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부탄…가난하나 행복하다 ‘은둔 왕국’

피나얀 2007. 3. 8. 19:36

 

출처-[경향신문 2007-03-08 09:54]




기도바퀴(Prayer Wheal)를 돌리고 또 돌리면 전생의 업이 소진될까. 헝겊이 바람에 날리고 날려 다 해지면 소원이 이뤄질까. 노인들은 종(Dzong)에 쪼그리고 앉아 종일 기도를 올렸다. 그리고 바람 잘 닿는 구릉이나 다리 난간, 지붕에는 어김없이 ‘소원의 깃발’을 달았다. 간절한 기원 때문일까. 사람들은 평온해 보였다.

 

가난하지만 국민의 행복도는 가장 높은 나라로 불리는 지구촌 마지막 청정왕국, 부탄. 신이 지켜줄 것이고 신이 당장 데려가도 신의 뜻이기에 행복하다는 사람들. 그 은둔의 왕국은 연 1만명 이하의 ‘선택된’ 소수에게만 기회를 주며 전통의 울타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아, 저게 바로 히말라야 만년설이구나.’ 사람들이 웅성웅성 창가로 몰려들었다. 구름 사이로 손톱만한 흰 봉우리가 솟아올랐다. 그것도 잠시뿐. 비행기는 전나무숲을 질러 계곡 위를 나는가 싶더니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악.” 추락과 착륙 사이를 떠올린 사람들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아주 경험 많은 비행사만이 파로 공항 진입이 가능하다는 소문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이렇게 단 3대밖에 없다는 부탄 유일의 항공 ‘드룩에어’는 학교 운동장만한 활주로 한복판에 100여명을 부려 놓았다. 야생 허브와 낮은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파로 공항. 알록달록 단청을 곱게 칠한 청사는 고즈넉한 사찰을 연상시켰다. 사람들은 연방 카메라를 눌러댔고, 마치 스코틀랜드 남성들처럼 ‘스커트’를 팔락거리며 오가는 이곳 남성들은 순박한 미소로 반겨줬다. 마치 먼 시간 속으로 홀린 듯 스릴과 순박함이 넘치는 나라, 그렇게 부탄은 다가왔다.

 

부탄에 들어서면 가장 인상적인 모습이 구릉마다 걸려있는 오색 깃발 ‘다루초’(經文旗)다. 아울러 승려들의 유골을 보관하는 정사각형 건물 ‘초르텐’이 길목마다 자리잡고 있다. 마치 사자(死者)를 불러내듯 자연과 어우러진 깃발의 행렬은 뜨겁고도 낯선 풍경이다. 이 오색기는 대지와 물, 구름, 사람, 식물을 뜻한다. 그리고 또 하나는 히말라야에서 내려오는 맑고 투명한 만년설이 파로 시내 중심을 뚫고 흘러 멀리 인도까지 들어간다는 것이다.

 

물은 송어가 뛰놀 만큼 맑고 세차다. 부탄 수출 1호 품목인 전력을 생산해내는 ‘고마운 물’이기도 하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은 이 파로 계곡에 홀랑 벗고 뛰어들고, 아낙들은 빨래를 한다. 그 옆으로 손바닥만한 계단식 논과 밭이 산 중턱까지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공장 하나 없는 나라이니 제대로 된 농기구가 있을까. 추수는 아낙들이 일일이 벼이삭을 한올씩 뽑아 등에 진 바구니에 담는다. 무엇보다 농약이 없으니 모든 먹거리는 무공해인 셈이다. 아침등교 길이면 도시락과 물통을 멘 아이들이 사과 하나씩 먹으며 걷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파로(Paro)시내로 들어가 봤다. 마침 한 활쏘기 대회가 열렸다. 화살이 과녁을 꿰뚫을 때마다 남자 50여명이 소리를 지르며 덩실덩실 춤을 췄다. 판을 벌린 개복숭아 장수는 뉼트름 한 장을 집어주면 ‘맘대로’ 한 주먹을 집어줬고, 사람들은 서로 던져가며 맛나게 베어 먹었다. 상가들이 길 양쪽에 벌집처럼 들어선 시내는 30분이면 다 돌아본다.

 

봉고형 택시가 한없이 사람을 기다리고, 검은 개들은 죽은 듯이 널브러져 있다. 마치 우리네 1960~70년대 시장장터 골목이 이와 같지 않았을까. 가게마다 없는 게 없는 그야말로 만물상이다. 인도나 중국에서 건너온 조악한 플라스틱 장난감과 속옷에서 야채까지 주렁주렁 매달아 놨다. 시간을 되돌려놓은 듯 추억의 보물창고처럼 손때 묻은 물건들을 보는 재미가 여간 좋은 게 아니다.

