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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2006년 11월 24일(금) 9:50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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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암호, 나룻배를 타는 모습이 반갑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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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강기희 |
| 춘천으로 간다. 원창 고개에서 바라본 춘천은 안개로 덮여 있다. 오래 전 춘천에 올 때면 꼭 원창고개에서 멀미를 했다. 급커브를 돌아가는 버스를 감당하기엔 내 몸이 너무 촌스러웠다. 그런 멀미는 20대까지 이어졌다. 지금의 원창고개는 평탄해 부담이 없다.
춘천과의 인연은 고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친구 몇이서 춘천에 있는 친구집으로 놀러갔다. 혹한의 추위가 친구보다 먼저 마중을 나왔다. 게다가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친구집은 보일러가 터져 수리 중이었다.
친구는 중심가에 있는 여인숙을 잡아주었다. 여인숙에서 친구집까지는 걸어서 한 시간이나 걸렸다. 한 끼 식사를 하기 위해 한 시간이나 걸었다. 언제 밥을 또 먹을 수 있을지 몰라 배가 터지도록 먹었다. 그리곤 한 시간을 걸어 여인숙으로 왔다. 그렇게 아낀 버스비는 소주 한 병 값도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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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심 때가 지났는데도 안개가 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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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강기희 |
| 아침에 일어나면 안개가 여인숙까지 밀려들었다. 밖으로 나가니 가로수에 상고대가 하얗게 피었다. 탄성이 절로 나왔다. 아침 풍경을 더욱 즐기기 위해 공지천으로 갔다. 어디가 길이고 어디가 호수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안개는 옆에서 걷고 있는 친구마저 삼켜버렸다.
의암호 주변을 걷고 또 걸었다. 점심때가 되어도 배가 고프지 않았다. 안개는 여전했고 친구는 음성으로만 곁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때부터 춘천은 내게 특별한 곳이 되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춘천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을 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근원에서부터 끓어오르는 갈증은 안개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한 안개를 찾아 공지천으로 간다. 공지천은 예전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도로는 넓어졌으며 나룻배를 타던 호수는 매립이 되었다. 매립된 곳에는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잘 가꿔진 산책로에서 작가 이외수를 만났다.
예술적 향기가 물씬 풍기는 '황금비늘의 거리'를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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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금비늘 거리에 전시된 작가 이외수의 작품세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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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강기희 |
| 낙엽이 깔린 산책로엔 춘천에 거주했던 작가 이외수의 장편소설 <황금비늘>을 모티브로 하여 '황금비늘의 거리'가 만들어져 있다. 거리에는 그의 작품에 대한 설명과 그림이 전시되어 있다. 예술적 향기가 물씬 풍겨진 탓에 매립에 대한 아쉬움이 사그라진다.
작가 이외수는 지난해 화천으로 거처를 옮겼지만 그의 작품은 언제나 춘천에서 시작된다. 그의 대표작인 <꿈꾸는 식물>도 장미촌을 무대로 펼쳐진다.
데이트 코스였던 어린이회관으로 걸음을 옮긴다. 평일이라 그런지 길은 한적하다. 낙엽이 부서진 길은 잊혀졌던 옛 추억을 되살리기에 좋다. 건물 사이로 중도로 가는 배가 미끄러진다. 춘천에는 댐이 많다. 댐은 호수와 안개를 만들었으며 몇 개의 섬도 호수에 띄웠다. 중도와 고슴도치섬, 붕어섬이 그렇게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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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페 이디오피아, 이곳에서 차 한잔 안했던 청춘이 있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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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강기희 |
| 안개와 함께 춘천 시내로 간다. 플라타너스 잎이 툭툭 떨어지는 중앙로는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 낯익은 간판이 보인다. 반갑다. 몇몇 건물도 예전 그대로다. 중앙시장으로 가본다. 친구 고모가 장사하던 곳엔 이불가게가 들어섰다. 당시 친구 고모는 춘천의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오는 것들을 팔았다. 죄다 영어로 되어 있는 물건들은 보기만 해도 버터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중앙극장을 찾아본다.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길가는 아주머니에게 물어본다. 극장이 사라진 지 꽤 되었다는 답이 돌아온다. 극장이 있던 자리를 주차장으로 쓴단다. 아주머니가 일러준 곳으로 가니 몇 대의 차가 주차되어 있다.
이럴 수가. 정신이 어뜩해지며 숨이 턱 막혔다. 동시 상영관이라는 매력보다 근대건물로 보존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던 건물이었다. 문화재적 가치가 있는 건물을 헐고 고작 주차장이라니. 이래도 되는 건가 싶다.
