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추억의 시골장 ‘풍각장’ “없는 게 없고, 안 되는 게 없소”

피나얀 2007. 1. 26. 21:48

 

출처-[조선일보 2007-01-25 10:15]



경북 청도 간 김에 시골장 구경에 나섰다.


사람 구경하고 별미 맛 보고 근사한 사진까지 건지려면 장터가 최고다.
청도에는 ‘청도장’(4·9일장)과 ‘풍각장’(1·6일장)이 선다.
청도장 쪽이 규모도 크고 시설도 더 현대적이지만, 소박하고 정겨운 분위기를 찾아 풍각장에 가보기로 했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풍각 농협에 차를 세우고 장터로 걸어가는 중이었다. 길 한 켠에 ‘신발·양산 수선 전문’이란 팻말이 걸렸다. 거꾸로 걸린 양산 밑으로 크고 시꺼먼 구식 재봉틀이 보였다. 이런 재봉틀을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였더라?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재봉틀 주인은 낡은 구두에 새 구두 굽을 다느라 바빴다. 그 앞에 구두 주인으로 보이는 할아버지가 슬리퍼를 신고 앉아 있었다. 다른 할아버지 서너 분과 아주머니 두 분도 슬리퍼를 신고 차례를 기다렸다. 한 할아버지는 “여기(풍각장)에 오면 없는 게 없고, 안 되는 게 없어”라며 웃었다.

풍각장은 1925년 세워졌다. ‘1’과 ‘6’이 들어가는 날짜에 서는 오일장이다. 이 지역 상권의 중심으로 1970~80년대 가장 번성했다고 한다. 시골 인구가 줄어들면서 예전 위상을 잃은 지는 꽤 됐다. 하지만 주변에 사는 시골 어르신들에게는 부족함이 없다. 아침 일찍부터 오후 5시까지 풍각 홍고추, 수박 등 지역 특산물과 일용잡화가 거래된다.


1994년 장터 건물을 정비했다고 하지만, 도시사람이 보기에는 1960년대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리어카에서는 ‘소라과자’, ‘박하맛 캔디’, ‘캬라멜’, ‘계피맛 캔디’, 꽈배기, 센베이를 저울에 달아서 판다. 종류 불문하고 1근에 3000원씩 받는다.



조금 더 걷자 왼쪽으로 교회당 꼭대기가 보인다. 골목을 들어서니 툭 터진 공터가 나오고, 그 뒤로 살구색 페인트로 칠해진 교회가 모습을 드러냈다. ‘풍각제일교회’다. 건물 벽을 보니 커다랗게 쓰여진 ‘愛(애)’자에는 ‘믿음, 소망, 사랑 중 제일은 사랑이라’를 강조하듯, 동그라미가 둘러쳐 있고, 그 아래 ‘禮拜堂(예배당)’이라고 얌전한 한자(漢字)로 적혀 있다. 요즘 빈티지가 유행이라는데, 빈티지도 이런 빈티지가 없다.


교회를 지나 오른쪽으로 틀면서부터 본격적인 풍각장 구경 시작이다. 어물전에는 이런저런 생선이 뒹구는데, 다른 곳에서는 보이지 않던 커다란 생선 토막들이 보인다. 주인에게 물으니 “돔배고기”라고 한다. 상어고기다. 상어는 체내에 암모니아가 많아 쉬 상하지 않는다.

 

그래서 냉동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옛날, 청도 같은 산간에서 그나마 맛볼 수 있는 생선이 상어, 아니면 소금에 ‘찌든’ 간고등어였다. 요즘이야 별미로 그 신분이 격상했지만. 상어고기는 다른 생선처럼 그냥 구워먹으면 된다(청도 한정식집에서 반찬으로 나온 상어고기를 먹어보니, 그 맛이 엄청난 감동은 아니었다. 그저 퍽퍽한 흰 살).


 


‘옷 수선 미복사’ 옆에서 몸집이 작은 할머니 한 분이 국화빵을 굽고 있다. 양은주전자에 담긴 반죽을 국화빵 틀에 붓더니 팥소를 조금씩 떼어 넣는다. 한 접시 달라고 했다. 노릇노릇 맛있게 구워진 국화빵 12개를 접시에 담더니 설탕까지 듬뿍 뿌려 내줬다. 따끈따끈 말랑말랑한 빵 속에 든 팥소가 고소하다. 반죽도, 팥소도 모두 할머니가 집에서 직접 만들어 가져오는 것. 장이 서는 날마다 나와 국화빵을 판 지 20년이 넘었다고 하신다.

한 접시 다 먹고 다시 한 접시를 추가했다. “얼마냐”고 했더니 할머니는 너무나 수줍어하며 “한 접시 값만 내라”고 자꾸 우긴다. “그래도 제대로 다 받으셔야죠”라고 물러서지 않자, “두 접시에 2000원”이라며 굉장히 미안해 하더니 국화빵 10개를 접시에 담아 “더 먹으라”며 줬다. 청도 풍각장을 찾은 날은 꽤 추웠는데, 순간 몸이 따뜻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