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NAYARN™♡ 【이성(연애)】

`당당한 싸가지` 독립선언

피나얀 2006. 11. 18. 21:01

 

출처-2006년 11월 18일(토) 12:01 [헤럴드생생뉴스]



 

`싸가지녀`혹은`여성`이라는 이름의시대

"꼬라지하고는…" 당당한 그녀가 뜬다

전통적인 여성상, 이젠 안녕~

 

"꼬라지 하고는…"`환상의 커플` 한예슬이 경멸적으로 내뱉는다. 듣는 상대는 뼈에 사무치게 모욕적이다. 이 대책없는 `왕싸가지녀`는 어디서 왔을까. 안하무인, 오만방자, 유아독존, 개념상실, 예의상실 캐릭터. 거액의 유산을 상속받은 이 젊은 여성은 돈에 집착하며 주변 사람들을 하인 대하듯 부리고 생각나는 대로 말하며 하고 싶은대로 행동한다.

몇 년 전 한 연예인이 팬들을 `평민`이라고 불러서 혼이 난 적이 있다. `환상의 커플`의 조안나는 그보다 한 술 더 뜨지만 드라마 방영이 시작된 이후 시청자들에게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여성팬들 뿐 아니라 열혈 남성팬들도 안방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시청자 서남용씨(33ㆍ만화가)는 "극중 안나는 속된 말로 `재수없고 싸가지 없는 악녀` 유형이다. 하지만 누구나 한번쯤 품어봤음직하지만 남의 시선이 두려워 꺼내지 못했던 마음을 솔직하고 직설적으로 드러낸다"며 "한예슬의 호연과 더불어 이 캐릭터가 인기를 누리는 이유"라고 말했다.

이른바 `싸가지녀`가 시대를 반영하는 새로운 여성상으로 떠올랐다. `환상의 커플`은 우리 드라마에서 일찍이 없었던 새로운 캐릭터를 보여주며 예의 `폐인`층을 형성했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영화의 이미지를 소비하는 국내팬들의 방식에서 싸가지녀에 대한 높은 호감도가 드러난다.

 

극은 지방 출신의 촌스런 여성이 뉴욕으로 가서 일약 미국 최고의 패션잡지에서 촉망받는 신입사원이 됐다가 결국 소박한 일상과 가난한 옛 연인에게로 돌아간다는 결말로 흐르지만 여성관객들의 공감을 산 것은 `사필귀정`의 엔딩이 아니다.

 

프라다에서 캘빈 클라인, 마놀로 블라닉, 지미추 등 화려한 명품브랜드를 향한 욕구와 악마같은 직장 상사 밑에 있는 신입사원의 심리를 담은 뛰어난 리얼리티였다.

▲`싸가지녀`VS `된장녀`

바바라 크루거는 여성의 몸을 둘러싼 현대사회의 담론과 시선의 투쟁을 `당신의 몸은 전쟁터`(Your body is battlefield)라는 한 문장으로 표현했다. 이를 빗대 말하자면 영화 드라마 등 우리 대중문화에서 여성 캐릭터야말로 성차(性差)를 둘러싸고 지난한 담론 투쟁이 벌어지는 장(場)이다. 여성의 욕망을 자신의 지배 하에 두려는 남성적 시선과 이로부터 벗어나려는 여성적 시선과의 갈등을 반영하는 하나의 전쟁터인 셈이다.

`싸가지녀`는 전통적인 여성상과 결별한다. 순종적이지 않다. 가난하지도 소박하지도 않다. `싸가지녀`는 태어날 때부터 뼛 속까지 부자이며 뭐든 `자기 맘대로`다. 이기적이다. 겸양과 절제, 배려 따위의 미덕은 가진 적도 없었고 가질 생각도 없다.

 

여성들이 한번쯤 품었음직한 로망이다. 남성들은 이러한 여성상을 가리켜 `된장녀`라고 단죄했다. 일부에서는 `된장녀`라는 악의에 찬 호명 뒤에는 남과 다른 취향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와 여성들의 욕망을 충족시켜줄 수 없는 남성들의 좌절감이 반영됐다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싸가지녀`는 남성적 시선으로부터 이탈한 여성의 욕망을 여성 스스로 긍정하고 주체화한 결과이다. 여성비하적 담론에 대한 일종의 응전이자 `전복`인 셈이다.

남성들은 여성들의 구원자는 마땅히 자기들이라고 믿어왔다. `신데렐라` `콩쥐` 혹은 `캔디`의 판타지다. "무릇 여성들은 착하고 예쁘며 순종적이고 일을 잘해야 하나니 곧 `백마탄 왕자`의 응답을 받으리라"는 메시지가 남자들이 유포한 메시지였다.

 

신데렐라의 언니들은 이름이 잊혀졌고 `팥쥐`는 비난받았으며 `이라이자`는 악녀의 대명사가 됐다. 남자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던 가장 큰 문제는 어쩌면 이들에게는 남자들이 필요없거나 남자들이 들어설 자리가 크지 않다는 사실인지도 모른다. `싸가지녀`는 신데렐라와 콩쥐, 캔디를 대신한 모든 팥쥐들과 이라이자들의 다른 이름이다.

▲삼순이에서 싸가지녀까지

`내 이름은 김삼순`의 삼순이는 어린 시절부터 순결지상주의를 강요받았던 30대 이상 보통 여성들이 자신의 꿈과 욕망을 발견해나가는 과정을 담아내며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환상의 커플`의 안나는 이보다 한 발 더 나아간다.

 

부와 권력, 명예를 향한 모든 사람의 욕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비호감`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보여준다. `여성의 욕망을 부끄럼없이 말하자`는 모토는 삼순이의 복제와 변형인 `여우야 뭐하니`의 병희(고현정 분)라는 인물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반면 전통적인 남성 중심 담론의 `반격`도 만만치 않다. 다분히 퇴보적인 여성상을 대중문화에 구축하려는 노력들도 드라마와 영화에서 나타난다. `애정결핍이 두 남자에게 미치는 영향`에서 카메라는 사춘기의 남학생같이 포커스를 온통 여주인공(이혜영 분)의 반쯤 노출된 가슴에 맞춘다.

 

홀아버지와 아들이 한 여성의 몸과 마음을 얻기 위해 티격태격한다는 설정의 도발성은 야수처럼 공격하는 남성과 이를 줏대없이 받아들이기만 하는 수동적인 여성상에서 한 발 뒤로 물러난다. 영화 내내 여성의 몸은 `정복해야 될 고지`로만 묘사된다. `누가 그녀와 잤을까`라는 질문은 그녀를 갖고 싶은 남성의 (다소 치사해보이는) 관심사이지 여성의 궁금사항은 아니다.

 

이와는 달리 `전통적인 모성`으로 회귀하는 시도들도 잇따르고 있는데 `열혈남아`와 `해바라기`는 조폭으로 살아왔던 거친 생을 어머니의 이름으로 반성한다.

한국여성개발원은 최근 주방 아줌마, 처녀작, 미망인, 스포츠맨, 윤락녀, 된장녀 등 미디어에서 자주 쓰는 몇 가지 단어에 대해 성차별적인 의미를 내포했다며 사용을 자제하고 다른 단어로 바꿀 것을 권고했다. 그만큼 말과 상징 속에는 남성과 여성의 성차를 둘러싼 담론의 시대적 변화상을 반영한다.

여하튼, 어제까지 `된장녀, 싫어!`라고 외쳤던 남자들, 이제 이렇게 외쳐야 할지도 모르겠다. `싸가지지만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