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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PIFF]마니아 정우석씨 ‘난 이렇게 즐긴다’

피나얀 2006. 10. 12. 00:57

 

출처-2006년 10월 11일(수) 오후 3:41 [경향신문]



프리랜서 방송PD인 정우석씨(27)는 올해로 7번째 부산국제영화제(P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PIFF)를 찾는 ‘PIFF 마니아’다. 대학 2학년이던 2000년 당시 제5회 부산영화제를 처음 찾은 정씨를 매료시킨 것은 뭐니뭐니 해도 보고 싶은 영화들이 파도처럼 밀려와줬다는 것.

 

‘어떤 영화를 볼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영화를 포기해야 하나’를 고민해야 할 정도로 부산영화제의 차림상은 늘 푸짐했다. 정씨처럼 행복한 고민에 빠진 영화팬들은 ‘관객과의 대화’ ‘오픈 토크’ 등을 통해 평소 이름만 우러르던 감독·배우들과 직접 만나볼 수 있는 기회까지 마련해주는 부산영화제를 잊지 못하고 이듬해 10월을 기약하게 되는 것이다.

첫 방문 때 그저 부산에 가면 되겠지, 하고 갔다가 남포동과 해운대가 전철로도 1시간은 소요되는 거리라는 걸 깨닫고 뒤늦게 고생했던 기억, 찜질방도 없던 시절 숙소를 구하지 못해 바닷가에서 신문지 덮고 잠을 청했던 일들도 정씨에겐 이제 추억거리다. 영화제를 밝히는 불빛이 바다의 정취를 더하는 해운대, 유명 배우가 ‘떴다’ 할 때마다 인산인해가 되는 남포동 PIFF 광장, 그리고 친구들과 비싸지 않은 전어회를 나눠 먹을 수 있는 자갈치시장까지, 부산의 10월은 올해도 여지없이 정씨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12일 저녁 새롭게 출항하는 제11회 부산국제영화제. 지난 10년을 발판삼아 새로운 10년을 출발하는 부산영화제와 줄곧 함께 해온 정씨도 덩달아 자랑스러움을 느낀다. “관객과 함께 소통하면서 대중의 영화 이해도를 높이고, 아시아 영화인들이 필름아카데미 등을 통해 미래를 준비하고 공유할 수 있도록 장을 마련해주는 아시아 최고, 최대의 영화제”라는 게 PIFF 마니아로서 부산영화제를 바라보는 정씨의 흐뭇한 평가다.

‘우리의 영화제에 이 정도 수준 있는 작품들과 이만한 영화인들이 찾아오는구나’ 하면서 뿌듯해하는 사람은 정씨만이 아닐 것이다. “지난 10년간 부산영화제가 아시아 영화의 소개와 발굴, 아시아 영화 발전의 동력으로서 역할을 확장시켜 왔다면 향후 10년은 한국과 아시아 영화의 시장 확장 등 새 지평을 열어 나갈 것”이라는 김동호 집행위원장의 포부에 많은 영화팬들이 응원을 보내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씨는 올해도 13일부터 2박3일간의 알뜰한 영화제 참관계획을 세웠다. 금요일 저녁 기차로 부산에 도착해 짐을 풀고 금요일 밤을 수놓는 영화제 야외행사들을 둘러보며 친구들과 회 한접시 함께하면 워밍업은 끝. 토요일부터는 예매해놓은 상영작, 영화인과 만날 수 있는 자리들을 하나하나 챙기기 시작한다.

63개국에서 245편의 영화가 건너온 올해 부산영화제는 상영작 수도 역대 최다이지만 세계 최초 상영인 월드 프리미어 작품도 64편이나 된다. 경쟁부문인 뉴커런츠 섹션에 올해 초대된 10편 중 9편이 월드 프리미어 또는 인터내셔널 프리미어, 즉 자국 외 세계 최초 상영작으로 높아진 부산영화제의 위상을 더욱 실감케한다.

게다가 이미 해외영화제에서 관심을 모은 거장들의 신작은 어찌 그리 많은지. 의욕 넘치는 영화제 초보 관객들은 무엇부터 봐야 할지 눈이 돌아갈 판이지만 어느 정도 관록이 붙은 정씨는 여유 있고도 꼼꼼하게 스케줄을 짰다. 토요일엔 해운대 상영작들을 집중 공략하고 일요일엔 남포동에서 영화를 보고 거리에서 축제를 즐길 참이다.

가능하면 ‘관객과의 대화’, 즉 GV(Guest Visit) 시간이 마련된 상영작을 고르는 게 정씨의 스케줄 작성 기준. 영화를 본 직후 감독과 질의·응답을 할 수 있는 GV가 풍성한 것도 영화팬들을 부산영화제로 이끄는 강력한 흡인력이다. 올해엔 전부터 기대해왔던 ‘괴물’의 봉준호 감독을 비롯해 ‘폭력써클’의 박기형 감독, ‘경의선’의 박흥식 감독을 만날 수 있게 됐다. 이밖에 정씨는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IT의 황제’와 김태식 감독의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 한국 단편 초청작과 만날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부산영화제에선 굳이 좋은 영화를 고르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잔칫상이 풍성한 만큼 처음 맛보는 음식을 발견하는 기쁨도 크다. 아직도 영화제를 ‘그들만의 축제’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경험이 없어 머뭇거리는 이들에게 PIFF 마니아들은 “시간 따라 물결 따라 부산의 거리에서 눈에 띄는 영화나 행사를 보면서 축제 자체를 즐기라”고 충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