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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2007년 1월 19일(금) 오후 1:17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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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절리 풍경, 사람들이 돌아오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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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강기희 |
| 강원도 정선의 구절리로 간다. 구절리는 세상의 끝이다. 구절리로 가는 일은 세상의 끝을 확인하는 여정이다. 그런 이유로 구절리로 가는 여행길을 설렘보다는 비장함이 더 든다.
남는 일보다 떠나는 슬픔이 더 많은 곳인 구절리에서 세상 밖을 바라본다. 세상의 끝에서 바라보는 세상 밖 풍경은 아련하다. 기쁨이 슬픔에게 손 내미는 구절리 역에는 돌아온 흔적보다 떠난 흔적이 많다.
버려진 마을 구절리는 세상의 '끝'
몇 해 전만 해도 구절리는 버려진 마을이었다. 사람들이 떠난 마을엔 검은 탄가루만 풀풀 날렸다. 인생 막장인 팔도 사나이들의 검은 희망은 탄가루처럼 바람에 날렸다. 탄광이 문은 닫으면서 생긴 일이다.
사람이 떠난 구절리는 고요했다. 역무원마저 떠난 구절리역사는 온기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조개탄이 피어오르던 역사는 그 시절의 추억만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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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착역인 구절리, 세상의 끝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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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강기희 |
| 구절리는 정선선의 종착역이다. 서둘러 돌아나가지 않으면 떠나온 길마저 잃는 곳이다. 한때 구절리는 가슴을 치는 절망만 철로 위를 걸어다녔다.
20년 전 나는 한 여인과 함께 구절리에 온 적이 있었다. 그녀는 광부로 일하고 있는 남자 친구를 찾아가는 길이었다. 남자 친구는 학생 운동을 하다 구절리로 숨어들었다. 당시 나는 구절리가 숨어들기 좋은 곳이란 생각을 했다.
그녀는 남자 친구를 위해 삼겹살과 소주를 샀다. 남자 친구는 막 근무교대를 하고 집에 돌아와 있었다. 그녀와 그녀의 남자친구 그리고 나, 셋이서 밤새 술을 마셨다.
"구절리에 남아야겠어. 저 친구 건강이 좋지 않아."
다음날 그녀는 남고 나는 떠났다. 몇 개월 후 그녀와 남자 친구 근황이 궁금해 다시 찾았을 때 그녀와 남자 친구는 어디론가 떠나고 없었다. 그 후 그녀는 어디서도 만나지 못했고, 그 흔한 소문 하나 들려오지 않았다.
그 시절 구절리는 많은 문학 작품을 낳았다. 시인과 소설가들이 그 절망을 놓칠리 없었다. 종착역이 주는 이미지는 시인들에게 시를 쓰게 했고 소설가에겐 소설을 쓰게 했다. 그들은 희망보다는 절망을 노래했고 만남보다는 이별을 노래했다.
벽지를 걷어내고
합판을 뜯어내고
창틀에 박힌 못을 뽑아버리고
맞아들일 것인가 저 바람의 알몸을
저 바람엔
들이키면 게워낼 수 없는 컴컴함이 배어 있다
다락산 노추산 상원산의 희디흰 탄식이 녹아 흐르고 있다
몇 안 남은 붙박이별 뿌리를 흔드는 삽자루가 들려 있다
늘어만 가는 빈집들의 방이며 뜨락을 사람 대신 채워보는
곡소리가 묻어 있다
달 높이에 가로등을 매달고 싶어했던 철새들의 거세당한
깃털들이 우왕좌왕 떠 있다
손을 씻어 본다
발을 닦아 본다
거울 속의 얼굴을 도닥거려 본다
이불을 덮어 쓴다
구절리는 못 떠도 메주들은 잘 떠서
검고 푸른 홀씨들을 구절리 밖으로 날리는 밤
- 이향지 시 '구절리 바람소리' 전문
구절리란 지명은 골짜기의 생김이 구절양장과 비슷하다 해서 붙여졌다. 마을을 휘감아 도는 것은 송천이다. 송천은 겨울이라 얼음이 깔렸다. 송천은 남한강 상류다. 물을 따라 내려가면 정선이 나오고 여주가 나오고 서울이 나온다.
봄이면 수달래가 계곡을 수놓는 구절리는 많은 계곡을 거느리고 있다. 스스로 문을 연다는 자개골은 숲이 온전하게 남아있는 골짜기다. 인내를 가지지 않고서는 그 깊은 속내를 확인하기란 힘든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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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절리역에 있는 여치 카페와 풍경열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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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강기희 |
| 운행을 멈춘 정선선 열차는 아우라지에서 되돌아간다. 아우라지에서 구절리로 오려면 풍경열차를 타야 한다. 풍경열차에 몸을 실으면 비로소 구절양장이 눈앞에 펼쳐진다. 송천은 아우라지에서 골지천을 만나면서 조양강이 된다.
레일바이크로 활기 되찾은 구절리
구절리의 주산은 노추산이다. 노추산은 '노나라 노', '추나라 추'에서 한자씩 떼어 노추산이란 이름을 붙였다. 설총과 율곡이 공부를 했던 이성대가 노추산의 지난 역사를 확인시켜준다.
노추산에는 오장폭포가 있다. 굳이 등산을 하지 않아도 만날 수 있는 폭포다. 구절리역에서 가깝다. 오장폭포는 차 안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폭포다. 그 높이만도 209m나 된다.
