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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우림 | 록 밴드, 자우림

피나얀 2006. 11. 6. 20:57

 

출처-[매거진t 2006-11-06 14:41]



자우림이라는 밴드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

2006년에 1990년대를 얘기하는 건 시기상조일지 모르지만, 많은 사람들이 1990년대를 변화의 시기라고 말하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한국 대중음악은 1990년대를 통틀어 급변했다고 말할 수 있다.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으로 1970년대 이후 가라앉았던 청년 문화가 수면으로 부상했고, 1996년을 기점으로 음반사전검열 제도가 철폐되기도 했으며, 1990년대를 통틀어 젊은이들의 문화예술 공간이던 홍대 앞이 음악적 대안 공간으로 기능하기 시작했다.

 

특히 홍대 앞의 변화가 가시적으로 드러나던 1996년은 일부 클럽들을 주축으로 시도된 언더그라운드 음악 축제인 ‘스트리트 펑크쇼’(‘땅밑달리기’의 전신)와 < INDIE >, <강아지문화예술>과 같은 인디 레이블의 출현으로 홍대 앞에서 생산되던 음악들이 대중적으로 알려지던 시기였다. 그때

 

활동하던 음악가들 중 여전히 음악 활동을 계속하며 대중성을 획득하고 있는 이들은 델리 스파이스, 언니네 이발관, 그리고 자우림 등이다. 특히 자우림은 모두 9장의 앨범을 발표하며 가장 대중적으로 성공한 밴드로 성장했다.

탈주하는 밴드, 자우림

6집 <Ashes to Ashes>쇼케이스

자우림은 1994년 산울림 카피 밴드였던 CCR(초코크림롤스)로부터 시작된 밴드다. CCR은 유앤미블루, 이상은, 황보령 같은 젊은 예술가들과 함께 홍대 앞 클럽 블루데블에서 공연을 했고 1996년 김윤아를 만난 뒤 미운오리로 개명, 1997년 영화 <꽃을 든 남자>의 OST에 자우림이라는 이름으로 ‘헤이, 헤이, 헤이’를 발표할 때까지 활동했다. 이후 자우림은 알려진 대로 1집 < Purple Heart >를 2주 만에 10만장을 판매하며 메이저 록 밴드로서의 첫 발을 내딛었다.

자우림은 지금까지 6장의 정규 앨범을 발표했다

자우림의 존재는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들은 밴드 음악이라는 (한국 대중음악에서의) 비주류 감수성을 자우림(혹은 김윤아)의 스타성과 성공적으로 결합한 거의 최초의 밴드이기 때문이다.

 

자우림에게 이런 평가를 내릴 수 있는 것은 그들의 음악, 그러니까 사운드와 노랫말을 포함하여 자우림이라는 밴드 자체가 대중들에게 소비되는 방식이 기존의 대중음악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그들은 한동안 ‘홍대 앞 인디씬 출신’이라는 수식으로 이해되었고 그것은 ‘남다른 음악성’이라는 의미로 수용되었다.

 

그것은 이른바 록 음악이란 젊음과 저항의 음악이라는 ‘록 이데올로기’의 한국식 표현이기도 했다. 다시 말해 음악 팬들에게 홍대 앞이라는 공간은 ‘진짜 음악’이 생산되는 공간이었으며 ‘홍대 앞 출신’이라는 꼬리표는 그 음악가의 음악을 ‘다른 것’으로 받아들이게 만들기도 했다.

 

게다가 자우림의 보컬 김윤아가 주도적으로 참여한 자우림의 히트곡들, ‘일탈’이나 ‘미안해 널 미워해’, ‘매직 카펫 라이드’ 등은 여성적 감수성에 기반한 대안적인 음악으로 수용되었고 김윤아를 동시대의 아이콘으로 만들기도 했다.

 

이런 경향은 2001년 김윤아의 솔로 음반 < Shadow of Your Smile > 이후 더 견고해졌으며 결과적으로 자우림과 김윤아를 동일시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자우림의 정체성은 ‘인디 씬 출신’으로도, ‘메이저 록 밴드’로도 설명되거나 이해될 수 없다. 그들은, 단적으로 말해, (매스컴이든 팬들이든) 자신들을 정형화하려는 의도로부터 탈주하고 싶어 하는 밴드이기 때문이다.

밴드, 자우림

3장의 비정규 앨범들

그들은 자신들이 ‘의도한 음악을 하는 밴드’로 이해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들에게 음악은 자연스러운 것, 혹은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자우림의 이런 경향은 그들의 정체성의 많은 부분을 구성하고 있다. 단적으로 자우림은 2002년 4번째 앨범 <4> 이후 어떤 변화들을 드러내게 된다.

 

사운드적인 면에서는 좀 더 정교해진 밴드 음악을 표현하게 되었으며, 노랫말에 있어서는 구체적인 상황보다는 내면적인 추상성을 드러냈다. 결과적으로 보다 대중적인 감수성에 천착한 이들은, 특히 2004년의 5번째 앨범 < All you need is Love >로 지지와 비판을 함께 받기도 했다. 물론 그들은 여전히 록 밴드였으나, 이 앨범에 대한 양가적인 반응들의 뿌리는 그것이 ‘어떤 록 음악’이냐는 것이었다.

 

특히 이 앨범은 김윤아의 두 번째 솔로 앨범 <유리가면> 직후에 발표되어 그녀(혹은 자우림)의 상반된 감수성에 대한 팬들의 혼란도 야기했다. 그러나 본인들은 이런 반응과는 상관없이 2005년 비정규앨범 <청춘예찬>을 발표하며 그들의 음악적 근원을 밝히거나,

 

2006년 6번째 정규 앨범 < Ashes to Ashes >를 통해 자신들의 다양한 음악적 스펙트럼을 드러냈다. 그런 점에서 이들에 대한 양가적인 평가는 역설적으로 자우림의 다양한 음악적 접점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우선, 주목할 만하다.

 

애초에, 밴드의 의미는 공동체의 개념으로 사용되던 언어였고 그것이 음악 집단에 적용된 것은 1960년대 미국 대중음악(혹은 록 음악) 비평가들을 통해서였다.

 

음악적으로 밴드란 ‘평등한 관계의 구성원들이 만든 그 자체로 독립적인 단위’를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현재 한국의 메이저 대중음악계에서 밴드로서의 정체성을 지키고 있는 집단은 자우림이 가장 대표적이다.

 

무엇보다 10년 이상 한 번도 멤버 교체를 겪지 않았다는 사실과 여전히 음악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는 것이 그들(의 음악)에 대한 평가에 앞서 존중되어야 할 사실일 것이다. 이것은 한국 대중음악에서 자우림이라는 밴드를 반드시 기억해야할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