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한국 사람들이 뭐가 어떻다고?

피나얀 2006. 12. 9. 21:18

 

출처-[오마이뉴스 2006-12-06 13:21]



태산 등정 다음날 옆 도시인 곡부(曲阜:취푸)로 향했습니다. 원래의 이날 일정은 대묘를 먼저 보고 오후에 곡부로 출발하는 것이었습니다.

호텔 체크아웃 후, 물품 보관소에 가방을 맡겨놓고(유료입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길을 나섰지요. 그런데 뭔가 분위기가 이상합니다. 호텔 바로 앞이 기차역이었는데, 역 광장은 출입이 통제되고 그 앞은 경찰이 에워싸고 있었습니다.

빨리 택시를 잡아타고 대묘로 가야겠다 싶었는데, 이제는 기차역 앞 큰 도로까지 전면 통제가 되었습니다. 기차역 반대쪽으로 가면 혹시 택시를 탈 수 있을까 하여 정말 한참을 걸었으나 그마저 불가능하여, 일정을 바꾸어 곡부를 먼저 갔다가 내일 돌아와 대묘를 보기로 하였습니다.

다시 호텔로 돌아와, "왜 벌써 짐을 찾아가느냐"는 의아한 눈길을 무릅쓰고 가방을 찾아 나왔는데…. 도로 통제가 풀렸습니다. 뭐 이런 황당한 경우가 다 있는지. 도로 통제뿐 아니라 이날은 이번 여행에서 최고로 우여곡절이 많았던 하루였지요. 어쨌거나 이미 가방을 찾아 나왔으므로 곡부로 향했습니다.

곡부는 매우 소박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 소박함 속에 시골 장날 같은 소란스러움도 있었습니다. 그 이유를 곧 깨달았습니다.

곡부는 공자의 고향으로서, 지금도 인구의 반은 공(孔)씨 성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아직도 이곳에 살고 있는 공자의 자손들은, 대개가 공자가 이룩해놓은 것들로 먹고삽니다. 한마디로 말해 곡부는 관광 사업 외에 다른 것들은 별로 발달하지 않은 작은 도시입니다. 그러니 소박할 수밖에 없고, 끊이지 않는 관광객들의 발길로 인해 소란스러울 수밖에 없지요.

공자로 먹고 사는 곡부

▲ 공자육예성 안의 공자와 제자 모형
ⓒ2006 윤영옥
첫 번째로 들른 곳은 '공자육예성(孔子六藝城)'이라는 곳입니다. 공자를 주제로 한 일종의 테마파크 같은 곳입니다. 미니어처나 밀랍인형으로 당시의 모습을 재현해놓았고, 약간의 전시도 있습니다. 하지만 절대적으로 비추입니다. 입장료도 터무니없이 비싸거니와 설비도 조악하기 그지없습니다.

저도 이곳에 가고 싶어서 간 게 아니었습니다. 데려다 달라고 말도 하지 않았는데 택시기사가 이 앞에 세우더니, 대신 표를 끊어다 줄 테니 돈을 달라고 다그칩니다. 워낙 주변이 혼잡스럽기도 했고 엉겁결에 당한 일이라 정신없이 그만 돈을 건네고 말았는데, 이런 곳이었던 겁니다. 이 택시기사! 나중에 크게 싸우고 맙니다. 잠시 후에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택시기사의 끊임없는 잔소리와 참견을 겨우겨우 참아내며 공자육예성을 보고 난 뒤, 공림(孔林)으로 가자고 했습니다. 문제없다며 큰소리를 뻥뻥 치는 이 택시기사, 이번에는 무슨 '공자연구소'라고 쓰여 있는 곳 앞에 차를 세웁니다. 어이가 없습니다. 저는 분명히 공림으로 가자고 했는데 말이죠.

이곳을 보고 싶지 않으니 공림으로 가자고 다시 한 번 말했더니, 택시기사의 인상이 갑자기 사나워지며 기분 나빠하는 기색을 역력히 드러냅니다. 공림은 나무만 가득하지 볼 것도 없는데 왜 공림에 가느냐고 합니다. 나는 그 나무라도 봐야겠으니 공림으로 가자고 했습니다.

▲ 무덤이라기보다는 공원 같은 공림. 여기저기 비석이 보입니다.
ⓒ2006 윤영옥
▲ 공자의 무덤입니다. 공자 무덤의 비석만 유일하게 노란색의 비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공림 내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이 몰려있는 곳입니다.
ⓒ2006 윤영옥
공림은 공씨 가문의 가족묘입니다. 이곳에는 공자의 묘는 물론, 그 후손들의 묘가 아주 많습니다. 우리나라의 공동묘지라 하면 왠지 으스스한 분위기가 연상되는데, 이곳은 매우 인공적으로 가꾸지 않은 자연스러움이 가득한 한적한 삼림욕장 같습니다. 곱게 피어난 들풀하며 아름드리나무들까지…. 아니, 볼 것 많구먼 그 택시기사는 왜 볼 게 없다는 거야.

 
▲ 공림
ⓒ2006 윤영옥
중국의 무덤에는 등급이 있습니다. 우리가 분(墳)이라고 부르는 무덤은 일반 백성의 무덤입니다. 왕후의 무덤은 총(塚)이라고 합니다. 황제의 무덤에만 능(陵)이라는 호칭을 붙일 수 있습니다. 황제보다 높은 사람은 없을 것 같지만, 황제의 무덤이 능보다 더 높은 등급의 무덤은 있습니다. 바로 성인의 무덤을 뜻하는 림(林)입니다.

중국에는 두 개의 림이 있는데, 하나는 하남성의 낙양(洛陽)에 있는 무장 관우의 무덤인 관림(關林)이고, 나머지 하나가 바로 이곳 공자의 무덤인 공림입니다.

