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오마이뉴스 2007-01-30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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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 장모님의 손맛을 되살린 파래무침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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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전갑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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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이면 서울 사람들은 내가 사는 강화도를 많이 찾는다. 도로가 미어지도록 차량물결로 넘실댄다. 우리는 주말이면 반대로 서울에 올라가는 경우가 많다. 도회지 바람도 쐬고, 공부하는 애들을 보러 서울나들이를 한다.
서울 가는 날이면 영화도 한 편 보고, 이곳저곳 쇼핑도 한다. 수많은 인파 속을 헤집고 다니다 보면 복잡하기는 해도 시골생활에서 못 느끼는 또 다른 삶의 모습을 본다.
애들과 하룻밤을 묵었다. 모처럼 가족끼리 이야기를 나누며 오붓한 시간을 보냈다. 늦은 아침을 먹고 아내가 말을 꺼냈다.
"여보, 모래내시장 들렀다 갈까? 거기엔 가격도 싸고 없는 게 없어요."
강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모래내시장이 있다. 우리 애들이 사는 집에서 가까운 곳이라 가끔 들른다. 시장 골목에 만국기가 펄럭이고, 상가번영회에서 내건 환영 현수막이 보인다. 손님들이 많이 찾아와 장사가 잘 되었으면 하는 시장사람들의 바람이 담겨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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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래내시장 상인들이 손님을 끌기 위한 자구 노력이 엿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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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전갑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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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이런 골목상가에서는 상인들이 목청껏 손님을 부르는 소리로 떠들썩했다. "골라! 골라!"를 외치며 신명나게 장사하는 아저씨들은 어디로 갔을까? 조금은 과장된 목소리로 관심을 끌려는 웃음소리에도 마냥 즐거워하던 손님들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른 시간이라서 그런지 어딘가 모르게 시장 안이 썰렁하다.
예전에 먹었던 맛, 아직도 잊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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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종 어패류와 생선, 해조류를 함께 파는 어물전. 값도 싸고 물이 좋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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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전갑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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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물전 앞에 이르자 각종 어패류에다 싱싱한 생선이 눈에 띈다.
"여보, 꼬막 좀 사다 먹자." "난 별로인데. 새파란 파래가 나왔네!" "파래?" "새콤달콤하게 무쳐먹으면 맛이 좋아요."
바다에서 방금 건져 올린 것 같은 연초록색의 빛깔이 선명하다. 내가 아주머니께 가격을 물었다.
"파래는 어떻게 팔아요?" "세 뭉치에 천원이에요."
나는 두말없이 파래 값을 치렀다. 이렇게 싼 값으로 신선한 바다내음 풍기는 음식을 해먹을 수 있다는 게 어디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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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래내시장 상가의 여러 모습. 재래시장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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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전갑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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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이곳저곳 구경을 하니 정신이 맑아지는 것 같다. 생각 같아서는 국밥집에 들러 막걸리라도 한 잔 걸쳤으면 좋겠다. 떡 가게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떡이 먹음직스럽다. 호박떡을 조금 샀다. 아내가 주전부리로 옥수수도 사자고 한다. 한창 쏟아질 때보다 가격이 싸다는 게 신기하다.
아내가 김 한 톳을 사야 한다며 김 가게를 찾는다.
"아주머니, 파래김 있어요?" "파래 섞인 김이 있기는 있는데, 좋은 김을 찾지, 웬 파래 김이에요?" "우린 파래가 많이 섞인 김이 더 맛있는 걸요." "보아하니 옛날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아주머니가 아내 얼굴을 유심히 살핀다. 파래김을 찾는 사람이 많지 않은가 보다.
원래 김은 파래가 섞이지 않은 것을 더 쳐준다. 빛깔이 검고 광택이 나야 최상품이다. 하지만 값도 싼데다 향과 맛이 좋아 파래김 맛을 아는 사람은 파래김만 찾는다. 한 장을 찢어 맛을 본 아내가 괜찮다며 셈을 치른다.
아내는 가끔 예전에 먹었던 맛을 잊지 못하는지 좀 고리타분한 구석이 있다. 파래김만해도 그렇다. 파래김은 감칠맛은 좀 덜하지만, 산뜻한 바다내음의 맛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나도 김에 대한 추억이 많다. 내가 클 때도 김을 쟁여놓고 먹을 수 있었던 집은 그리 많지 않았다. 김 한 장이면 밥 한 그릇을 먹고도 남았다.
우리가 사는 고향에서는 김을 '해우'라고 불렀다. 석쇠에 얹어 화롯불에 김을 구우면 온 집안이 고소한 냄새로 가득 찬다. 고소한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도 식욕은 동한다. 또, 참기름을 떨어뜨린 간장에 밥을 싸서 먹으면 밥도둑이 따로 없었다.
예전 우리 어머니처럼 값싼 파래에다 김 한 톳을 사서 든 아내가 무척 만족한 표정을 짓는다.
"내 손맛은 어머니도 알아주실 걸요!"
집에 돌아와 아내가 파래를 가지고 어떻게 요리를 할까 궁리를 한다. 결국, 어렸을 적 친정어머니가 하시던 대로 파래무침을 할 모양이다.
아내가 무 하나를 꺼내오라고 한다. 우리 집은 김장철에 남긴 무를 땅에 묻어놓았다. 생선도 지져먹고, 멸치 무 조림도 해먹고, 생채도 해먹는데 참 요긴하다.
"당신, 파래 무생채하려고?" "그럼요. 새콤달콤하게 무쳐 먹어보게요."
어떤 맛으로 저녁을 즐겁게 할지 사뭇 기대가 된다. 무를 가져다주고 아내가 하는 부엌일을 지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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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깨끗이 씻어놓은 파래. '바다의 채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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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전갑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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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래부터 씻기 시작한다. 파래는 흐르는 물에 살살 문지른다. 혹시나 있을지 모를 이물질을 걸러내기 위해 체로 받쳐가며 씻는다. 서너 차례 되풀이하자 깨끗하다. 씻어놓은 파래색깔이 싱싱하다. 파래가 바다 채소라는 말이 틀리지 않은 것 같다.
다음으로 무를 채 썬다. 당근도 음식의 색깔을 내기 위해 조금 썰어놓는다. 무생채에 물을 들이려고 고춧가루를 버무린다. 손질한 파래에 다진 파, 마늘을 넣은 뒤 식초를 떨어뜨려 조물조물 무친다. 굵은 소금으로 간을 한 뒤 맛을 본다. 달콤한 맛이 모자란다며 배를 약간 썰어놓는다. 아무래도 예전 맛이 나지 않은지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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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래를 무생채와 함께 버무리면 새콤달콤한 맛이 식욕을 돋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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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전갑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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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을 조금 넣을까?" "그러지 말고 매실액을 좀 넣어 봐?"
아내가 매실액을 한 수저 떨어뜨린다. 맛을 또 본다. 이제야 제대로 맛이 나는지 얼굴표정이 밝아진다. 손으로 한 입 건네주며 맛을 보란다. 새콤달콤한 맛이 식욕을 돋운다.
천원으로 산 파래와 무생채로 버무려진 음식이 한 양푼 가득이다. 이렇게 푸짐할까? 밥 한 그릇이 어느새 뚝딱 비워진다.
아내에게 "오늘 만든 음식을 세상 뜨신 장모님께서 맛보시면 뭐라고 하실까?" 물었다. 아내가 얼굴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대답한다.
"모르면 몰라도 내 딸 손끝이 여물다고 하실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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