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100년 聖殿’강원도 횡성 풍수원성당

피나얀 2006. 12. 21. 23:59

 

출처-[경향신문 2006-12-21 09:48]




이 마을에 성당이 생긴 것은 그러니까, 100년도 더 된 옛날 일입니다. 강원 횡성군 서원면 유현리 풍수원. 경기도와 강원도의 경계입니다. 횡성에서도 고개를 두 개나 넘어야 나오는 첩첩산골이지요.

 

그래서 이곳엔 ‘천주쟁이’라는 이유로 쫓겨온 이들이 숨어 살았답니다. 200여년 전, 경기 용인의 천주교 신자 40여명이 박해를 피해 8일간 떠돌아다니다 세간을 부려놓은 곳이 바로 이곳입니다. 산자락에 불을 놓아 밭을 일구고, 옹기를 만들어 팔며 근근이 생계를 이었답니다.

 

종교를 갖는 것이 목숨을 빼앗을 이유가 되던 시대였습니다. 신유박해(1801년)에 이어 병인박해(1866년), 신미박해(1871년)가 계속됐고, 신앙을 위해 집과 밭을 버린 이들은 이 산골로 모여들었습니다. 1888년에야 프랑스인 르메르 신부가 처음 풍수원을 찾았습니다. 신부 한 명 없이 80여년간 남몰래 신앙을 지켜온 이들의 감격은 얼마나 컸을까요. 비록 자그마한 초가집이었지만 성당도 생겼습니다. 강원도 최초의 성당이었지요.

 

1896년엔 한국인 정규하 신부가 풍수원 성당 주임신부로 왔습니다. 김대건, 최양업에 이은 3번째 한국인 신부였습니다. 정신부는 초가집 대신 성화에서나 보던 번듯한 벽돌 성당을 짓기로 했습니다. 이런 궁벽한 산골에 양옥 건물이라니요, 상상도 할 수 없는 대사건이었습니다.

 

신자인 마을 사람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습니다. 직접 나무를 베어오고, 옹기 굽던 가마에서 벽돌을 구워 냈습니다. 여자들은 치마에 벽돌을 싸서 날랐습니다. 일손을 보태겠다고, 태백산맥 너머 강릉, 양양에서까지 신자들이 찾아왔습니다. 1905년 주춧돌을 놓은 성당 건물은 2년이 지난 1907년 11월 완공됐습니다.

 

서울 중림동 약현성당(1892년), 전북 완주 되재성당(현 고산성당·1896년), 명동성당(1898년)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4번째로 지어진 성당 건물이었습니다. 한국인 신부가 지은 최초의 성당이기도 합니다.

 

100년이 지났지만 성당은 아직도 옛모습 그대로입니다. 지붕이 낮은 양옥집들 뒤편 언덕 위에 성당은 가만히 솟아 있습니다. 지붕 뾰족한 4층 종탑이 정면에 세워져 있고, 직사각형 모양의 건물이 뒤로 이어져 있습니다.

 

한 뼘 크기의 붉은 벽돌을 층층이 쌓아올려 지었습니다. 창문 주변으로는 아치 모양으로 둥글게 벽돌을 돌려 장식도 했고요. 성당 입구엔 늙은 나무 3그루가 그림자를 드리우고, 그 아래 나무 벤치가 하나 놓여 있습니다. 그림엽서에나 나올 것 같은 성당 모습 그대로입니다.

 

‘신을 벗고 들어가세요’라는 안내문이 눈에 띕니다. 성당 내부는 마룻바닥입니다. 의자가 하나도 없습니다. 사람들은 한쪽 귀퉁이에 쌓여 있는 방석을 가져와 깔고 무릎을 꿇습니다. 상투를 튼 옛날 사람들도 이렇게 꿇어 앉아 미사를 드렸을 겁니다. 제단 뒤편 3개의 소박한 스테인드글라스에서는 부드러운 오후의 빛이 흘러 들어오고, 좌우의 벽엔 예수의 고난을 가리키는 14개의 부조 장식이 걸려 있습니다.

 

120평의 작은 성당은 그들에게 ‘궁궐’이었겠지요. 내일을 기약할 수 없던 그들은 여기서 얼마나 많은 용기와 위안을 얻어 갔을까요. 당시 풍수원 성당의 신자는 2,000여명에 이르렀습니다. 지금도 일요일마다 100여명이 찾아와 미사를 올립니다. 마을 사람 대부분이 천주교 신자입니다.


손에 꼽을 만큼 아름다운 성당으로 알려진 덕분에 찾아오는 발길도 끊이지 않습니다. 신부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드라마 ‘러브레터’도 여기서 촬영했습니다.

 

웨딩 사진을 찍는 신자들도 있습니다. 봄·가을엔 초기 교인들의 발자취를 좇아 오는 순례객이 많습니다. 성당을 둘러보고, 왼쪽 언덕에 조성된 ‘십자가의 길’을 다녀옵니다. 예수의 수난을 14개 장면으로 나눠 새긴 돌판이 세워져 있습니다. 판화가 이철수씨의 작품입니다. 길 끄트머리엔 성당 건물을 세운 정신부의 무덤이 있습니다. 사제 서품을 받은 뒤 1943년 선종할 때까지 평생을 이 성당에서 보냈습니다.

 

성당은 벌써 크리스마스 분위기입니다. 입구엔 별빛처럼 반짝이는 전구를 단 크리스마스 장식이 달려 있고, 아기 예수의 작은 구유는 솜으로 만든 눈으로 덮여 있습니다. 세상은 더욱 어지러워졌고, 마음을 찾는 사람은 줄어들었지만 크리스마스의 축복만은 100년 전이나 오늘이나 그 모습 그대로 이곳에 찾아올 겁니다. 그 축복을 받으러 올해는, 성당에 가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