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NAYARN™♡ 【이성(연애)】

평범한 연애지만 괜찮아

피나얀 2006. 11. 20. 18:57

 

출처-[매거진t 2006-11-20 08:00]



아름다운 노부부의 로망

"인생에서 남는 건 결국 친구 뿐이야" <섹스 앤 더 시티>의 조언

몇 년 전 방영됐던 <섹스 앤 더 시티>에서 네 명의 친구들이 함께 아틀랜틱 시티의 카지노로 놀러 가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그 당시 사만다를 제외한 나머지 세 명에겐 애인이 없었고, 캐리는 연애에 신물을 내고 있었다. “이 버스에 타고 있는 사람들을 잘 봐.

 

인생에서 결국 남는 건 친구뿐이야.” 이렇게 말했던 캐리 앞에, 무슨 계시라도 되는 것처럼 한 쌍의 노부부가 나타난다. 석양을 바라보며 다정한 대화를 주고받는 그들의 모습은, 캐리의 마음에 이상한 흔들림을 남긴다.

 

카지노로 몰려드는 사람들이 한 번의 잭팟을 꿈꾸듯이, 연애에 뛰어드는 많은 사람들의 로망은, 함께 늙어가는 아름다운 노부부의 모습일 것이다. 흔치 않은 이 아름다움은 사람들에게 이런 희망을 안겨준다. “어쩌면 도박을 해볼 가치가 있는 건지도 몰라.”

 

텔레비전에서 ‘아름다운 노부부 로망’을 다시 발견한 것은 일주일 전이었다. KBS2TV에서 방영중인 병원드라마 <그레이 아나토미> 2시즌이다. 병원드라마에는 로맨스가 빠지지 않는 법, 주인공인 메레디스에게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상대는 능력도 있고 다정하고 섹시함까지 철철 넘치지만, 유부남이라는 치명적 결함이 있다.

 

하지만 도박판에 한 번 뛰어든 이상 낙장불입이라. 한 번 준 마음을 재깍 거둘 수도 없고, 그녀로서는 그의 결정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아무리 좋다는 연애라도, 이런 상황이라면 전혀 고맙지가 않은 일이다.

<그레이 아나토미>에서 메레디스의 사랑은 완벽하지도 행복하지도 않다

그런 그녀 앞에 문제의 노부부가 나타난다. 아내에게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지지만, 이 노부부는 병원에서 수술을 받는 대신 그들의 꿈이었던 베니스 여행을 선택한다. 곤돌라를 타고 탄식의 다리 밑을 지나가면 영원히 함께 한다는 전설이 있다나 뭐라나.

 

연애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저렇게 늙고 싶다’고 생각할 만큼 아름다운 커플이었다. 하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메레디스의 표정은 복잡하기만 하다. 그녀는 이미 사랑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사랑은 완벽하지도, 행복하지도 않다. 남에게 자랑할 수 있는 사랑도 아니다.

 

영원한 사랑을 운운하며 황혼의 여행을 한다는 것은, 그들에게 결코 일어나지 않을 일처럼 보인다. 그녀가 느꼈을 감정은 열등감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이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더 슬픈 감정이다.

우리의 사랑은 평범하지만 위대하다

모든 연애는 아름다운 노년을 꿈꾼다 (photo by Andy Stuardo L)

누구에게나 순진한 시절이 있다. 사랑만 있으면 모든 게 완벽해질 거라고 믿었던 그 시절엔, 누구나 위대한 사랑을 꿈꿀 자격이 있었다. 로또만큼 희박한 확률이지만, 추첨일이 닥쳐오기 전까진 누구나 행운을 꿈꿀 수 있는 거니까.

 

하지만 두근거리는 기다림의 시절이 가고 마침내 사랑이 시작됐을 때, 사람들은 자신이 손에 넣은 것이 1등짜리 복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럼 그게 1등일 줄 알았어?” 민망하지만 그래, 그랬다. 그 사람이 나의 이상형이길 바랐고, 두 사람의 취향이 비슷하기를 바랐다.

 

약속을 하면 꼭 지키고, 필요할 때는 곁에 있어주고, 사랑을 한다는 사실이 나를 위로해주기를 바랐다. 대단한 걸 바란 것도 아닌데, 때때로 사랑은 사람들을 실망시킨다. 어떤 사람들은 상대방보다 내가 더 사랑한다는 사실 때문에 괴로워하고, 다른 사람들은 그 반대라서 괴로워한다.

 

많은 사람들이 상대방의 사소한 결점을 끝끝내 받아들이지 못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그런 이유로 헤어짐에 대해 고민한다. 죽어서도 영원히 함께, 라는 확신은 없고, 이 사람이랑 결혼해도 후회하지 않을까, 라는 의심이 좀처럼 마음을 떠나지 않는다.

 

그렇다. 우리의 사랑은 우리를 닮아서, 조금도 위대하지 않다. 실망스러울 정도로 평범하기만 하다.

 

그런데 세상에는, 다른 사람의 기를 죽이는 그런 타입의 사랑이 존재한다. 베니스로 가는 노부부 같은 사람들이 바로 그런 타입이다. 그런 사랑을 목격할 때마다, 우리의 평범한 사랑은 초라해진다. 어떤 사람들은 삶과 죽음을 뛰어넘는 사랑을 하고 있는데, 지금 나는 ‘그 사람이 정말로 나를 사랑할까? 그녀를 버리고 나를 선택해줄까?’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진짜로 우울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는 사랑은 다 그런 식이다.

 

30퍼센트의 로맨스와 40퍼센트의 믿음, 거기에 10퍼센트 정도의 고민과 의심, 그리고 약간의 희극이 뒤섞여있는 보통의 연애. 다만 우리는, 이 위태위태한 사랑이 무너지지 않도록, 남에게 웃음거리가 되지 않도록, 조금씩 조심하면서 자신의 사랑을 지켜가고 있는 것이다. 그 조심스러움을 생각하면, 왠지 마음이 뭉클해질 때가 있다. 그런 게 평범함의 위대함이라는 걸까?

곤돌라 따위 못 타면 어때, 평범한 연애라면 또 어때!

그래. 완벽한 사랑을 하는 사람들은 자기네끼리 잘 살라고 하면 될 일이다. 솔직히 말하면, 베니스로 간 그 노부부, 곤돌라 위에서 살짝 다퉜으면 좋겠다. 내가 못된 년이어서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장면을 상상하면 마음이 조금 편안해진다. 그리고 전화벨이 울린다. 오늘 하루종일 뭐했는지 궁금했던 사람의 이름이 뜬다. 곤돌라 따위 못 타면 어때. 평범한 연애지만 괜찮아. 끄덕 끄덕 끄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