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여행의 시작, 걸어서 국경을 넘다

피나얀 2007. 1. 20. 21:22

 

출처-[오마이뉴스 2007-01-20 08:21]



▲ 태국 쪽에서 바라본 출입국사무소의 모습. 국기 대신 국왕의 대형 사진이 걸려있는 것이 이채롭다.
ⓒ2007 서부원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라는 '앙코르 와트'로 가는 길은 크게 두 갈래입니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인접한 방콕, 하노이, 멀게는 상하이 등지에서 앙코르 와트가 위치한 캄보디아 시엠립으로 직항하는 항공편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베트남, 라오스를 경유하거나, 방콕을 거쳐 캄보디아 국경을 넘는 육로 교통편도 있습니다.

전자가 비용이 많이 드는 대신 시간을 아끼고 덜 수고로운 데에 반해 후자는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지만 비용도 덜 들고 여행 도중에 현지인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덤을 얻을 수 있습니다.

혹자의 말처럼 '여행이란 낯설고 위험한 환경에 방치되는 일'이라면 털털거리는 버스에 몸을 싣고 잇따르는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 맞서보는 것도 의미 있는 배움이 될 것입니다.

방콕에서 시작하여 육로로 태국-캄보디아 국경을 넘어보기로 했습니다. 방콕에서 국경에 이르는 길은 끝없는 지평선과 주변의 열대 풍광만 아니라면 우리나라의 도로를 떠올릴 만큼 말끔하게 정비되어 있습니다.

자동차가 도로에서 좌측통행을 한다는 것, 곧 운전대가 우측에 있다는 점이 조금 낯설 뿐 교통 여건은 좋은 편입니다. 차창 밖으로 확 트인 시야는 열대의 무더위조차 대수롭지 않게 만들어줍니다.

네 시간 남짓을 달려 태국 쪽 국경 마을인 아란에 닿습니다. 출입국 수속을 마치고 나면 이곳부터는 걸어서 국경을 넘어야 합니다. 몸을 움츠린 채 바짝 긴장하며 한 걸음씩 내디뎠지만, 정작 이곳 사람들의 표정은 한가로울 지경입니다.

'국경'이라는 말이 주는 두려움과 불안, 경계심 따위는 분단된 나라에서 살아가는 우리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는 것일 뿐, 출입국 사무소만 제외하면 이곳이 국경임을 보여주는 표지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하릴없이 의자에 앉아 졸고 있는 경찰의 모습에서 외려 평온함이 느껴집니다.

세계 최빈국의 모습을 보다

▲ 국경을 넘나들며 관광객들의 짐을 옮기는 손수레의 행렬.
ⓒ2007 서부원
국경 마을에서 가장 먼저 만난 것은 나무판을 얼키설키 붙인 낡은 손수레와 한가로운 표정으로 줄을 서서 기다리는 짐꾼들입니다.

입국 심사대에 짐을 투시하고 확인하는 장비가 있긴 했지만 매우 낡아 보여 과연 제대로 작동은 되는 것인지 의심스러울 정도였습니다. 국경 마을의 즐비한 손수레들은 여행객과 분리된 짐을 국경 너머로 별 제약 없이 옮기는 역할을 하는 것뿐 특별하달 것은 없었습니다.

손수레를 끄는 거무튀튀한 사람들은 대부분 캄보디아인들이라고 합니다. 어디를 가나 계층별로 맡는 일에 분화가 일어나듯 이곳에서는 힘들고 고된 짐꾼 역할을 그들이 맡고 있습니다. 그들의 손에 얼마나 쥐어질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에게서 유일한 생계 수단인, 곧 망가질 듯한 허름한 손수레와 그것을 끄는 그들의 얼굴을 통해 세계 최빈국이라는 캄보디아와의 첫 만남을 가졌습니다.

▲ 과거 태국과 캄보디아를 잇던 철길의 모습. 지금은 녹슨 채 흉물스럽게 방치되어 있다.
ⓒ2007 서부원
출입국 사무소 바로 옆에 나란하게 녹슨 철로가 버려진 채 놓여있습니다. 지도를 통해 짐작해 보건대 태국의 수도 방콕과 캄보디아의 수도인 프놈펜, 나아가 베트남의 호치민(사이공)을 잇는 동남아시아의 대동맥과도 같은 기찻길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위에 주변 상가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버려두는 등 흉물스럽게 방치돼 있습니다. 과거 두 나라의 불편했던 관계를 그대로 보여주는 속살입니다. 누군가 동남아시아 각국의 발전과 상생을 전망한다면, 또 그것이 실현 가능하다고 한다면 그것은 이 버려진 철길이 이어지고 이 위로 수많은 사람들과 물자와 문화가 자유롭게 오가는 것으로 증명될 것입니다.

캄보디아 쪽 국경 마을의 이름은 포이펫입니다. 국경을 넘어왔지만 여전히 캄보디아의 화폐(리얄)보다도 태국의 그것(바트)이 더 많이 통용되는 것 등을 보면 두 나라의 현격한 경제적 격차를 느낄 수 있습니다.

하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캄보디아는 원조의 이름으로 태국으로부터 전기를 끌어다 썼으며, 지금도 캄보디아의 적잖은 호텔에서조차 자가 발전기를 돌려 사용할 만큼 상황이 열악하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건너온 낡을 대로 낡은 버스 타고 시엠립으로

▲ 캄보디아 쪽 국경선. 국기와 함께 앙코르 와트를 상징하는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2007 서부원
이제 앙코르 와트가 자리한 시엠립으로 가기 위해서 차를 갈아타야 합니다. 버스를 기다리며 포이펫의 일상을 둘러보니 눈앞에 야바위판 카지노가 맨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호텔의 입구 1층 로비를 막아선 휘황찬란한 굉음과 불빛에 천박한 돈의 냄새가 가득합니다. 이곳을 오가는 관광객의 주머니만을 보고 오로지 돈, 그것을 위해 가장 손쉬운(?) 방법을 택한 겁니다. 호텔에서 한 발짝만 밖으로 나오면 덕지덕지 때 묻은 손을 내밀며 구걸하는 어린 영혼들이 넘쳐나는 모습과 겹치면서 차라리 안쓰럽기까지 합니다.

얼마 안 있어 시엠립까지 실어다 줄 버스가 도착합니다. '○○유치원'이라는 이름이 여태껏 지워지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건너온 소형버스입니다. 낡을 대로 낡아 과연 제대로 움직일까 싶은 고물(?)이지만, 그래도 이곳에서는 좋은 축에 드는 것이랍니다. 캄보디아의 열악한 도로 사정을 감안하면 그나마 이 정도 유지되고 있는 것도 고마울 따름이라면서.

▲ 앙코르 와트가 있는 시엠립까지 태워다 줄 버스. 우리나라에서 유치원 통학 버스로 이용되었던 것이다.
ⓒ2007 서부원
섭씨 30도를 웃도는 찌는 듯한 더위를 견디며 네 시간을 줄곧 달려야 합니다. 분명 고달픈 여정이 될 테지만 중간 중간 접하게 될 캄보디아인들의 삶을 생각하면 네 시간이 아닌 나흘이어도 괜찮을 듯싶었습니다. 간신히 버스에 시동이 걸렸습니다. 드디어 캄보디아로의 여행이 시작된 겁니다.


덧붙이는 글
지난 12일부터 17일까지 6일간 캄보디아를 여행하였습니다. 현재 캄보디아는 대낮의 기온이 섭씨 30도 안팎의 비교적 견딜 만한 겨울(?)이며, 비가 오지 않는 건기라서 여행하기에는 최적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