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그 골목에 서면 시계도 더디게 간다

피나얀 2007. 1. 11. 19:35

 

출처-[조선일보 2007-01-11 09:17]




1960년대 풍경을 간직한 강화 교동도

 

“열세살 되던 해에 6·25 사변이 터져 온 가족이 배를 타고 교동도로 왔지. 대룡리 골목에 사람들이 나와 거적을 깔고 장사를 했는데 나와 아버지는 골목 모퉁이에서 닭을 팔았어. 건물이라고는 딱 두 채가 있었는데 이 정육점 건물이랑 저기 있는 ‘개소주집’이 그거야.

 

전쟁 끝나고 장사해서 돈 번 사람들이 하나 둘 상가 건물을 올리기 시작했는데, 1960년쯤 지금의 모양이 갖춰졌어. 그 뒤에는 간판만 계속 바뀌었지. 참, ‘박통’ 때 새마을운동 한다고 초가 지붕을 미처 뜯어내지도 않고 그 위에 슬레이트를 얹었어. 그래서 지붕 끝에는 아직도 저렇게 지푸라기가 삐죽 나와있다고.” (‘교동 정육점’ 사장 최덕권씨)


“전쟁 나고 황해도 사람들이 아주 많이 내려왔어. 지금은 대룡리 인구가 400명 정도 돼. 엄청 많지? 황해도 연백 평야를 건너다보고 싶은 실향민이나 망둥어 잡으려는 낚시꾼이 가끔 찾아오지. 인천 개발된다고 ‘꾼’들이 난리를 떨 때도 대룡리 사람들은 관심이 없었지.

 

뭔가 변하거나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별로 없어. 그냥 우리끼리 이렇게 사는 게 속 편해. 자, (화투) 패 돌려봐.”(1960~74년 교동면 대룡리 이장을 지낸 한기걸씨)

 

강화도 창후리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15분 걸려 닿은 교동도 ‘대룡 시장 거리’에서 만난 할아버지들이 마을 설명을 이어갔다.

 

강화도에는 참 볼 것 많고 놀 것도 많다. 그래서인지 굳이 교동도까지 배 타고 찾아가는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군(軍)에서 2000년까지 외부인 출입을 통제한 것이 대룡리의 ‘시계’를 더디게 했다. 그런데 그 덕에 때를 덜 탔고, 그만큼 옛 정취가 아직 골목 구석구석에 남아있다. 분명 2007년 사람들이 북적북적 생계를 꾸려가고 있는 터전인데, 수십 년 전 삶의 모습을 일부러 되살려 놓은 것 같다.

 


교동도 최대의 번화가인 대룡시장 골목은 500m 남짓. 빠른 걸음으로 냅다 걸으면 10분만에 끝에서 끝까지 종주 가능하다. 매끈한 새 간판 하나 없는 시장 골목에는 미장원이 제일 많다. 2만원짜리 ‘뽀글이 파마’가 전문이지만 커다랗게 ‘매직 파마’ ‘최신유행 섀기 커트’라고 써 붙인 곳도 서너 군데 있다. 장사가 될까 싶어 들여다보니, 미장원마다 머리를 말고 있는 아주머니 두세 명씩은 다 있다. 미장원이 교동도 아주머니들의 사랑방인 셈.

 

창문에 커다란 ‘미키 마우스’ 스티커를 붙여놓은 분식집, 허름해서 더 정이 가는 통닭집, 그리고 없는 것 빼고 다 파는 잡화점. 잡화점 진열대는 요란한 원색 잡동사니 천국이다. ‘몸뻬’ 바지, 빗자루, 때수건, 빨래 집게, 숟가락, 고무장갑, 줄자, 파마용 롤, 탁구채, ‘최신 입수 타파웨어’…. 사고 싶은 건 없다. 그런데 알록달록 한데 엉킨 모양이 사진 촬영용으론 귀엽다.


대룡시장 골목의 첫 인상은 ‘이게 뭐야, 별 것 없네’. 진짜 특별한 것, 유명한 것은 아무것도 없을지 모른다. 그런데 누추해 보이는 시장 거리를 걷다 보면 어린 시절 ‘골목의 추억’이 어느새 그림자처럼 달라붙는다.

