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한국경제 2006-11-27 11:43]
과거로 이어진 질긴 인연의 끈을 잘라 버리고,다가올 미래에도 마음을 텅 비워야 한다. 그리고 가슴 깊숙한 곳에 숨겨진 히피적 속성을 길어 올려 바람부는 대로 몸을 맡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견딜 수 없다.
봄날의 황사보다 더 지독한 먼지와 매연,차선도 신호등도 없는 길 위에 뒤엉킨 차량과 신경질적인 경적소리,다닥다닥 붙은 길 옆 상가의 작디 작은 상점과 그 너머로 어지러운 전깃줄, 땟국물 줄줄 흐르는 아이들이 시도때도 없이 내미는 손 뒤의 깊은 눈길… 규격화된 일상의 흔적이 남아 있다면 그 모든 것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다시는 돌아갈 곳도,부둥켜 안을 소중한 것도 하나 없는 허허로운 방랑자의 가슴과 눈이 아니라면 그 생경한 일상에 온전히 동화될 수 없는 일이다. 적어도 카트만두에서는 그렇다. 아니 카트만두는 방랑자의 마지막 남은 자의식조차 걷어내기를 강요한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파슈파티나트 사원
일요일 아침의 파슈파티나트 사원은 예의 그 혼돈 상황이다. 사원에 이르는 좁고 지저분한 내리막 골목은 힌두의 신을 경배하려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조차 없다. 사람들의 손에는 골목에 늘어선 노점에서 산 노랑꽃과 껍질을 벗기지 않은 곡물 그리고 때묻은 동전 몇 닢이 들려 있다. 그 공물을 시바신의 현신인 파슈파티나트에 바치고 현세와 내세의 복을 기원하며 머리를 조아린다.
사원길을 따르다 곡물을 뿌리며 고수레를 하고,힌두 수행자인 사두와 걸인들의 보자기에 찔러 넣기도 한다. 사원길 바닥은 흩뿌려진 곡물과 꽃잎으로 황금을 두텁게 입힌 듯 누렇게 빛난다. 사원 건물에 쌓인 세월의 더께도 그 빛에 녹아내리는 듯하다. 네팔 최대의 힌두사원으로,힌두교의 소 숭배가 비롯됐다는 파슈파티나트 사원은 힌두교인들의 화장터이기도 하다.
사원을 동서로 관통하는 파그마티 강 양 옆의 제단 한쪽에 화장을 위한 제단이 놓여 있다. 강을 건너는 짧은 다리 위쪽에서는 지체 높은 사람들이,아래쪽에서는 서민들이 영면의식을 치른다고 한다. 뿌리 깊은 카스트제도의 흔적이 생의 마지막 길에도 따라다니는 셈이다.
#세계 최대 티베트불탑인 보우더나트 탑
숨이 넘어간 즉시 화장을 해서인지 삼단으로 쌓인 굵은 장작 위에 눕혀진 시신은 마치 살아 숨쉬는 것 같다. 가족들의 영결의식이 끝나면 얼굴 위까지 한겹 천과 장작,짚이 쌓이고 어깨와 다리 허리께로 뜨거운 불이 들어간다. 하얗게 피어오르는 연기와 붉은 불꽃,그리고 사원 전체에 감도는 향내와 살이 타는 냄새가 뒤섞여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다 탄 재는 파그마티 강에 그대로 뿌려진다. 다른 한 쪽의 사람들은 그 물에 발을 씻고 손으로 물을 떠 공중에 뿌리며 무언가를 기원한다. 도대체 삶과 죽음의 경계가 어디고 또 무엇인지 가늠조차 할 수 없다.
땅(아랫쪽 4층 대좌), 물(반원형의 돔), 불(눈과 13층 첨탑), 바람(우산모양의 구조물), 하늘(꼭대기 첨탑) 등 탑의 단계별로 우주를 구성하는 다섯 가지 에너지를 상징한다고 한다. 아랫쪽 147개의 홈에 108개의 부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앞에 놓여진 '마니'는 '옴마니반메홈'을 되뇌이며 시계 방향으로 도는 순례자들의 손 끝에서 소리 없이 돌아간다.
