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크라이스트처치, 뉴질랜드

피나얀 2006. 11. 17. 00:51

 

출처-[경향신문 2006-11-16 09:21]




 

한국에 가을이 짙어가고 있는 요즈음 이곳 남반구의 뉴질랜드에는 봄이 무르익어가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든 시티, 크라이스트처치는 봄이 아름다운 도시이다. 동백꽃과 수선화로 시작되는 봄의 서곡이 온갖 수목들의 겨울 잠을 깨우면 차례로 피고 지는 꽃들의 향기로운 합창은 이 도시의 맑은 공기를 가득 채운다.

 

헤글리 공원의 아름드리 나무들이 그 푸르름을 더해가고 그 아래 데이지들이 하얗게 필 때면 알에서 깨어난 새끼 오리들이 어미를 따라 세상 구경을 다닌다. 이렇게 크라이스트처치가 생명으로 가득 차면 숲 속의 새들도, 꽃밭의 벌들도 또 집집마다 정원을 가꾸는 손길들도 부지런해지고 분주해진다.

크라이스트처치는 뉴질랜드 남섬의 캔터베리 평야에 자리잡고 태평양에 면해 있다.

 

1850년 근처의 리틀톤 항구로 들어온 792명의 영국 이민자들에 의해 세워진 도시이다. 도시의 이름도, 랜드마크인 대성당도 옥스퍼드 대학의 칼리지 중 하나인 ‘크라이스트 처치’에서 빌려온 이곳은 ‘영국 밖에서 가장 영국적인 곳’으로 알려져 있다.

크라이스트처치의 심장부에 위치하는 48만평 넓이의 헤글리 공원은 시민들의 삶에도 그만큼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골프와 테니스, 럭비, 크리켓, 네트볼 등의 스포츠 시설을 갖추고 있고 음악회의 오픈 공연장이 되기도 하는 이 공원은 이곳 사람들의 레저와 스포츠의 중심지이다.

 

주말이면 연령대로 그룹 지어진 스포츠 클럽의 경기가 지역이나 학교 대항으로 열리고 아이를 따라 나온 부모들과 응원 나온 사람들은 푸른 잔디밭에 피크닉 판을 벌린다. 펼쳐놓은 모포에 엎드려 커피를 마시며 주말 신문을 읽고 있는 모습은 거실을 그대로 공원에 옮겨 놓은 것 같기도 하다.

헤글리 공원 안에서 가장 가꾸어진 곳은 시민들과 많은 여행자들의 산책로와 쉼터가 되는 보테닉 가든(Botanic Gardens)이다. 1863년 영국의 왕자와 덴마크 공주의 결혼을 기념하기 위해 영국산 참나무를 심은 것을 시작으로 지금은 뉴질랜드와 외국에서 들여온 수목들의 보금자리가 되었다.

 

120살 넘는 거대한 나무들이 시시각각 피어나는 꽃들과 넓게 펼쳐진 잔디밭을 뒤로 서 있는 그림 같은 풍경이나, 그곳을 가르면 흐르는 에이본 강에 오리가 날아와 내려 앉는 모습은 너무나 평화롭고 아름답다. 시민들이 산책나오며 싸가지고 온 빵 부스러기를 던져주면 몰려드는 오리들은 사람들과 얼마나 친숙한지 빈 손인 나에게도 자꾸 다가와 괜히 미안하게 만든다.

헤글리 공원을 벗어나면 관광객들이 많이 모이는 아트센터와 대성당이 있는 광장이 나온다. 아트센터는 고딕 건물이 근사한, 예전에 미술대학이 있었던 곳으로 아기자기하고 이국적인 건축물 때문인지 일본인들이 결혼식을 올리고 기념사진도 찍고 하는 모습이 종종 보인다. 앤틱 캐딜락을 대여해 정장을 차려 입은 백인 기사까지 사진에 등장시킨 그들은 지금은 깨어진 커플, 브래드 피트와 제니퍼 애니스톤처럼 퀸스타운으로 신혼여행을 간다고 한다.