 

파로 시내에서 차로 40분 달려 1시간 정도 등산하게 되는 탁상사원(Taktshang) 카페테리아는 부탄 여행의 필수 코스. 약간의 돈을 내면 현지인이 조랑말을 태워준다. 8세기 구루 림포체 전설이 깃든 ‘호랑이의 보금자리’를 조망할 수 있는 명소다. 부탄에서 가장 유명한 사원으로 까마득한 900m 절벽에 아스라이 걸쳐져 있어 어떻게 지었는지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카페테리아에서 수직 계단을 2시간30분가량 ‘네발’로 더 기어올라야 한다. 98년에 화재가 나 소실되었으나 현재는 모두 복원됐다. 카페테리아까지 땀 흘려 오른 후 야크치즈와 홍차를 섞어 만든 전통 차 한 잔과 느린 호흡만으로도 세속의 묵은 때가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다.

 

파로가 국립박물관 등 볼거리가 많으면서 공항이 있는 물류도시라면 수도인 팀부(Thimphu)는 행정도시다. 파로에서 팀부까지는 차로 2시간30분 거리. 파로 계곡이 그림자처럼 따라 붙는다. 가파른 비포장 외길을 시속 20~30㎞로 달리게 된다. 중간에 운전면허증을 검사하는 검문소도 만나고, 치즈를 주렁주렁 매단 가게도 스치고, 소나기도 만나고, 엉덩이를 툭툭 쳐야 비켜서는 야크떼와 조우하기도 한다. 뒤차가 먼저 가겠다고 신호를 보내면 군말 없이 비켜준다. 간간이 버스를 만나게 되는데 사람들은 일제히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멀미 중이다. 그들에게 문명으로 가는 길은 이렇게 폴폴 날리는 먼지 속 멀미처럼 힘겹고도 먼 여행이리라.

 

산모롱이를 몇 개나 돌았을까. 속이 메슥거려 왔다. ‘두루겐’사원 앞에서 잠시 숨을 돌리기로 했다. 한데 지천에 흐드러진 것이 야생 허브와 마리화나 아닌가. 가이드는 마리화나 이파리를 뜯어 손바닥에 마구 비볐다. 손때처럼 나온 진액을 건네주며 담배에 섞어 피우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은밀하게 귀띔해 줬다.

 

팀부시내에 접어들면 제일 큰 건물은 역시 부탄 불교의 총 본산인 ‘트레시 조에 종’이다. 정부청사로 쓰고 있으며 왕이 집무를 보고 있다. 뒤쪽에는 9홀짜리 접대용 골프장도 있다. 시내의 차들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신호등이 없는 나라이니만큼 서로 비키고 돌아가며 ‘묵언의 룰’이 작용한다. 중심가에 수신호를 하는 경찰이 한 명 있을 뿐이다. 또 부탄은 세계 최초 금연국가이기도 하다. 가게에서 은밀하게 거래는 되지만, 피우는 모습이 발각되면 벌금을 물게 된다. 따라서 담배를 사려면 사방을 살피며, 고액의 돈이 오간 뒤 밀거래가 이뤄지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왕은 애연가라고 한다.

 

파로에서 비포장 길을 달려오니 허기가 몰려왔다. 팀부에서 유일하게 하나 있는 외국인 식당에서 전통음식을 맛보기로 했다. 찰기 없는 쌀밥에 고춧가루를 넣은 감자볶음, 닭볶음, 야채볶음이 나왔다. 아울러 이 곳 사람들이 아침마다 비벼 먹고 나온다는 중국 두반장 맛의 매운 소스가 이채로웠다. 음식은 대체로 담백하여 순수한 재료의 맛이 느껴졌다.


하지만 부탄도 문명의 바람은 막지 못하는 듯 싶었다. 최근 지어진 시내 빌라조차도 전통가옥 형식을 유지하고 있었고, 누구나 전통 복장을 입도록 규정화시켜놨지만, 젊은이들은 ‘탈출’을 꿈꾸고 있었다. 98년 들어온 TV의 영향이 큰 듯 싶었다. 팀부 중심가에는 한국돈으로 하룻밤 10만원은 있어야 즐기는 디스코텍이 발 디딜 틈 없이 성업 중이다. 기름을 발라 머리를 세운 젊은이들이 컴컴한 골목에서 삼삼오오 청바지를 자랑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러나 아직도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맥도널드 체인점이 없는 곳이니 ‘울타리’는 높은 셈이다.

 

글쎄, 지난한 시절 한국 누이들을 닮았다고나 할까. 나들이 나온 여인들을 보면 툭 튀어나온 광대뼈와 천을 여며 브로치를 단 전통복장 ‘키라’(Kira)를 입은 모습이 개량한복 입은 한국여성과 별반 다르지 않다. 남자들은 두루마기처럼 무릎까지 내려오는 치마 ‘고’(Gho)를 입고, 허리띠를 묶었다. 반 스타킹과 구두로 멋을 낸다. 전통 가옥은 3층 구조다. 한데 놀라운 것은 맷돌이며 쟁기, 처마에 매달아놓은 멍석, 닭이 푸드덕거리며 홰를 칠 것 같은 닭장, 쌀 까부르는 키, 부엌 도구들까지 우리네 생활도구와 똑같다는 것. 언어도 비슷하고 보면 뭔가 캐봐야 할 유전자가 있는 게 아닐까.