장엄했던 폭포는 겨울이라 수량이 적다. 여름엔 쏟아지는 물소리로 귀가 먹먹한 곳이다. 빈 폭포지만 생의 높이와 떨어지는 절망을 짐작하기엔 더 없이 좋은 장소다.
오랜만에 찾은 구절리는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폐선이었던 철로에 레일바이크를 운행하면서부터이다. 레일바이크는 떠난 이들을 돌아오게 하였다. 버려졌던 집들은 말끔하게 단장하고 민박 손님을 맞는다.
음식점도 많이 생겼다. 오래전엔 삼겹살집이 많았지만 요즘엔 곤드레밥이나 콧등치기를 파는 음식점이 많다. 곤드레밥이나 콧등치기, 올챙이국수는 정선지역에서만 맛볼 수 있는 전통 음식이다.
구절리 거리를 거닐다 오래전 그녀와 남자 친구가 묶고 있던 집을 찾아 나선다. 거리를 아무리 뒤져도 당시의 집은 보이지 않는다. 구멍가게에 들러 물어보지만 20년 전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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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의 끝에서 세상을 향해 떠나는 여행. 또 다른 희망을 품는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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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강기희 |
| 구절리 역사 인근의 여치 카페로 간다. 여치 카페는 객차를 활용해 만든 카페이다. 여치의 뱃속에서 점심을 먹는다.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하는 식사는 한결 여유가 있다.
점심시간을 넘기자 여행객들이 모여든다. 레일바이크를 타기 위한 사람들이다. 방학이라 그런지 아이들의 모습도 많이 보인다. 구절리에서 문창진(정선군청 관광문화과)씨를 만난다.
문씨는 레일바이크 운행을 담당하는 공무원이다. 요즘은 동남아 관광객도 많이 찾는다고 한다. 문씨는 주말부터 진행될 '제1회 정선아이스페스티발'을 준비하느라 아예 구절리로 출근한단다.
"자연을 소재로 한 겨울 축제를 준비하는데 날씨가 포근해서 걱정이네요."
해발 500m나 되는 구절리지만 날씨는 전에 없이 포근했다. 날씨에 기대어야 하는 축제라는 게 그래서 힘들다. 구절리에서 축제라는 건 관광객들에게 주는 덤이다.
덤 치고는 짜임새가 제법 있다.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많다. 하긴 구절리라는 마을은 축제가 없다 해도 삶의 한 축을 풀어놓는데 아무 지장이 없다. 구절리에서 맞는 바람의 느낌만으로도 존재의 이유를 충분히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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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촌에서 즐기는 아이스축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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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도 정선 구절리에서는 1월 20일부터 28일까지 제1회 정선아이스페스티발이 열린다. 눈 조각전을 비롯하여 얼음 조각전, 얼음숲, 이글루 카페, 아이스 아쿠아리움, 아이스 캐릭터 쇼, 아이스 콘서트를 매일 연다.
체험 프로그램으로는 연만들기와 팽이 만들기, 쥐불놀이, 아이스 조각대회, 아이스 슬라이딩 대회, 전통 썰매 타기등이 있고, 27일엔 알몸 마라톤 대회도 개최된다. 레일바이크와 축제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좋은 기회다. 행사문의 : 033)560-2361~3(정선군청 관광문화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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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예전 구절리 탄광에서 광부로 일했다는 지아무개씨 가족을 만난다. 60대인 그는 구절리에 관한 추억 한 자락을 풀어놓는다.
"삶이 막막하던 시절 청량리에서 기차를 탔는데 구절리에 나를 내려놓더군요. 더이상 갈 곳도 없는 처지였던 터라 이곳에서 광부일을 하기 시작했어요. 갱에서 죽을 고비도 여러차례 넘겼죠. 그래도 그때가 좋았어요. 돈벌이가 쏠쏠했거든요."
레일바이크가 출발할 시간이 되자 그는 가족을 데리고 레일바이크에 오른다. 기차가 사라진 철길로 레일바이크가 미끄러진다. 추억 하나가 구절리에 잠시 머물렀다 레일바이크와 함께 떠난다.
추위야, 물렀거라. 레일바이크 나가신다!
겨울인데도 레일바이크를 타려는 이들이 많다. 주말엔 예약을 하지 않고서는 타기 어렵다고 한다. 눈 내린 다음날 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레일바이크는 오전 9시부터 2시간 간격으로 출발한다. 구절리역에서 아우라지역까지 걸리는 시간은 50분 정도다.
레일바이크가 떠나자 구절리는 다시 침묵한다. 레일바이크를 이미 타본 터라 뒤이어 출발하는 풍경열차를 타기로 한다. 동화에나 나올 법한 풍경열차를 타는 재미는 구절리 여행이 주는 마지막 선물이다. 색다른 추억이 또 하나 쌓인다.
레일바이크를 타고 아우라지로 가면 풍경열차가 구절리역까지 데려다 준다. 이것저것 체험 할 것이 많은 곳이다.
풍경열차 타고 구절리를 떠난다. 맑은 송천이 친구하자며 따라온다. 수달래가 천변을 수 놓은 즈음 구절리를 다시 찾기로 약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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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둠과 빛은 언제나 함께 존재한다. 터널을 통과하는 레일바이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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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강기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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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몸으로 서있는 것들과의 만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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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강기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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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구절리 오는 길>
서울 - 중부 혹은 경부 - 호법JC - 영동고속도로 - 진부I.C - 59번국도 정선방향 - 나전삼거리 - 42번국도 강릉방향 - 아우라지 - 구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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