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천수만 투어버스 타고 철새 탐조

피나얀 2006. 11. 17. 00:52

 

출처-[경향신문 2006-11-16 09:42] 



 

“논둑의 거뭇거뭇한 것들은 다 새라고 보시면 됩니다. 기러기나 오리죠. 아, 보기 드문 흰기러기도 한마리 왔답니다. 그놈 보면 ‘운 좋구나’ 생각하시고 로또 사셔도 됩니다.”

버스가 논 사잇길로 접어들었다. 마이크를 쥔 문종오씨(서산태안환경운동연합 천수만생태안내자모임 회원)의 목에 힘이 들어갔다. 오후 3시 정각에 출발한 천수만 철새투어버스는 앞으로 2시간 동안 간월호를 한바퀴 돌며 철새를 탐조한다.

 

버스투어는 철새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철새 보호를 위해 10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천수만 간척지엔 차량 출입이 통제된다. 철새축제 행사장에 마련된 전망대나 7.7㎞ 길이의 천수만 방조제에서 눈을 가늘게 뜨고 철새를 찾아보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2002년 시작된 것이 버스투어. 서산시에서 지원하고 환경단체 회원들이 해설자로 동행하는 민·관 협력 생태투어 프로그램이다.

천수만 철새는 지금이 절정이다. 10월 중순부터 찾아온 가창오리 무리는 이제 30만마리에 이르렀다. 바람이 좀더 차가워지면 따뜻한 해남 고천암호로 이동할 것이다. 천수만에서 겨울을 나는 기러기, 오리에 이어 두루미와 독수리도 속속 날아오고 있다.

 

버스를 기다리며 천수만 생태관에서 ‘예습’했다. 천수만의 새는 300여종 40만마리. 그중 겨울철새가 100여종이다. 1회 투어에서 많게는 30여종을 볼 수 있다. 15분쯤 달리자 제1탐조대. 버스에서 나눠준 쌍안경의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해설자 김은자씨가 60배율 망원경을 호수변에 세웠다.

“흰뺨검둥오리, 청둥오리, 혹부리오리 같은 오리류가 가장 많아요. 목부분에 갈색 줄무늬 있는 애 보이세요? 걔가 혹부리오리. 날아갈 때 보면 얼마나 예쁜데요.”

“머리에 빨간 혹 달린 애들? 아이고, 세 마리가 나란히 앉아있네. …저기 모래톱 끝에 서 있는 큰 애들은 뭐예요? 어쩜, 서 있는 폼이 예쁜 여자애들 요염하게 포즈 잡은 것 같아.”

올해로 마흔 살이라는 김명희씨의 입에서 소녀 같은 “어머어머”가 나오도록 한 것은 왜가리였다. 그 앞에 숫자 ‘2’자 모양으로 앉아있는 새들은 큰고니. 바로 백조다. 머리가 초록색인 청둥오리, 얼굴에 흰무늬가 있는 흰뺨검둥오리 틈에 잿빛의 ‘미운오리새끼’, 큰고니 새끼가 있다. 노란 부리 끝을 물 속에 담그고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도리도리 춤’을 추는 새는 노랑부리저어새. 잠깐, 멸종위기종 아니었나?

노랑부리저어새는 천연기념물 205호,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야생동식물 1급. 뒤로 보이는 큰고니도 천연기념물 201호에 멸종위기 2급이다. 100마리에서 최대 500마리까지 온다. 엊그제 60마리가 도착했다는 흑두루미(천연기념물 228호)와 겨울마다 4~6마리가 온다는 황새(천연기념물 199호)도 국제적 멸종위기종이다.

 

논에 지천으로 흩어져 있는 큰기러기도 멸종위기 2급. 환경부가 멸종위기종으로 지정한 조류 61종 중 49종이 천수만에 나타난다. 오죽하면 ‘천연’이나 ‘멸종’자가 붙지 않은 청둥오리나 흰뺨검둥오리는 ‘똥새’라고 부를 정도다. 저녁마다 ‘떼’를 지어 날아오르는 가창오리도 국제적 멸종위기종.

“여기서는 흔하지만 가창오리가 세계적인 희귀종이에요. 번식지인 시베리아에서는 며칠에 한마리 보기도 힘들다고요. 조류학자들이 여기 오시면 ‘기절’하시죠.”

러시아 바이칼호, 아무르강, 캄차카 반도에 서식하는 가창오리는 90% 이상이 우리나라에서 겨울을 난다. 전세계 가창오리 개체수는 12만마리로 알려져 있지만, 국내 집계로는 최대 70만마리다.

 

천수만, 금강하구, 해남 고천암호, 창원 주남저수지 등을 오간다. 특히 천수만은 간척지 논의 낱알이 풍부해 새들의 먹이가 많고, 은신처로 쓸 수 있는 갈대밭이 무성해 일찌감치 ‘천국’으로 자리잡았다.

새와의 공존을 위한 정책도 뒷받침됐다. 천수만철새기행전 맹정호 사무국장은 “환경부·서산시와 천수만 농가들이 2003년부터 생물다양성관리협약을 맺고, 철새 먹이를 남겨두는 농가에 대해 관에서 보상해주는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 익은 벼 추수하지 않기, 볏짚 남겨두기, 기러기 먹이가 되는 보리 재배하기 등이다. 새들을 놀래키지 않기 위해 버스도 지정 탐조대 3곳 외에는 정차할 수 없다. 탐조대는 볏짚을 3m 높이로 세워 가림막을 만들고 관찰용 구멍을 뚫어놓았다.

탐조대에서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소리다. 누가 새들을 ‘지저귄다’고 했나. 여기 새들은 꽥꽥, 끄어억, 끽끽대며 ‘짖는다’. 망원경에 눈을 갖다대면 그제서야 손톱만하던 새 한마리 한마리가 눈에 들어온다.

 

기러기는 조금도 쉬지 않고 파드득거리고, 큰고니는 패러글라이딩이라도 하듯 날개를 편 채 우아하게 물 위로 착지한다. 가창오리는 사뿐히 날아올라 무리를 이루었다가 공기와 물 속으로 흩어져 사라진다.

“저기, 저기 머리에 무스 바른 것처럼 뒤로 싹 넘긴 애, 갈색 머리 있지? 그게 황오리야. 아니, 비오리 뒤에 줄서서 걸어가는 애들.”

제법 이름을 익힌 이현주씨(45)가 친구의 옆구리를 찌르며 망원경을 넘긴다. 한시간 만에 ‘새’에서 ‘황오리’ ‘비오리’가 됐다.

“근데, 오리가 날아요? 나는 오리는 물에 떠있는 줄만 알았지.”

“아니, 시베리아에서 2주동안 조금도 쉬지 않고 날아온 애들에게 무슨 서운한 말씀을. 여기서 잘 먹고 잘 쉬어야 번식지까지 다시 날아갈 수 있어요. 천수만이 그래서 새들에게 중요한 곳이고요.”

간월호를 한바퀴 돈 버스는 출발지인 천수만철새기행전 행사장으로 향했다. 벌써 어스름이 깔렸다. 곧 가창오리의 군무가 시작될 시간이다. 기껏해야 내 팔뚝 길이만한 조그만 오리들이 해금처럼 낑낑대고 울며 시베리아에서 여기까지 날아왔다니.

 

오리야, 기러기야, 너는 바이칼호의 푸른 물도 보고, 시베리아의 자작나무도 보았니. 돌아가는 길엔 나도 닐스처럼 네 목에 달고 멀리멀리 데려가 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