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연합르페르 2007-03-13 08:47]
이번에도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한겨울을 지나 이제 봄에 접어들려는 독일에서 청명한 날씨는 헛된 꿈일 뿐이었다. 혹여나 태양이 얼굴을 비칠까 고대했지만 추측은 확신으로 바뀌어버렸다.
도시 전체를 빈틈없이 뒤덮은 잿빛 구름과 쌀쌀한 바람은 외투의 옷깃을 여미게 했고 주머니에 손을 쑤셔 넣게 만들었다. 역시 동장군이 위세를 떨치고 있는 독일에서 맑은 날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던 모양이다.
세계사 시간에 한 번쯤은 들었던 '한자 동맹'은 중세 시대 함부르크를 비롯한 북부 독일의 도시들이 결성한 조직이다. 역사적으로 독일에서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고 나라 전체를 호령했던 강력한 왕조가 없었던 탓에, 작은 도시들이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자구책을 모색해야 했다.
그 결과 탄생했던 한자 동맹의 도시들은 경제와 상업이 발달했었고, 국가에 복종하기보다는 '도시'로 존재하기를 원했다. 함부르크는 지금까지도 독일의 어떤 주에도 속해 있지 않은 채, '자유한자도시 함부르크(Freie und Hansestadt Hamburg)'라고 불리고 있다.
따라서 함부르크에서는 높은 첨탑과 웅장한 규모의 교회, 중세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 아기자기한 구시가를 둘러보기 전에 배들이 군집해 있는 항구를 들러야 한다. 항구는 이 도시의 역사이자 시민들의 터전이기 때문이다.
함부르크 항구는 세계 각국에서 온 화물선에 컨테이너를 싣고 나르는 작업으로 항상 분주하지만, 사실 바다와 면해 있지 않다. 바다에서 엘베 강을 따라 100㎞ 이상을 거슬러 올라가야 닿는 곳에 위치해 있다.
크고 작은 배들이 줄지어 있는 항구는 함부르크의 다른 곳보다 활기가 넘쳤다. 요트에서부터 관광용으로 개조한 유람선, 한눈에 볼 수 없는 초대형 선박까지 다양한 배들이 부두에 정박한 채 항해를 준비하고 있었다.
관광객들은 대부분 예쁜 머그컵이나 그림엽서 같은 기념품을 판매하고 있는 상점들을 별다른 관심 없이 지나쳐 갔다. 그들의 목적지는 모두 유람선이 출발하는 선착장이었다.
사실 유람선 투어의 초반부는 굳이 비유하자면, '산업 시찰'을 하는 것과 비슷했다. 운하 주변은 아름다운 산에 둘러싸인 아름다운 풍광도 아니고, 그림 같은 마을이나 희귀한 동식물이 등장할 만한 풍경도 아니었다.
수십 대의 크레인이 쉴 새 없이 움직이며 재미없게 생긴 사각형 컨테이너들을 배에서 내리고 실었다. 간혹 한글이 적힌, 아마도 한반도 모처에서 떠나왔을 듯싶은 화물선이 눈길을 끌 뿐이었다.
유람선이 이곳저곳을 기웃거린 뒤 수문을 열고 뱃머리를 좁은 수로 쪽으로 돌리기 전까지, 강바람만이 스산한 마음을 훑고 지나갔다.
유럽에서 '운하'라고 하면 으레 이탈리아 베네치아를 연상하지만, 함부르크도 이에 못지않은 운하의 도시다. 시 면적의 10%가 수면이고 다리 수는 베네치아보다 많다.
낭만적인 곤돌라 대신 투박한 생김새의 유람선들이 운하를 누비고 다니지만, 높은 빌딩 숲 사이에 물이 들어와 찰랑거리는 모습이 독특하면서도 운치 있게 느껴졌다.
유람선은 곡예를 하듯 낮고 좁다란 아치형 다리 아래로 쭉 미끄러져 나갔다. 배는 물길을 따라 독일에서 두 번째로 크다는, 세련된 도시의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다리에서 운하를 내려다보고 있던 사람들은 눈이 마주칠 때마다 반갑게 손을 흔들어 주었고, 선내에 있는 사람들은 맥주나 차를 마시며 여유로움을 만끽했다.
◆ 잿빛 도시의 화려한 불빛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상실의 시대'를 언제 읽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너무 재미있어서 하룻밤 만에 독파했다는 사실만이 선연하게 남아 있는데, 시기는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 그 책의 첫머리는 함부르크에서 시작한다.
'11월의 차가운 비가 대지를 어둡게 물들이고 있었고, 비옷을 걸친 정비공들, 민둥민둥한 공항 빌딩 위에 나부끼는 깃발, BMW의 광고판 등 이런저런 것들이 보였다'며 함부르크 공항에 도착한 중년의 주인공은 젊은 시절의 기억을 떠올린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수많은 유럽의 도시 가운데 함부르크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에 대해 구술한 적이 없기에, 그저 밝고 아름다웠던 청춘과 대비되는 지역으로 중후하면서도 어두운 느낌의 이 도시를 고른 것은 아닐까 싶다.
함부르크 거리에서는 유독 붉은색 표지판이나 쓰레기통이 많이 눈에 띈다. 아마도 흐린 날씨 탓에 시내 분위기가 처질까봐 마련한 대응책인 듯했다. 하지만 체구가 큰 독일인들이 무뚝뚝한 표정으로 오가는 상황에서 빨간색은 특유의 화사함이나 강렬함을 뿜어내지 못했다.
역설적으로 함부르크는 오히려 밤이 되면 환해지는 도시다. 도심 주변으로 밀라노나 파리에 버금가는 쇼핑 거리가 조성돼 있기 때문이다.
내로라하는 명품점들이 알스터 호수 뒤쪽으로 모여 있고, 갠제마르크트에는 중저가의 의류, 잡화 매장들이 포진해 있다. 백화점과 쇼핑몰에서 뿜어내는 불빛은 화려하고 황홀했다. 소규모의 갤러리나 서점들도 우아하고 고상해 보였다.
시청사가 보이는 광장의 노천카페로 거리의 악사가 연주하는 아코디언 소리가 들려왔다. 해는 이미 저물었지만 시간이 아직 일러서인지 인적은 줄어들지 않았다. 함부르크에서는 낮보다 밤이 따뜻하고 역동적이었다.
▲ 함부르크 가는 방법 =
서울에서 독일 함부르크로 가는 직항은 없다. 항공편을 이용하려면 루프트한자 독일항공을 타고 프랑크푸르트까지 간 뒤 갈아타면 된다.
프랑크푸르트에서 함부르크까지는 비행기로 50분 정도 소요된다. 수도 베를린에서는 45분, 뮌헨에서는 1시간 20분이 소요된다. 철도를 이용하면 베를린에서 2시간 10분, 프랑크푸르트에서 3시간 30분이 걸린다.
▲ 함부르크 카드 =
독일의 여느 도시와 마찬가지로 함부르크에도 여행자를 위한 카드가 있다. 함부르크 카드를 구입하면 버스와 기차에 자유롭게 탑승할 수 있으며, 여러 명소에서 할인 혜택을 제공받는다. 함부르크 중앙역 여행 정보 센터의 기념품 가게에서도 10%를 깎아준다. 1일권이 7.8유로, 3일권이 17.4유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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