로 나서니 짙은 회색의 하늘을 가르고 무지개가 떠 있었다. 스페인 국기가 휘날리는 석조 건물들 사이로 지나가는 무지개는 피카소나 고야의 이미지처럼 오래 지워지지 않을 그림을 내 마음 속에 그려 주었다. 마드리드는 내게 아름다운 도시로 기억될 것이다.
▶여행길잡이
마드리드까지는 인천에서 직항 항공편이 운행된다. 스페인 내의 다른 도시로의 이동은 유레일 패스를 이용하지 않는 한 기차보다는 버스로 연결하는 편이 가격이나 시간상 유리하다. 바르셀로나 7~8시간, 그라나다 5시간, 산 세바스찬 6시간 정도 소요된다.
마요르 광장, 스페인 광장, 왕궁, 미술관 등 관광 명소들은 걸어서 다닐 만한 거리에 있으며 마드리드 중심인 푸에르타 델 솔에서 시작하는 것이 편리하다. 마드리드에는 유스호스텔부터 싼 숙박 시설이 많이 있다.
한국인이 경영하는 민박집을 이용하면 한식으로 아침을 먹을 수 있고 여행 정보도 많이 얻을 수 있는 이점이 있다. 가격은 도미토리 20유로이고 2인실이나 가족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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