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오마이뉴스 2007-01-15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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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담하고 소박한 곡부 버스터미널은 느낌이 이 도시와 꼭 닮아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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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윤영옥 |
| 곡부에서 평화로운 밤과 편안한 아침을 맞고, 다시 태안으로 가기 위해 버스터미널을 찾았습니다. 아담하고 소박한 곡부 버스터미널은 느낌이 이 도시와 꼭 닮아있습니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으로 간사한 것인지라, 어제 택시기사 때문에 화가 날 때는 여기 온 것 자체가 후회가 되더니만 지금은 아침부터 쏟아지는 뜨거운 햇살마저도 좋아 보입니다.
'총알버스'를 타다
워낙 성수기에 움직이고 있어서 표가 있을까 걱정했는데, 다행스럽게도 터미널에 도착한 시간 바로 5분 후에 출발하는 표를 끊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시외버스와는 달리 조그만 봉고차가 시외버스입니다. 그 외관도 놀라웠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기사 아저씨의 운전 실력(?)이었습니다.
곡부에서 태안까지 정말 무시무시한 속도로 한 시간도 안 되어 주파한 것 같습니다. 넓고 시원하게 뻥 뚫린 고속도로에는 차도 별로 없는데, 이 기사 아저씨는 경적을 울리는 것이 습관인지 '쉬지 않고' 계속 빵빵거립니다.
아, 정말…. 이렇게 시끄러운 차는 평생 타 본 적도 없거니와 이렇게 빨리 달리는 버스 역시 처음입니다. 총알택시와 경주를 해도 손색이 없을 것입니다. 덕분에 예정보다 너무 일찍 도착하여 하루가 여유로웠으니 그 아저씨께 감사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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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높고 굳건한 성벽으로 둘러싸인 대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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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윤영옥 |
| 요기를 하고 대묘(岱廟)로 향했습니다. 대묘는 태산의 신에게 제사를 올리던 곳입니다. 높고 굳건한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역시나 규모에서 사람을 압도하네요. 하지만 이때쯤 되었을 때, 저는 심각한 고질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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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묘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올려다본 모습, 그 웅장함에 압도당하고 맙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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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윤영옥 |
| 어디서 무엇을 보든지, 다 비슷비슷해 보이는 병 말입니다. 청대의 건축이건 명대의 건축이건 설명을 읽고서야 '그렇구나' 할 뿐, 가슴을 두드리는 감흥이 없습니다. 그래도 태안의 대묘는 중국의 3대 건축물이라는데, 그 3대 건축이라는 게 뭘 기준으로 어떻게 선정되었는지를 알 수 없으니 그 위대함을 알 수가 없습니다.
건축이 돋보이는 곳에서는 건축에 조예가 있었으면 좋겠고, 미술 작품이 많은 곳에서는 미술에 지식이 많았으면 좋겠고, 역사적 유적에서는 역사에 관심이 많았으면 좋겠고, 풍경이 아름다운 곳에서는 사진을 잘 찍었으면 좋겠고…….
욕심은 끝도 없이 생겨납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에 능통할 수는 없으니, 내 욕심을 깨닫고 자신을 다독여야겠지요. 그래서 여행이란 단순히 많은 지역을 돌아다니는 게 아니라 내 내면을 깊이 찾아 들어가는 과정인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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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윤영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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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윤영옥 |
| 가슴에 '엉덩이 자국'을 깊이 새기다
건축에 관한 한 문외한인 저의 눈에 대묘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세월의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있는 '엉덩이 자국'이었습니다. 대묘의 많은 돌계단에는 많이 아이들이 모여 미끄럼을 타고 있고, 그간 얼마나 많은 엉덩이가 미끄러져 내려갔는지 엉덩이 자국이 깊게 패 있습니다.
그 자국이 너무도 깔끔하고 뚜렷해서, 저는 처음부터 원래 모양이 그런 줄 알았습니다. 인위적인 손길이 아니고서야 그럴 수는 없을 거라고. 그러나 그 모양이 어떤 계단은 곧기도 하고 어떤 계단은 휘어있기도 하여 애초부터 모양으로 깎아놓은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리고 그 위를 쉴 새 없이 미끄러지는 아이들을 보면서, 이 모양이 인위적이기는 하나 고의적인 것은 아님을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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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계단마다 아이들의 엉덩이 자국이 깊게 패여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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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윤영옥 |
| 그 광경을 보면서 각종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었습니다. 문화재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는 중국 정부를 탓해야 하는 건지, 아이들을 방임하는 부모를 탓해야 하는지, 아니면 누구라도 편안히 들렀다 갈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한 것에 박수를 보내야 하는 건지…. 정답은 없지만 저는 그 '엉덩이 자국'이 조금은 감동이었습니다.
물론 문화재 보존의 차원에서 보자면 당연히 금지되어야 하겠지요. 제가 감동받았다는 것은 작은 힘의 반복과 누적이 만들어낸 큰 결과입니다. 고작 아이들의 작고 가벼운 엉덩이가 돌덩이에 깊은 흔적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그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세월의 힘이란 이런 것이었습니다. 끝없는 시도의 결과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일일지라도 포기하고 않고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면 결국은 이렇게 된다는 것을, 그 당연한 진리를 우습게도 '엉덩이 자국'을 보고서 다시금 되새겼습니다. 지금 제가 타고 있는 미끄럼은 무엇일까요? 먼 훗날 제 삶에 깊이 남을 '엉덩이 자국'은 무엇일까요?
지금껏 내가 타고 내려왔던 많은 미끄럼들을 자국이 남기도 전 쉽게 포기해버린 것은 아니었을지, 지금도 금방금방 다른 미끄럼틀로 바꾸어 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이들이 남긴 엉덩이 자국을 보며 반성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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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윤영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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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지난 4월 28일부터 5월 6일까지 중국 산동성 제남, 태안, 곡부, 청도를 여행한 발자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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