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07-01-11 09:34]
살림집 지붕이며 나뭇가지에 닿을락말락 아슬아슬하게 기차가 지나간다. 아니, 아직까지 이런 곳이 남아있나. 전라북도 군산시 군산경찰서 뒤편으로 그렇게 곡예 운전을 해가면서 기차가 지나 다닌다. 이 기찻길의 이름은 ‘페이퍼코리아’선. 1944년 4월 4일 개통된 철길이다. 군산시 조촌동에 소재한 신문용지 제조업체 ‘페이퍼코리아’사의 생산품과 원료를 실어 나르기 위해 군산역과 페이퍼코리아 공장 사이에 놓인 철로의 총 연장 거리는 겨우 2.5㎞.
군산역장 김태호씨의 설명에 따르면 군산역을 출발, 제지회사로 들어가는 기차는 대개 오전 8시30분~9시30분 사이에 이 구간을 통과한다. 기차가 다시 돌아오는 시간은 오전 10시30분~낮 12시 사이. 사실 이것도 완벽하게 정확한 시간대는 아니다.
때론 이 시간대를 벗어나기도 한다. 어떤 날에는 1회 더 운행한다. 오전에 이어 오후 3시 전후 군산역을 출발했다가 오후 5시 무렵 되돌아 나오기도 한다. 아무튼 “하루 평균 1회는 왕복 운행한다”고 역장은 전한다.
길이가 짧은 철길이지만 기차의 몸집은 크다. 디젤 기관차가 5~10량의 컨테이너와 박스 차량을 연결해 끌고 다닌다. 이 구간을 지나는 화물열차의 규정 속도는 시속 25㎞ 이하. 그런데 그 속도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
차단기가 있는 곳과 없는 곳 모두를 합쳐 건널목이 11개나 되고 사람 사는 동네 한가운데를 지나야 하니 기껏 빨라야 시속 10㎞ 를 넘지 못한다. 처음 이 광경을 본 외지인들은 간이 콩알만해진다. 저러다가 기차가 집 사이에 끼어 버리는 건 아닌지.
그러나 주민들에게는 일상일 뿐이다. 빨래 널던 아주머니도, 머리 감던 아저씨도 기차의 빠앙~ 울리는 기적 소리에 이어 철로에 기차의 진동이 전해질 때면 집안으로 천천히 들어간다.
기차가 경암 사거리에서 원스톱 주유소까지 지나는 동안 기관차 맨 앞에 올라탄 역무원 3명은 무지 바쁘다. 호루라기 불고, 고함을 쳐가며 사람들의 접근을 막는다. 때로는 기차에서 내려 철길 위의 장애물도 치운다.
그러는 동안 철길 옆 주민들은 열렸던 대문도 닫고 강아지도 집으로 불러 들인다. 철로에 붙어 불법 주차된 차량이 가벼우면 역무원들이 들어올려 치워 버린다. 그게 힘들면 사방으로 차 주인을 찾는데, 끝내 차를 옮길 수 없어 기차가 아예 출발지로 되돌아간 적도 있다고 한다.
페이퍼코리아선 철길 따라 길게 늘어선 집에 사는 주민들은 기차가 지나다니지 않는 시간에는 철로에 고추나 나물을 말리기도 한다. 한 주민은 “기차 시간을 대충은 아니까 때가 되면 알아서 치운다”라며 “이 집에서 자식도 낳고 이렇게 옆집 마실 다니며 늙어가고 있는 것도 다 행복”이라고 웃었다.
경암동 공중화장실 옆 2층짜리 살림집에서는 임권택 감독이 영화 ‘천년학’ 중 상가 문상 장면을 촬영하기도 했다. 이 집에서 태어나 대학생이 된 유모씨는 “다섯 살 무렵 아버지가 보여준 사진에 우리 옆집으로 기차가 기울어지는 바람에 지붕이 부서진 광경이 담겨 있었다”라고 말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철길 양편에 집들이 죽 늘어서 있었으나 지금은 철길 북쪽에만 살림집들이 남았고 남쪽에는 창고나 가건물이 서 있다.
TIP. 기차 멋지게 찍기
기차가 지나가는 장면을 놓친 여행객들은 빈 철길, 강아지, 건널목, 살림집 장독이나 우물 등을 촬영하며 아쉬움을 달래기도 한다. 집과 집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지나는 기차는 그 자체만으로도 좋은 사진 소재. 하지만 기차만 너무 부각시키다 보면 조금은 심심한 사진이 될 수도 있다. 기차와 철로 변에 묶여 있는 강아지의 모습을 한 화면에 담는다든지, ‘기적’이란 글자가 적힌 푯말 또는 건널목 안내판 등을 활용해 동네 분위기를 보여준다면 보다 근사한 사진을 얻을 수 있다.
여행객들이 페이퍼코리아선을 촬영하려면 안전에 절대 주의해야 한다. 원칙적으로는 군산역(063-445-7782)에 사전 연락하고 허락을 받아야만 한다. 기차가 지나갈 때면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모여들고 기차 위에서 안전을 염려한 역무원들이 “사진 찍지 말라”고 성화다.
● 대중교통
서울~군산 간 고속버스 배차시간은 고속버스 예약서비스 홈페이지(www. easyticket.co.kr) 참조. 익산~군산 간 통근열차 하루 8회 왕복 운행.
● 자가운전
>> 먹을거리
‘추억의 풍경’을 건지러 군산까지 갔다면 군산역 앞 ‘할머니 해장국집’ (063-442-4777)에서 2000원짜리 시래기해장국을 먹고 와야 한다. ‘일하는 게 행복이라 식당을 운영한다’는 주인 할머니가 소박한 옛날 가격에 차려주는 상이라 그런지 더욱 정이 느껴진다.
>> 또 다른 군산 ‘해망동’
여행작가 한은희씨는 군산 시내에서 1960~70년대 분위기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동네로 해망동<사진>을 꼽는다. 부두 노동자들이 모여 살던 해망동은 군산 내항이 그 기능을 잃으며 함께 쇠락했다. 지난해 ‘아트 인 시티 2006’이라는 공공미술사업이 펼쳐지고 나서 기운을 잃었던 동네가 다소 활력을 되찾았고 바람개비며 벽화 등을 보려는 디카족들의 발길이 늘어났다. 내항사거리를 지난 다음 수산물종합센터를 지나자마자 첫번째 신호등에서 좌회전,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나면 앞에 보이는 언덕 위의 마을이 해망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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