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인간이 만들고 버린 도시 '앙코르 와트'

피나얀 2006. 11. 13. 22:36

 

출처-[오마이뉴스 2006-11-13 14:07]



▲ 시골 역사를 연상시키는 씨앰립 공항
ⓒ2006 제정길
소슬한 가을 바람결에 잠깐 가을 나들이를 해보았다. 그러나 Siem Reap(캄보디아의 4번째 큰 도시)의 신축한지 4개월도 채 안된 아담한 공항을 빠져 나오는 순간, 가을은 이미 그곳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아야 했다. 30도의 더위와 옷깃 속을 뱀처럼 파고드는 눅눅함. 그리고 느닷없이 쏟아 붓는 소낙비. 그래도 그것은 그곳의 가을일터….

▲ 호텔 창 너머로 떠오르는 장엄한 일출
ⓒ2006 제정길
중앙선도 신호등도(도시 전체에 3개뿐이라니) 없는 씨앰립 중앙 대로를 10여분 달리니 별 네 개 짜리 호텔이 나오고…. 새벽, 누군가 부르는 듯한 예감에 나도 모르게 눈을 뜨니, 열어둔 커텐 너머로 울려 퍼지는 여명이 관현악단의 연주처럼 찬란하고 웅장하게 나에게 손짓하고 있었다.

▲ 입구 정면에서 바라본 앙코르 와트의 전경
ⓒ2006 제정길
신의 도시(Angkor Wat : The Citty of the Gods)는 호텔에서 멀지 않았다. 20여분의 승차와 40불의 티켓만으로 사흘간의 알현이 가능했는데, 햇살 따가운 남국의 청명한 하늘 아래 400여 년간을 마법에 걸려 밀림 속에서 잠자던 '잠자는 숲 속의 공주'는 이제 잠을 깨어 잃어버린 시간의 몸단장을 하나씩 하고 있다.

▲ 얕은 호수에 비친 앙코르 와트: 5개의 탑이 다 보인다
ⓒ2006 제정길
400년이나 늦게 나타난 왕자들은 30도의 무더위 속에서도 그와의 알현을 고대하며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물위에 비치는 신전의 모습은 목욕하러 물가에 나온 천상의 여신처럼 아름답고 고요해 보인다. 1층 200m가 넘는 긴 회랑 벽면에 가득 찬 부조는 극락의 안락함과 지옥의 고통스러움을 사실적으로 대비시켜, 현세(現世)의 내방객에게 내세(來世)의 따끔함을 정신이 번쩍 들도록 깨우쳐 주고 있다.

▲ 지옥의 사자들이 온몸에 못을 밖는 형벌을 주고 있는 부조
ⓒ2006 제정길
3층 신의 거소로 오르는 돌계단은 70도의 경사로 가파르다. 계단 하나의 폭도 15cm이내로 좁아 누구라도 네발로 기어올라갈 수밖에 없는데, 신을 배알하기 위해서는 두 손 두발로 박박 기어야 한다니…. "거참 인간다운 생각일세 그려."

▲ 좁고 가파르게 만들어진 돌계단을 힘들여 오르는 내방객
ⓒ2006 제정길
신전의 3층. 900년이란 시간의 퇴적에도 끄떡없이 창틀은 아직도 성성한데, 멀리 내려다보이는 전정의 나무들은 또 얼마나 많은 조락의 세월을 거쳐 피었다가 져갔는지….

▲ 창 틈으로 내려다보이는 사원 내부와 전정, 그리고 입구
ⓒ2006 제정길
신의 도시(Angkor Wat)에서 주눅이 든 마음으로 뒷걸음치듯 1.5km쯤 물러 나오자 거대한 도시(Angkor Thom)의 성벽에 달린 남문이 염라대왕의 입처럼 벌리고 서서 나그네를 흡인한다.

▲ 앙코르 톰의 남문 입구
ⓒ2006 제정길
한참 때는 100만 명이 들락거렸다는, 12세기말 자야바르만(Jayavarman)7세가 세운, 사방 3km의 성곽으로 둘러싸인 '거대한 도시' Angkor Thom은 이제 폐허의 잔해 속에 나그네의 발길만 분주하고, 성의 중앙에 위치한 바욘 사원(Bayon Temple)은 오랜 세월의 조탁으로 피부는 쭈구러지고 얼굴에 검버섯이 가득한 늙어빠진 할미처럼 쇠락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전신을 드러낸다.

▲ 정면 출입구에서 바라본 Bayon Temple의 전경
ⓒ2006 제정길


덧붙이는 글
장삼이사(張三李四) 누구나 다녀오는 앙코르 와트를 그것도 4박5일의 짧은 일정으로 주마간산 격으로 보고 와서 무얼 안다고 주절주절 글을 쓸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그런데 톤레샵 호수에서 양은 대야를 타고 구걸을 하던 외팔이 소년의 잔상이 며칠이 지나도 뇌리에서 지워지지를 않아 결국 이 글을 쓰고 말았다.

그의 처참한 환경, 그러나 그 환경에도 불구하고 잃지 않았던 밝은 미소. 그는 나보다도 우리 모두 보다도 훨씬 더 자기의 생을 사랑하고 행복감을 느끼고 있는 듯이 보였다. (나는 그 아이가 아니므로 사실은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에게는 그렇게 보였다) 그것을 나는 누구에겐가 전달하고 싶었다. 왜 그런지 그렇게 해야 맘이 편할 것 같았다. 그냥.

삶은 개체의 수만큼 다양하고 개체의 수만큼 또 외로워 결국 여행이란 이 외로움을 확인해보는 과정의 하나일터….

앙코르 와트 여행기를 4회에 걸쳐 연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