크라이스트처치의 또 다른 모습은 시내에서 자동차로 15분이면 갈 수 있는 포트 힐에 올라 가면 발견할 수 있다. 화산 지대의 언덕 위에서 태평양 바다를 바로 내다 볼 수 있는 이곳은 등산이나 마운틴 바이크(mountain biking)를 즐기기에 최고의 장소이며 가끔씩 말을 타고 올라오는 사람들도 보인다.

 

구불구불한 산길 옆으로 늘어선 둥근 언덕들은 민둥산 풀밭이라 하늘과 만나는 선이 부드럽고 단조롭다. 하지만 언덕 아래 푸른 바다와 시간에 따라 바뀌는 색과 산 그림자, 이리 저리 뛰어다니는 토끼들. 그리고 양떼들까지. 그대로 절경이다. 게다가 세찬 바람이라도 몰아쳐 풀들이 춤을 추기 시작하면 이 절경은 거친 드라마를 연출한다.

크라이스트처치에는 아주 고약한 바람이 가끔 불어온다. 노어웨스터라 불리는 이 북서풍은 태즈만 해에서 따뜻하고 축축한 공기로 시작하여 서든 알프스 산맥에 부딪히면서 물기를 다 털어버리고 이 캔터베리 지역에 도착할 때면 건조하고 고온의 성난 바람이 되어 아주 세차게 들이친다.

 

이 북서풍이 불 때면 가정 폭력이나 자살의 수치가 높아지는 통계가 나와 있다고 하니 이 바람은 사람들의 심리와 정신 상태에도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 분명하다. 바람 때문에 목을 매거나 사람을 때리고 기물을 파괴하지는 않겠지만 그 건조한 바람이 사람을 불안정하게 하고 심사를 건드릴 수 있을 것 같기는 하다.

사회보장제도와 모든 것이 안정된 이곳의 사람들은 우리들처럼 강하고 질기지 못한 건 아닌지…. 역사상 외세의 침략도 천재지변도, 기아나 질병도, 대참사도 한번 겪지 않은 평화롭고 여유 있는 삶이 이 사람들을 바람에 흔들리게 만든 건 아닌지…. 9·11테러 이후 지구촌 사람들이 가장 안전한 곳으로 여기는 이 땅. 이곳이라고 왜 삶의 애환이 없으랴. 하지만 이 도시 사람들은 말한다. 우리는 정말 복이 많다고.

이 복많은 사람들은 오늘도 헤글리 공원의 에이본 강가를 달리고 740개나 된다는 공원에서 공놀이를 한다. 정원의 잔디를 깎고 꽃을 심고 잡초를 뽑고, 바비큐판에 소시지를 구워먹으며 이번 크리스마스 휴가를 어떻게 보낼 건지 얘기한다. 언뜻 듣기엔 사치스럽게 느껴질지 모른다. 하지만 이들의 삶은 소박하고, 이들의 꿈은 아주 작은 것일 수 있다.

 

단지 이제 이 지구상에 이런 삶이 보장된 곳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뿐이다. 남극이 가까워 유난히도 하늘이 맑고 푸른 크라이스트처치의 수정 같은 공기를 마시며 몸살을 앓고 있는 지구 위에 이 땅이 있음을 감사한다.

풀잎의 이슬이 아침햇살에 아지랑이로 피어오를 때 헤글리 공원의 잔디를 밟으며, 새털처럼 가벼워지는 마음으로 이 도시 사람들에게도 감사한다. 자연을 이처럼 잘 가꾸고 보존해준 것에 대해.

▲여행정보

성수기인 12월에서 2월까지는 인천에서 대한항공 직항이 운항된다. 그 외의 기간에는 오클랜드를 경유하여 국내선을 이용해야 한다. 시내 관광으로는 헤글리 공원 외에 아트센터나 대성당 광장의 마켓을 구경하거나 위자드의 연설을 듣는 여행자들 속에 섞여 보는 것도 재미있다.

 

가까운 쇼핑 몰이나 시내버스로 갈 수 있는 섬, 뉴브라이튼 바닷가 동네에 가서 도서관이나 카페에서 한적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추천할 만하다. 자전거를 대여하여 다니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

 

숙박은 5만원 정도면 싼 더블룸을 구할 수 있지만 성수기에는 방을 미리 구해야 한다. 유스호스텔도 잘 되어 있고 가족 단위로 다닌다면 방 두개 정도에 부엌이 딸려 있는 모텔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