# 살아있는 여신 쿠마리 사원
시내 외곽 언덕 위 스웸부나트 사원의 불탑도 보우더나트 불탑을 닮았다. 네팔에서 제일 오래된 이 사원은 오방색 '룽다'의 펄럭임이 가장 힘찬 사원이다. 석가모니 부처가 카필라성을 떠나 명상처를 찾다가 들른 곳이란 전설도 전해진다. 원래는 호수였다는 카트만두 시내 전경이 한눈에 잡힌다.
문수 보살이 티베트를 거쳐 인도로 돌아가던 중 호수 위에서 환히 빛나는 대일여래를 경배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가 괴물의 악행에 시달리던 주민을 구제하기 위해 칼을 내리쳐 한 산을 갈라버렸다. 그 뒤로 괴물과 함께 호수가 사라져 지금의 카트만두 분지가 남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원에는 시바신의 또 다른 현신인 남자 성기 모양의 '링가'가 있어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네들도 많이 찾는다고 한다.
관광객들의 사진기도 낚아채 달아나는 원숭이가 많아 원숭이 사원으로도 불린다. 파슈파티나트 사원, 보우더나트 불탑, 스웸부나트 사원처럼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올라 있는 옛 왕궁들은 네팔 왕조의 영화를 보여준다. 한 바퀴 도는 데 4개월이 걸린 거대한 호수였던 네팔분지는 명상의 중심이었다.
전설상의 명상인을 중심으로 작은 단위의 통치행위가 이루어졌고 고팔왕조∼키라트왕조∼리처비왕조∼멀러왕조에 이어 현재의 사하왕조가 들어섰다. 형제간 나눠 다스렸던 멀러왕조 때의 카트만두(버선타푸르), 파탄, 박타푸르에 옛 왕궁이 남아 있다. 경쟁하듯 지은 사원이 저마다 독특한 분위기를 내뿜는다.
늘 북적이는 광장과 골목골목의 비루한 생활상은 엇비슷하다. 카트만두 옛 왕궁은 현 사하왕조가 시작된 터이기도 하다. 쿠마리 사원이 눈에 띈다. 쿠마리는 인간의 모습을 한 힌두의 여신. 초경이 시작되기 전의 소녀 중에서 뽑아 초경을 할 때까지 실존의 신으로 경배받는다고 한다. 인드라자트라 등 굵직한 축제 때 시내를 순례한다고 한다.
한 그루의 거목으로 만들었다는 이 사원의 이름에서 카트만두란 도시 이름이 유래됐다고 한다. 박물관으로 이용되는 왕궁 입구는 붉은 망토를 두르고 있는 원숭이 신 하누만 상이 지키고 있다.
# 귀의자의 도시 박타푸르
파탄 왕궁도 비슷하다. 광장(더르바르)을 중심으로 왕궁과 사원이 마주보고 있다. 쿠마리 사원처럼 나무창의 장식이 아주 예쁘다. 광장 중앙에 비슈누 신상이 우뚝하고, 크리시나 사원을 비롯한 사원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왕궁 골목의 마하부다 사원은 1000구의 부처상이 새겨진 탑으로 유명하다.
처음에는 금을 입혔다는 황금사원도 볼 만하다. 박타푸르는 '귀의자의 도시'라고도 하는 옛 왕궁이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 '리틀 붓다'의 한 장면이 촬영됐을 정도로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가득한 곳이다.
나타폴 사원 앞의 신상 조각이 시선을 끈다. 아래쪽부터 전사, 코끼리, 사자, 그리핀, 여신 석상이 놓여 있다. 한 계단 올라갈 때마다 10배씩 힘이 세지는 상징물이라고 한다. 물레를 굴려 도기를 만드는 도기골목 등 얽히고 설킨 골목마다 사람들이 가득하다. 어둠이 내려앉은 광장은 장터로 변해 떠들썩해진다. 한켠에서는 고단했던 하루를 마감하며 몸을 낮추는 헐벗은 이들의 작은 향불이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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