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연합르페르 2007-01-26 09:45]
◆포구와 갯벌에 기댄 사람들
77번 국도는 태안반도의 폐동맥이다. 반도를 남북으로 가르며 수십 가닥의 가는 길을 파생시킨다. 폐 양쪽의 모세혈관처럼 가지를 뻗어나간 길들은 그 끝에서 허파꽈리처럼 부풀어 올라 포구와 갯벌이 된다.
태안의 포구들은 ‘무릇 포구란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주지 못한다. 썰물로 드러난 갯벌에 비스듬히 누운 어선들과 얼기설기 지은 어판장이 포구임을 말해줄 뿐이다.
한 세대 전 새마을운동이 태안의 갯마을에 밀려들면서 포구의 원형은 크게 훼손ㆍ변형됐다. 돌무더기 자연제방 대신에 반듯한 콘크리트 방파제가 들어섰고, 사통팔달 진입로가 생겨나면서 외지인이 몰려들었다. 그물과 통발을 말리던 포구 언저리에는 식당과 모텔, 노래방이 들어섰다.
무감한 세월은 포구의 풍광만 변모시키지 않았다. 하루하루 그 주변에서 벌어지는 노동의 질과 형태도 달라졌다. 지금 태안의 포구에서는 김밭을 매는 모습을 볼 수 없다.
태안의 김 농사는 1980년대 중반부터 내리막길을 걸었다.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낡은 유조선을 침몰시키는 공법으로 천수만을 막은 뒤부터다. 태안과 홍성을 이은 8km 길이의 방조제는 수천만 평의 바다를 땅과 호수로 바꾸어놓았다.
태안을 감싸는 서해의 물길이 느려지고 바닷물은 따뜻해졌다. 달라진 환경에 포구민들의 생활도 출렁거렸다. 빤듯하고 감칠맛 도는 김은 더 이상 나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서천으로 옮겨간 김 양식장을 따라 내려갔다. 포구에 남은 사람들은 횟집을 열거나 갯벌의 바지락, 굴 양식장에 날품팔이로 나갔다.
◆송림(松林)과 독살
소나무는 태안의 갯벌과 포구마다 지천이다. 이곳의 소나무는 삼국지의 관우를 닮았다. 대춧빛 얼굴에 9척 장신이었던 사내처럼 껍질이 붉고 기둥이 훤칠하다. 위로 곧게 뻗은 것이 다 자라면 30m 높이다. 상단부에 둥글고 단아하게 퍼진 솔가지가 푸른 하늘과 조화를 이룬다.
‘안면송’이라 불리는 태안의 소나무는 조선시대 궁궐이 화재나 전쟁을 겪어 무너지면 보수용으로 쓰였다. 대원군의 경복궁 중건 당시에도 일착으로 베어져 한양에 보내졌다. 해안성 기후에 돌이 적고 습기가 일정한 태안의 토질은 소나무가 옹이 없이 미끈하게 자라도록 북돋는다.
소나무 숲에 범접하지 못했던 민초들은 도끼를 드는 대신에 ‘독살’을 쌓았다. 독살은 조수간만의 차를 이용해 물고기를 잡는 전통 어법이다. 남해의 죽방렴이 대나무로 발을 쳐 멸치를 포획하듯, 서해에선 고기가 많이 몰리는 물목에 크고 작은 바위로 장벽을 쌓아 썰물 때 미처 나가지 못한 생물을 건져 올렸다.
조기, 민어, 갈치, 개숭어, 멸치, 가자미 등이 돌 그물에 갇혔다. 만물이 준동하는 봄철에는 고기가 돌막 사이에 끼어 물이 잘 빠지지 않을 정도였다고 전해진다. 문헌은 이 같은 함정어법을 ‘어살’이라고 통칭하는데, 태안을 비롯한 충청도 권역에서는 ‘독살’로 불렀다.
송림(松林)이 왕실의 재산이라면 독살은 민초들의 몫이었다. 소금처럼 국가의 통제 대상이었지만 그 소유권은 권문세가가 아닌 평민들에게 주어졌다. 간혹 왕실의 친인척이나 세도가들이 독살을 차지하려고 농간을 부렸지만 ‘어살은 가난한 백성에게 차례로 나누어주어 세를 거둔다’는 대전(大典)의 뜻은 어긋남 없이 지켜졌다.
태안의 송림과 독살은 왕조와 운명을 같이 했다. 일제의 남벌에 살아남은 소나무는 다시 땔감으로 베어졌다. 현재 태안에 소나무는 많지만 아름드리가 없는 이유이다. 독살도 집안에서 대물림하다가 고기가 들지 않으면 쌀 몇 섬에 사고파는 대상으로 사물화(私物化) 되었다. 이후 촘촘한 나일론 그물과 어군탐지기가 설치된 동력선이 등장하면서 독살은 허물어져갔다.
개펄로 올라오는 고기의 무리가 격감하자 더 이상 보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파도에 의한 자연적인 붕괴 말고도 독살 돌이 방파제 공사와 굴 양식장 사업에 쓰이면서 소멸을 재촉했다. 지금 태안에 가면 휴양림 간판을 내건 소나무 숲과 개펄체험장 한 귀퉁이에 생채기처럼 남은 독살의 자취를 볼 수 있다.
|
'♡피나얀™♡【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거제 (0) | 2007.01.26 |
---|---|
태안② 파도는 커튼콜을 받지 않는다 (0) | 2007.01.26 |
눈 내리면 더 예쁜 서울의 명소… 눈 오는 밤 ‘거기’서 만나자 (0) | 2007.01.26 |
유럽 땅끝마을 포르투갈 ‘로카곶’ (0) | 2007.01.26 |
추억의 시골장 ‘풍각장’ “없는 게 없고, 안 되는 게 없소” (0) | 2007.01.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