1982년 봄, 춘천 닭갈비집에서 만난 이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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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유명한 춘천닭갈비, 군침이 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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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강기희 |
| 지붕이 얹힌 중앙시장은 낯설기만 하다. 뒷골목으로 들어가 본다. 삼치구이 하나로 몇 시간을 죽치던 선술집은 흔적도 없다. 추억 하나가 또 사라진다.
춘천의 명동으로 가본다. 약속 장소로 자주 애용되던 서점은 옷가게로 변했다. 2006년의 명동은 죄다 새로운 것 투성이다. 그 많던 음악다방은 다 어디로 간 걸까. 목소리를 깔며 머리칼을 날리던 디제이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오계절과 돌체다방, 그리고 숱한 추억이 남아 있는 다방의 간판이 다 내려졌다. 작가 이외수가 지금의 부인은 처음 만난 '전원다방'도 없다. 당시 전원다방은 클래식음악만을 틀어주던 다방이었다. 가난한 소설가가 지내기에 전원다방만큼 좋은 곳도 없었을 것이다.
명동 뒷골목으로 걸음을 옮긴다. 일명 닭갈비 골목이다. 건물은 변했지만 닭갈비집은 여전하다. 단골로 찾던 닭갈비집이 그대로 있다. 실내로 들어가 본다. 연탄 냄새가 가득하던 실내는 현대식으로 바뀌었다. 연탄을 갈아가며 먹던 닭갈비가 새삼 그리워진다.
작가 이외수와의 첫 만남은 닭갈비집에서 이루어졌다. 1982년 봄이었다. 그는 현금 4천원이 없어 그날도 외상을 하고 있었다. 주인은 지난번 것도 안 갚았다며 돈을 내라했다. 그가 원고료를 받으면 주겠노라 몇 번이고 다짐했지만 주인여자는 손을 저을 뿐이었다.
그러한 실랑이는 내 등 뒤에서 있었다. 원고료라는 말에 돌아보니 작가 이외수가 일행과 함께 있었다. 그의 작품을 접했던 터라 계산은 내가 하겠노라 나섰다.
세월이 흘러 내가 소설가가 되었을 때 춘천에서 그를 만났다. 닭갈비집에서 있었던 일을 꺼내니 그가 "그랬던가?"하며 긴 머리를 쓸었다.
"그땐 엄청 가난했으니 외상술이 다반사지 뭐."
그림으로 그려진 영화배우 김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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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 백윤식씨의 표정이 코믹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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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장 간판, 김혜수씨 닮았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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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석 특선 프로 간판이 아직도 걸려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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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는 어떤 책에 이런 내용의 글을 썼다. 몇 끼를 굶은 상태에서 거리를 걷는데 친구를 만났다고 한다. 친구가 커피나 한잔 하자고 하여 다방으로 가 커피를 마셨단다. 밥 사달라는 말은 차마 못하고 쓴 커피로 속을 달래며 속으로 중얼거렸단다. 점심 먹었냐고 왜 안 물어보냐, 라고.
작가 이외수를 천형처럼 따라붙던 가난은 이제 후배인 내 몫이 되었다. 충분히 감수할 수 있는 가난이다. 아직 소설가나 시인이 굶어 죽었다는 뉴스를 본 적 없다. 그러니 최저생계비도 못 버는 주제지만 살아간다. "작가는 가난해야 글이 나온다며?"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별다른 대꾸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춘천 거리를 걷다 영화관 하나를 발견한다. 피카디리극장이다. 극장이 다 사라진 줄 알았는데 하나는 남아 있다. 극장 입구에 상영중인 영화의 간판이 걸려 있다. 그림이 재미있다. 그림으로 보는 영화배우 김혜수의 얼굴이 창백하다.
건물엔 두 개의 영화 간판이 걸려 있다. 공교롭게도 두 영화에 모두 영화배우 백윤식이 출연한다. 그런데 그림에 있는 얼굴은 다른 인물 같다. 백윤식씨가 본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해진다.
어둠이 깊어진다. 거리의 화려한 네온이 추억을 찾는 여행객에겐 낯설기 그지없다. 새로움이 덧칠되기 전 춘천을 떠나야 한다. 원창 고개를 넘으며 춘천을 내려다본다. 그리움 때문이라면 이제 춘천을 찾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안녕, 춘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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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천 어린이회관 야외무대, 예전엔 대학가요제 예선이 이곳에서 열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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