 

비행기 삯만 마련되면 꼭 한국에 와 보고 싶다던 가이드 페마(23)와 1주일을 보낸 마지막 날. 슬쩍 농담을 걸어봤다. “페마! 부탄에 트랙터 한대만 가져오면 부자될 것 같아. 이민 오면 안될까?” 페마는 한참을 웃더니만 “이민오려면 부탄 남성과 결혼을 해야 한다”며 “그럴 수 있느냐”고 물었다. 실제로 현지인과 결혼하기 전에는 외국인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이방인 땅 구입은 엄격히 제한되어 있다.

 

이곳 젊은이들 사이에서 제일 인기있는 직업을 묻자 여행가이드와 공무원이라고 말한다. 그러고 보면 그는 부탄에서 제일 잘 나가는 청년 중 하나다. 수도 팀부에 갔던 날, 그가 30여분 사라졌다 나타났기에 “어디 다녀왔냐”고 물었더니 “이태리제 신발을 하나 샀다”며 자랑했다. 하지만 선글라스와 매일 색이 바뀌는 무릎 스타킹으로 멋을 부리는 그도 부모님과 다섯 형제 생활비를 대느라 사랑하는 여인과 결혼을 미룬 속 깊은 청년이다.

 

이렇듯 가난하지만 사람들 얼굴에는 미소가 넘쳐났다. 고산이 주는 빼어난 풍광과 독특한 건축물, 전통복장의 매력적인 사람들은 오랫동안 잊히지 않을 것이다. 삶이 헛헛하고, 때론 문명의 이기가 사람을 외롭게 한다면 지구촌 마지막 샹그리라 부탄을 찾아볼 일이다. 행복을 주머니 속 동전처럼 아주 가까이서 찾을 수 있을 테니까. 문득 지난해 선보였던 부탄 영화 ‘나그네와 마술사’에서 봄날의 꽃잎처럼 주술 같은 ‘현자(賢者)의 언어’를 흩날리던 극중 스님의 계언이 떠올랐다. “여보게, 젊은이. 복사꽃이 왜 아름다운지 아는가. 곧 시들어버리기 때문이야. 인생 너무 욕심내지 말게나.”

 

▶‘육지의 고도’ 부탄

 

7000m이상 히말라야 고봉들을 북동부에 두고 북쪽으로는 티베트, 남쪽에는 인도와 경계를 이룬 ‘육지의 고도(孤島)’다. 남한 절반 크기로 현신 라마와 왕이 존재한다. ‘천둥소리를 내는 용의 나라’(Druk yul)로 불린다. 불교(라마교)왕국이며 국왕은 지그메 싱기예 왕축(Jigme Singye Wangchuck·52). 전통적으로 일부다처제가 용인되며 왕은 4명의 아내 사이에 13명의 자녀를 뒀다. 1인당 국민소득이 1000달러 정도이며 인구는 80만명.

 

그러나 국민총생산(GNP)보다 국민총행복(GNH-Gross National Happiness)을 중요시하는 복지위주 정책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민주주의는 뒤처져 있지만 사람들은 축제를 즐기고 종교를 생활화하면서 지극히 평화롭게 살아간다. 1998년에 TV가 들어 왔고, 이동통신 전화도 된다. 한국 아리랑 TV 시청이 가능하다.


▶여행 가이드

 

국토의 70%가 산으로 이뤄진 해발 2400m 고산지대다. 따라서 첫날은 약간의 어지럼증이 있을 수 있다. 종교적인 골동품을 국외로 반입하는 것은 엄격히 제한되어 있다. 반바지나 민소매는 자제해야 하며 술과 담배는 금지 품목. 종카어를 사용하나 모든 학교에서 영어수업을 하기 때문에 영어가 통용된다. 세금, 가이드 비용, 숙식비를 모함하여 1인당 하루 200달러 이상을 선불로 내야 비자를 내준다. 태국 방콕에서 오전 한차례 비행기가 뜨며 인도 캘커타에서 1시간 정도 머물러 부탄으로 들어선다.

 

비행시간은 방콕에서 4시간10분. 따라서 하룻밤은 태국에 머물러야 한다. 비자신청은 3~4주 전에 해야 한다. 파로 공항에서 직원이 직접 사인하여 비자를 내준다. ‘로얄홀리데이(02-776-4969)’ 등 국내 일부 여행사에서 신청 대행을 한다. 화폐 단위는 뉼트름(Ngultrum). 1달러에 약 47뉼트름이다. 세밀하게 그린 우표와 직물 등 수공예품이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