무덤이라고는 하지만 우리나라의 무덤처럼 봉분이 있는 무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특별히 관리되고 있는 몇 개의 무덤 말고는 비석들로만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제멋대로 자라고 있는 풀들을 깎지 않고 내버려 두는 것도 특이하게 보입니다.

무덤을 관리하느라 쓸데없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공자의 뜻과 어긋나기 때문이라는데, 그 공자의 뜻을 이어받아 같은 유교문화권인 한국은 무덤에 들인 돈의 정도에 따라 효의 정도를 평가받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 줄 오솔길을 따라 이 안을 산책하고 싶었으나, 한 시간 안에 나오라며 인상 쓰던 택시기사의 눈치가 보여 서둘러 나왔습니다.

한국인 도움 받아 편안히 곡부를 느끼다

▲ 복잡하게 설계된 공부(孔府), 길 잃기 쉬우니 조심하세요.
ⓒ2006 윤영옥
그 다음 간 곳은 공부(孔府)입니다. 공부는 공자의 자손들이 살던 집이자 관공서 역할을 했던 곳이라고 합니다. 낡았지만 화려한 집들이 미로처럼 복잡하게 지어져 있는데, 이 안의 방만 해도 450여 칸이나 된다고 하네요. 공씨 가문의 권세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때문에 문화대혁명 당시, 공자의 후손들은 지주 계급이라 하여 많은 박해를 받았다고 합니다.

이쯤에서 다시 택시기사 얘기를 드릴까 합니다. 사건은 이렇습니다. 저희는 태산이 있는 도시인 태안에서 택시를 대절하여 곡부에 왔습니다. 곡부에서 하루를 머물 생각이었기에 곡부까지만 오는 걸로 150위안에 흥정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택시기사 말이 '곡부에는 하루를 머물 만큼 볼 것이 없다. 고작해야 3∼4시간이면 관광이 끝나는데 왜 하루를 더 머무느냐, 당신들이 관광하는 동안 나는 기다리고 있을 테니 저녁에 같이 태안으로 돌아오자'는 겁니다.

이 얘기를 정말 쉴 새 없이 나불나불 떠들어대는데, 그 말이 사실이라면 저녁에 돌아오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 50위안을 더 주고 저녁에 태안으로 돌아오는 것까지 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시간에 쫓겨 가며 여행하는 걸 싫어해서,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둘러보고 나올 때까지 재촉하지 않고 기다린다'는 조건을 재차 확인한 끝에 흥정을 한 것이었는데, 막상 곡부에 도착하자마자 이 택시기사의 태도가 확 바뀌었습니다.

저희는 원치도 않은 공자육예성 같은 애먼 곳에 데려가서 돈을 뜯어내질 않나, 이거 해라 저거 해라 계속 참견하는데다가, 어딜 들어가도 한 시간 안에 나오라며 반 협박(?)을 하질 않나…. 그리고 저희를 졸졸 따라다니며 큰 소리로 '이 사람들 한국 사람이다∼'는 왜 외치고 다니는지.

정말 참다못해 공부에서 결단을 내렸습니다. 그냥 우리가 좀 손해를 보더라도 200위안을 주고 택시기사만 태안으로 돌려보내고 우리는 곡부에서 하루를 머물기로요. 그 얘기를 기사에게 했더니, 이 사람 길길이 날뛰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겁니다. 내가 지금까지 너희들 따라다닌 시간이 몇 시간인데 그냥 가라고 하느냐며 돈을 더 달라고 합니다.

저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애초 돌아가는 것까지로 약속했던 200위안을 주겠다는데 왜 이러는 겁니까. 게다가 처음 흥정할 때는 관광 후 저녁까지 먹고 가기로 했었는데, 관광도 끝나기 전 먼저 돌아가라는 거면 오히려 시간도 더 줄어든 거 아닌가요? 택시기사는 버럭버럭 화를 내지, 말은 안 통하지… 정말 답답했습니다.

그때 옆에서 저희를 바라보시던 한 무리의 관광객 중 한 분이 '무슨 일이세요? 도와드릴까요?' 하십니다. 아∼ 한국분이셨던 겁니다. 어찌나 반갑고 감사하던지. 그분이 자초지종을 들으시고 택시기사와 몇 마디를 나누십니다. 택시기사는 여전히 화를 내며 그냥 200위안 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한국 사람들은…' 어쩌구 저쩌구 화를 냅니다.

아니, 지금 화를 낼 사람이 누군데 이 사람이 난리인지.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게다가 왜 한국 사람들을 들먹이는 거야! 여행하면서 이렇게 기분 나빠 보긴 처음입니다. 하지만 외국에서 한국 사람들을 만나 도움을 받기도 처음이었습니다.

감사의 표시로, 공부에서 산 '공자 가문에서 내려오는 비법으로 만든 캐러멜'을 그 아저씨의 아이들에게 주었습니다. 청도에 사신다는 인상 좋으신 그 아저씨께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 번 감사의 마음을 표합니다.

잠시 기분은 나빴지만, 이제야 편안히 곡부를 느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 낡은 문에서 세월이 느껴집니다.
ⓒ2006 윤영옥
ⓒ2006 윤영옥
▲ 이것이 공씨 가문에서 대대로 전해지는 비법으로 만든 캐러멜입니다.
ⓒ2006 윤영옥


덧붙이는 글
* 중국에서는 다들 아시다시피 간체를 사용합니다. 그러나 기사에서는 가독성을 위해 우리가 쓰고 있는 번체를 사용했습니다. 기사의 지명은 '우리말발음(한자:중국어발음)'의 형식으로 표기하였습니다.

* 이 글은 지난 4월 28일부터 5월 6일까지 제남, 태안, 곡부, 청도를 여행한 발자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