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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슬포항의 새벽, 출항하는 배의 엔진소리가 청년의 숨결처럼 힘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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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김민수 |
| 감히 바다를 볼 때마다 그를 닮고 싶다고 소망해 봅니다. 매일매일 바라보던 바다, 단 하루라도 바다를 보지 못하면 미칠 것 같이 그리울 줄 알았는데 바다를 아주 오랫동안 보지 못하고도 그냥저냥 살아지더군요.
바다를 바라보지 못한 시간만큼 좁아진 마음, 바다를 바라보지 못한 시간만큼 얕아진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다보니 풍성하게 나누면서도 모자라지 않게 살아가던 삶 대신 혼자만을 위해서 살아가면서도 허덕이는 삶을 살아갑니다.
아주 오랜만에 그냥 바다가 아니라 내가 서고 싶었던 제주바다에 섰습니다. 새벽바다, 그 곳은 이슬 맺힌 풀잎을 보는 듯 신선합니다. 바다의 맛을 폐부 깊이 새기고 싶어 숨을 깊게 들이마시는 그 순간, 그동안 내 안에 들었던 찌끼들이 나와 저 바다로 흩어져 순화되는 것만 같습니다.
남제주군 모슬포항, 아직 이른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만선의 꿈을 안고 출항하는 배가 있었습니다. 우렁찬 엔진소리, 마치 청년의 힘찬 숨소리를 듣는 듯 했습니다. 힘차다는 것, 그것은 참 좋은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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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선의 꿈을 안고 먼 바다로 나아가는 길, 아직 파도는 일어나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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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김민수 |
| 한참을 바라보았습니다. 갑판 위에 서있는 생면부지의 어부, 그와 내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만 같습니다. 그가 먼 바다로 나가 잡아오는 것이 어느 날 내가 대하는 식탁에 올라올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실상 우리는 매일매일 그런 기적을 체험하면서 살아가는 것이지요. 알지 못하는 그 누군가의 손길의 도움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내가 입은 옷부터 지하철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잡아든 일간지 한 장에도 그 누군가의 땀방울이 들어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내가 한 일이 또 내가 알지 못하는 그 누군가에게 그렇게 다가가는 것이겠지요. 그러니 선하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온전하게 선하지 못할지라도 그저 낙제점은 아닐 정도로, 약점은 있지만 사람이라면 저 정도의 약점은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지 하는 정도, 밉상스럽지 않을 만큼, 밉지 않을 만큼의 악함은 가지고 살아가서 조금은 얄밉게 느껴질 수 있는 그런 정도의 사람이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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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수면과 가장 가까이 날아다니는 새, 비록 작아도 먼 바다를 품고 있는 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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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김민수 |
| 간혹 떼지어 바다의 수면에 닿을듯 말듯 하면서 무리지어 날아다니는 새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날 새벽에는 홀로 새벽을 열어가고 있었습니다.
홀로 있어도 그저 저렇게 자연스럽고, 그 작은 새가 마치 큰 바다를 다 품고 있는 듯 보이는데 과연 나의 모습은 어떤지 돌아봅니다.
사랑해야 한다고 말로는 하면서도 나의 욕심을 따라 살아가기에 바쁘고, 용서할 줄도 모르고, 내가 선택한 길이면서도 힘들고 어려울 때는 신을 원망하고, 기도하는 것도 늘 내 욕심을 채우는데 급급합니다. 그러면서도 나는 남들보다 선하다고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사실 새보다 나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북경반점'이라는 낙서였습니다. 밉상스럽지 않고, 자장면 한 그릇이라도 더 팔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들어있는 듯 하여 마치 혈서를 보는 듯 했습니다.
새벽바다는 볼거리가 참으로 많습니다. 밤바다는 밤배가 내뿜는 불빛에 아주 조금만 자신을 내어놓습니다. 그러다 어둠이 물러갈 기운이 보이기 시작하면 자신을 선명하게 드러내기 위해 막 일어나려는 파도를 잠재웁니다. 밤 사이 품었던 것들을 다 보여주기 전에 파도야 일어나지 말아라 호통을 치는 듯 합니다.
그래서 새벽바다는 아주 잔잔한 순간이 있습니다. 그 잔잔한 시간이 길지 않아도 그 순간의 고요함과 새벽바다만의 색깔에 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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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배가 돌아온다. 고향으로 돌아오는 배처럼 피곤해도 환하게 항으로 돌아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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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김민수 |
| 분주한 항구, 오가는 배들마다 희망의 단편들이 가득한 것 같습니다. 그 희망으로 인해 먼 바다로 나가는 배도, 먼 바다에서 돌아오는 배도 바닷길을 만들며 긴 여운을 남깁니다.
마중물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메마른 펌프에 마중물을 붓고는 힘차게 펌프질을 하면 끊임없이 맑은 물이 콸콸 쏟아지던 우물가, 마지막 사람은 누가 되었든지간에 마중물 한 바가지를 받아놓았습니다. 그것은 배려요, 동시에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했습니다.
분주하게 항구를 드나드는 배들을 보면서 우리가 사는 세상의 마중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마중물 같은 사람들이 있어서 이 세상은 살만한 것이겠지요. 그러나 마중물만 있다고 물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 마중물과 어우러지는 사람이 있어야겠지요. 오늘 내가 만나는 그 사람, 그가 마중물이기도 하고 내가 마중물이기도 하고, 그가 펌프질을 하는 사람이기도 하고 내가 펌프질을 하기도 하는 사람인 세상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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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해가 떠오르자 파도도 일어나기 시작한다. 아침햇살에 바다는 황금빛으로 물들어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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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김민수 |
| 일출을 보지 못하는 줄 알았습니다. 오메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주 오랜만에 찾은 바다인데 잠시라도 황금빛을 보고는 가야 하지 않느냐며 잠시 바다를 물들입니다.
제주의 일출이 얼마나 붉고 아름다운지를 보았었기에 그 정도의 빛에 감동할 수 없습니다.
"진짜가 있는데 가짜로 속이려고요? 진짜를 보여주시죠? 아주 오랜만에 왔는데 서운하네요." "너 제주에 살 때 그랬잖니? 3박 4일 잠시 여행 왔다가 일출을 보면 4대가 덕을 쌓아야 한다고…. 넌 아직 멀었다."
햇살이 떠오른 후 모슬포항을 걸어 나오는 길, 새벽바다의 내음이 다시 한 번 바람을 타고 내 안 깊은 곳까지 들어옵니다. 아, 이런 느낌을 언제다시 느낄 수 있을까?
아주 오랜만에 새벽바다에 섰습니다. 매일보다는 서운하지만 오랜만에가 주는 맛도 참 좋습니다.
덧붙이는 글
기자소개 : 자연과 벗하여 살아가다 자연을 닮은 책 <달팽이는 느리고, 호박은 못생겼다?>, <내게로 다가온 꽃들 1, 2>, <희망 우체통>, <달팽이걸음으로 제주를 보다>등의 책을 썼으며 작은 것, 못생긴 것, 느린 것, 단순한 것, 낮은 것에 대한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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