 

팔목을 돌리는 ‘필살기’로 딱지를 휩쓸어가고, 물구나무서기도 서슴지 않으며 고무줄을 넘던 친구들은 어디서 무얼 할까. 추억에 잠겨 골목을 걷다가 손발이 시리면 ‘드르륵’ 소리를 내며 문을 열어야 하는, 작은 다방에 들어가 ‘계란 띄운 쌍화차’를 마셔도 좋다.(단, 쌍화차 가격은 5000원으로 도시 가격 못지 않다.)


시장 끝자락에는 ‘광무 10년(1906년)’ 문을 열어 지난해 개교 100년을 맞은 교동 초등학교가 있다. 전교생 100명. 운동장을 둘러보니 철봉과 칠이 바랜 시소가 정겹다. ‘반공소년 이승복’과 ‘효자 정재수’의 동상 옆에 충무공 이순신 장군상도 빠질 리 없다.

 

TIP. 대룡리에서 예쁜 사진 찍기

 

‘증명 사진’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 ‘시간여행’ 느낌을 최대한 살려 마치 30~40년 전 과거로 훌쩍 뛰어넘은 듯한 사진이 예쁘다. 골목길은 좁고 길다. 꼬불꼬불한 길의 모양새를 담으려면 최대한 멀리서 망원렌즈를 이용해 찍는다. 광각렌즈를 써서 배경을 살리는 것도 방법이다. 가게 중에는 ‘교동 이발관’이나 잡화를 산처럼 쌓아놓은 가게 등이 사진 배경으로 제격이다.


>> 교동도는

 

조선시대까지 ‘위험 인물’들의 유배지로 악명이 높았다. 전쟁 때는 황해도 연백군 주민들이 배를 타고 대거 피난을 왔다. 연백까지 거리가 5㎞밖에 되지 않아 맑은 날 화개산에 오르면 연백 쪽 평야를 볼 수 있다. 교동도에 모여든 많은 실향민들이 지금까지 섬을 뜨지 않고 통일을 고대하고 있다.


교동면사무소에 비치된 ‘교동 관광 안내서’는 달랑 한 장. 화려한 홍보전략이 빛나는 다른 지자체의 관광안내서와 달리 교동도 안내문은 수줍음 그 자체다. ‘교동은 아직 개발이 되지 않아 숙박이나 식당 등이 부족합니다. 그러나 자연 그대로의 풋풋함이 살아있는 교동의 매력에 흠뻑 빠져보시기 바랍니다’라는 식이다.

 

대룡리 골목 구경간 김에 우리나라 향교 가운데 가장 먼저 공자상을 중국으로부터 가져다 봉안한 ‘교동 향교’, 작은 절집 ‘화개사’, 그 아래 있는 교동 읍성과 연산군 유배지 등을 둘러 볼 만한다. 3일 이상 섬에서 묵으려면 해병대의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한다. 문의 강화군청문화관광과 (032)930-3624

 

>> 찾아가는 길

 

● 대중교통

 

서울~강화 직행버스가 신촌 시외버스터미널(02-324-0611)에서 오전 5시40분~오후 9시30분, 1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창후리 선착장까지는 ‘강화 군내 버스’를 이용한다.

● 자가운전

 

①올림픽대로 개화IC(48번 국도) → 김포 → 강화읍 → 창후리 선착장

 

②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김포IC(48번 국도) → 김포 → 강화읍 → 창후리 선착장

 

● 창후리 선착장(032-933-4268)~교동도를 오가는 배가 일출에서 일몰까지(동절기 오전 7시30분~오후 5시) 20~45분 간격으로 있다. 평소에는 15분 거리지만 썰물 때는 배가 돌아가기 때문에 약 50분이 걸린다. 썰물 시간과 겹치면 마지막 배 시간이 당겨지므로 교동도로 출발할 때 돌아오는 배편을 미리 확인하자.

 

차를 갖고 탈 수 있다. 가격은 차 1대(운전자 포함) 1만4000원, 성인 1인당 1500원. 교동도 월선포에 내린 후 큰길을 따라 4~5㎞ 정도 가다 오른쪽으로 교동중·고등학교와 교동 파출소를 지나면 차가 들어갈 수 없는 막다른 길이 나온다. 여기서부터가 대룡시장 골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