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오스트리아③ 모차르트를 사랑하는 이유

피나얀 2006. 10. 26. 21:58

 

출처-[연합르페르 2006-10-26 09:52]




잘츠부르크와 빈, 아니 오스트리아의 어디를 가든 모차르트(Mozart)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 붉은 옷을 입고 있는 그의 초상화는 거리 곳곳에서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아무리 오스트리아가 많은 음악가를 배출한 '음악의 나라'라고는 하지만, 어찌하여 한 명에게만 매달리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Mozart'라는 알파벳 여섯 자에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숨겨져 있는 모양이다.

 

유럽 고전 음악사에서 모차르트가 차지하는 위상은 절대적이다. 그의 비극적인 인생은 재미있는 드라마가 갖춰야 할 요소를 모두 담고 있다. 독특한 캐릭터와 그의 주위에서 벌어지는 흥미진진한 사건들, 극적 반전까지 말이다. 이러한 사실이 그의 음악을 더욱 아름답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차르트의 악곡은 가장 흔하게 연주되고 있지만, 그가 살아가야 했던 현실의 상황은 그다지 밝지 못했다. 35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했고, 지금까지도 무덤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하는 버려진 삶. 무엇보다도 생의 마지막에 사랑했던 여인과 자신의 청중들에게서 철저히 외면을 받았다는 점이 전형적인 천재의 일생을 보여주는 듯하다.

 

모차르트를 연구한 독일의 한 학자는 "모차르트는 타고난 천재다"라는 일반적인 명제에 강한 물음표를 던진다. 물론 그가 두드러지는 영감을 지닌 영재였음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당시의 모순적이고 뒤틀린 사회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모차르트가 지금과 같은 영예는 누리지 못했을 것이란 뜻이다.

 

단순히 음악만을 놓고 봤을 때 모차르트에게 필적할 만한 사람은 단연코 없었다. 하지만 그는 단지 사회적 지위가 높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머리 위에 군림하면서 곡조에 대해 사사건건 간섭하고 명령하는 것을 참아야 했다.

 

 

그는 창조적인 작품을 창작하기 위해 사회에 순응하지 않았다. 잘츠부르크에서 빈으로, 뮌헨으로, 파리로 옮겨 다녔지만 신념을 굽히기보단 진가를 알아봐줄 사람을 찾았다. 현실과 타협하는 것은 절필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우리가 그를 사랑하는 것은 천재이지만 '인간'적이기 때문이다. 생의 끈을 놓는 마지막 순간까지 모차르트는 처절하게 고뇌했고, 갈망했다. 그의 훌륭한 음악은 이 과정에서 생긴 산물이다.

 

▲ 오스트리아 =

 

유럽의 한가운데에 위치한 오스트리아는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슬로베니아, 헝가리, 슬로바키아, 체코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서유럽과 동유럽을 잇는 가교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셈이다. 공용어는 독일어이며, 통화는 유로를 사용한다. 겨울에는 매서운 추위가 찾아오고, 산간지방에는 많은 눈이 내린다. 시차는 한국보다 8시간(서머타임에는 7시간) 늦다.

 

▲ 가는 법 =

 

인천에서 오스트리아로 향하는 직항편은 없다. 오스트리아항공은 현재 도쿄, 베이징, 상하이 등을 경유해 빈으로 가는 항공편을 운영하고 있다.

 

 

▲ 오스트리아항공 =

 

오스트리아항공 한국 지점은 프라하, 빈 에어텔 7일 상품을 11월 한 달 동안 121만 원에 판매한다. 또한 비즈니스클래스는 30% 할인된 가격에 제공하고 있다. www.austrian.co.kr, 02-3788-0140

 

▲ 카페 =

 

빈 관광청이 추천하는 카페 5곳은 프로이트와 폴 매카트니가 좋아했던 란트만(Landtmann), 도심에 위치한 전통적인 카페 디글라스(Diglas), 1899년 아돌프 루스가 건축한 무제움(Museum), 많은 예술가들이 들렀다는 전설적인 카페 첸트랄(Central), 케이크로 유명한 자허(Sacher) 등이다.

 

▲ 호이리게 =

 

프랑스에 보졸레 누보가 있다면, 오스트리아에는 호이리게가 있다. 그 해 만들어진 포도주를 의미하는 호이리게는 매년 11월 11일에 출시된다. 호이리게를 마시려면 예전부터 품질이 좋은 포도가 생산됐던 빈 숲으로 가는 것이 좋지만, 시간적 여유가 없는 사람은 빈의 바인켈러에서도 마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